그녀는 갑자기 외로움에 몸을 떨었다. 자신이 그의 방어벽 바깥에 서성이는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가 자신에게만은 경계태세를 풀고 그의 내면을 보여주면서 접근을 허용해주기를 바랐다. 새롭게 눈뜬 여성적인 자각덕분에 생긴 직관력이 지금 그녀에게 상처를 입히고 있었다.
그녀는 그가 그 철두철미한 자제력을 잃을정도로 자신을 원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의 마음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알기에 너무나 괴로왔다. 게다가 그에게 생각보다 훨씬 마음이 끌리는게 아니고서는 이렇게까지 괴롭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자 한층 더 두려웠다. 그녀는 자신이 한참 동안이나 그를 아무말 없이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역시 조용히 그녀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그제서야 의식했다. 그는 한쪽 눈썹을 살짝 치켜올린 채 그녀가 말을 꺼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그런 그를 지켜보며 까닭없이 얼굴을 붉혔다. 그는 유연한 몸놀림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두사람의 다리가 맞닿을때까지 앞으로 다가왔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소, 귀염둥이?'
'당신 생각이요.'
그녀는 불쑥 대답했다. 이 남자는 왜 이렇게 가까이 서 있는걸까? 그녀의 맥박이 또다시 미친듯이 뛰기 시작했다. 대체 이 남자의 어떤부분이 내 머리를 텅 비우고 육체를 과열 상태로 몰아가는 걸까?
'내 생각이라니, 어떤 생각?'
그녀는 재치있게 대답하려 했지만 여태껏 자신의 감정을 속이거나 숨기는 방법따위는 한번도 배운적이 없었던지라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난 남자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라요. 남자와 함께 있을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는 물론이고 남자들의 관심을 끄는 법도 모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