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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제리전쟁 1954-1962

알제리전쟁 1954-1962

: 생각하는 사람들의 식민지 항쟁

[ 양장 ] 스투디움 총서-08이동
리뷰 총점10.0 리뷰 4건 | 판매지수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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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09월 29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672쪽 | 995g | 150*230*50mm
ISBN13 9788954646413
ISBN10 8954646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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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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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11월 1일, 전쟁선언은 뜻밖의 국면이었다. 전망도 어지간히 불투명했다. 그 불확실성이 언제 가셨는지 짚긴 어렵지만 1955년 8월 동북부 필리프빌 유럽인 살해사건으로 프랑스군을 유인할 때까지 사태는 모호했다. 그 아슬아슬한 시간을 끌고 간 것은 오레스, 콘스탄티노이스 같은 산악지대에서 구식 총을 들고 있던 무장대원들이었다. 이름 없는 이들은 요처를 공격하고 불을 지르고 어설픈 무기로 프랑스 정예부대에 맞서 교전과 투쟁을 지속해갔다. 지금은 공공연히 이들을 전사라고 하지만 그때 그들은 소리도 내지 않았고 형체도 흐릿했다. 1955년 봄과 여름이 지나고, 1956년 4월 마침내 프랑스 정부가 비상사태를 선포할 때까지 프랑스는 이 상황이 본격 전쟁으로 뒤바뀌리라고는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 알제 주요 일간지 『레코 달제』는 이들을 ‘무장반도武裝叛徒’로, 이들의 행위를 ‘테러terror’로 칭하면서 일반 사건사고인 양 다루었다. 오히려 파리의 일간지들이 사태의 추이에 더욱 예민한 촉각을 세웠지만 그들 역시 대서특필하지는 않았다. 프랑스는 이 사태를 ‘치안교란’이라고 불렀으며, 이 법적 표현은 이후 40년이 지난 1999년이 되어서야 프랑스 의회의 의결을 거쳐 ‘전쟁’으로 공식 수정된다. --- p. 28-29

1956년 1월 27일 목요일 늦은 오후, 파리 개선문 오른쪽 대로변 바그람 회관Salle Wagram에 ‘북아프리카 전쟁을 반대한다’는 현수막이 내걸린다. 하지만 대회 반대자들의 항의로 대회장 진입이 막혀 이 일류 공연장 안은 썰렁했다. 어떻든 대회는 막을 올렸다. 의장은 장자크 마유, 연사로는 다니엘 마스콜로, 로베르 바라, 다니엘 게랭, 장 암루슈, 장 드레슈, 피에르 스티브같이 잘 알려진 반식민주의자들이었다. 미셸 두킨구, 에메 세제르, 장 루 같은 식민지의 연사들도 등장한다. 맨 마지막 마무리 강연은 장폴 사르트르에게 맡겨졌다. 인류학자 미셸 레리스, 마다가스카르의 조제프 라세타, 세네갈의 알리운 안타 디옵, 알제리의 앙드레 망두즈는 대회에 직접 참석하지 못해 전문傳文으로 강연을 대신하였다. 이 반식민주의자들은 국적과 직업이 무엇이건 지식인이란 공통점이 있었다. --- p.100

이날 마지막으로 바그람 회관 연단에 오른 사람은 철학자 장폴 사르트르였다. 연설 제목은 ‘식민주의는 체계다’라는 간결한 명제였다. 이 연설문은 두 달 후 1956년 『레탕모데른』 3-4월호에 실리고 이후 1964년에 나온 저작 『상황Ⅴ?식민주의와 신식민주의』에도 재수록되어 반식민주의 기본문헌으로 널리 읽히게 된다. --- p.110쪽

카뮈는 1958년 「알제리 시민휴전을 위한 호소」를 발표한 후 긴 침묵을 이어간다. 그렇다고 알제리인에게 배타적이지도 않았다. 카빌리 교사이자 작가인 물루드 페라운은 독립 지지파 알제리인이었지만, 카뮈와 내내 친구였다. 페라운은 1958년 4월 10일 알제 인근 클로살랑비에(현 엘마다나) 학교에서 카뮈를 맞이하고 한참 알제리 문제를 허심탄회하게 논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카뮈는 공식 발언을 자제하며 지내던 1960년 1월 4일 남프랑스에서 파리로 오는 길에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기에 그가 말년에 알제리를 어떻게 보았는지는 논란이 될 수밖에 없다. --- p.134

틸리옹은 알제리 독립은 프랑스 문명이 쌓아올린 업적을 포기하는 것이 되리라 공언했다. 진보, 세속화, 인권을 심어놓고 이제 와서 프랑스가 알제리에서 물러나면 알제리인은 반동적이고 교권적이며 퇴행적인 이슬람에 빠질 거라는 경고도 했다. 그러나 알제리 독립에 반대하는 것과 알제리인 탄압을 고발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 p.139

다만 실제 식민지인 사이에서 활동해본 적 없는 사르트르와 달리, 부르디외는 이데올로기 중심에서 식민지 연구를 떼어놓고, 현실 그대로의 알제리를 보고 듣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가 알제리에 오면서 마음먹고 구입한 독일제 차이스 카메라는 알제리에 대한 이 젊은 사회학도의 마음을 담았으며 『알제리 사회학』은 그 함축된 관찰과 비판의 결산이었다. --- p.149

‘미뉘 출판사Les Editions de Minuit’는 1942년 독일 점령기에 작가 베르코르(‘장 브륄레르’의 가명)와 피에르 드 레스퀴르가 창간한 작은 출판사였다.5 미뉘 출판사의 베르코르는 나치 점령기에 비시 정부에 타협적이던 거대 출판사 갈리마르와 그라세에 반대하는 입장이었고 이들 출판사가 종전 후 전쟁문학을 출판목록에 넣는 것을 마뜩찮게 보았으며 그런 출판정신은 이후에도 변하지 않았다. (...) 미뉘가 생각하는 저자는 문학으로 시대의 문제를 이끄는 작가가 아니라 시대의 문제를 껴안은 시민으로서 예술에 전념하는 작가였다. 그랬기에 식민지 정치사회를 말하는 출판물과 새로운 문학사조 누보로망의 관계는 단절적이지 않았고, 참여적 정치문헌과 실험적 순수문학의 양 날개는 공존할 수 있었다. --- p.162-165

그러나 정작 말썽을 일으킨 미뉘의 책은 1957년 10월 출간된 『자밀라를 위하여』였다. 변호사와 기자가 그들이 도운 알제리 여성 자밀라 부히레드에 관한 수사와 재판 기록을 수록한 책이었다. 알제전투가 있기 수개월 전인 1956년 10월부터 알제 시내의 고급 식당가와 항공사를 겨냥해 폭탄테러가 있었고 젊은 여성들이 용의자로 지목되었다. 그중 22세의 자밀라 부히레드가 테러 혐의로 체포되어 알제 군사법정에 넘겨졌고 이때 변호사 자크 베르제스와 기자 조르주 아르노가 자청하여 자밀라 부히레드의 변호에 나섰던 것이다. 소리 소문도 없이 묻힐 수도 있는 책이었다. 하지만 앙드레 프로사르, 피에르 라자레프 같은 이름난 언론인과 우익 『로로르』와 『프랑스수아르』 기자들이 이 책을 대서특필해 보도함으로써 일반의 관심을 증폭되었고 이는 곧 판매로도 이어졌다. --- p.167

1957년부터 차츰 형성된 조직망 가담자가 얼마인지는 아직 정확히 파악되지 않았다. 장송도 스위스인, 벨기에인이 모두 몇 명인지 말하기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편차가 있지만 연구자들은 수백 명 선으로 짐작한다. 분명한 것은 상당히 이질적인 여러 층의 사람들이 가담해 있었다는 점이다. (...) 한편 프랑시스 장송이 편집자로 일하던 쇠유 출판사에서도 장송의 책 『도덕의 문제와 사르트르의 사유』를 유심히 읽은 여직원과 여성 영업부장이 조직에 가담했다. 무슨 연유인지 모르지만 장송망에는 여성 가담자 비중이 높았다. 18세에 반나치 공산당 지하조직에 들어가 1956년에 모스크바까지 방문할 만큼 열성적이었다가 소련의 헝가리 진압으로 탈당한 여성, 유서 깊은 알제리 유대계 출신으로 블리다 주앵빌 병원에 일하다 파리로 추방된 여성 정신과 의사(『파농 평전』의 저자로 유명한 알리스 셰르키), 레지스탕스 출신의 흑단 가구 제조공 아버지의 딸인 여성 의사 등이 있었다. 장송망 재판에서 최고형인 10년 금고형에 7만 프랑의 벌금, 5년간 체류금지, 공민권 정지의 징벌을 선고받은 프랑스 최연소의 교수자격 수여자 여성, 사회당과 공산당이 분열을 일으킨 1920년의 투르 사회당 전당대회에 참석해 공산당에 가입하고 다시 탈당해 레지스탕스로 활약한 아버지를 둔 철학과 출신의 여성 기자도 있었다. --- p.221-222

FLN이 전쟁을 선언하기 전까지 변호사들이 매달린 사건은 메살리 하즈에 대한 재판이었다. 식민지에 관심 있는 식자층이라면 메살리를 모르는 이가 없었다. 누구보다 정이 가는 식민지 억압의 상징이 바로 메살리라고 할 수 있었다. (...) 메살리 하즈는 1920년대 초반부터 프랑스 경찰의 사찰을 받아왔던 거물 식민지인이었다. 서부 틀렘센 출신인 메살리는 파리에 건너와 프랑스공산당에 가입하고 인도차이나의 호찌민과 더불어 식민지민족주의 운동의 구심점이 되었다. 그런 메살리 하즈를 지지하는 층은 파리 교외, 북부 프랑스, 마르세유, 알제리 서부와 동부에 널리 퍼져 있었다. --- p.273

OAS의 포피 변호사 살해는 유럽인이라 하더라도 자유주의자는 희생될 수 있다는 것을 과시했다. 포피는 텔레비전 시사 프로그램 [1면 톱뉴스]에 출연한 자리에서 프랑스-알제리는 사멸했고 쟁점이 될 수 없다고 했었다. 변호사 살해는 포피로 끝나지 않았다. 알제리인 변호사 일곱 명이 OAS의 손에 이런저런 방식으로 피살되었다. 포피를 승계한 알제 법정 소속 피에르 가리그도 1962년 1월 알제 사무실에서 OAS의 손에 살해당했다. 델타특공대가 이들 살해사건의 주범으로 지목되었지만 OAS 특공대는 변호사만 응징대상으로 삼지도 않았다. 앞서도 말한 바 있지만 에비앙 휴전협정이 조인되기 사흘 전인 1962년 3월 15일, 물루드 페라운과 동료 교사 일곱 명은 알제 시내의 학교에서 OAS 대원에 의해 사살되었다. --- p.296

1956년부터 1962년까지 총 91호가 발행되었던 『엘무자히드』는 1957년 봄부터 진용이 달라진다. 튀니스 편집진은 파리 FLN 연맹 책임자 알리 하룬, 22세의 보르도 문과대생 호신 부자헤르, 보르도 의대를 중단하고 FLN에 가담한 마히에딘 무사우이 사데크였다. 프랑스어판보다 풍성한 아랍어판은 아랍어 프랑스어 이중어 구사에 능숙한 아흐메드 부압델리, 자히르 이하다덴의 손을 빌렸다.45 마히에딘이 과감하게 편집 조율, 지면 작성, 재정 운용을 도맡았을 무렵 그가 가진 경험이라곤 오랫동안 신문을 열심히 읽었다는 것뿐이었다. 『엘무자히드』 제작자 중 직업적 신문기자는 하나도 없었다. --- p.379

1957년 1월에 추방된 파농을 『엘무자히드』로 초빙한 당사자가 바로 아반 람단이었다. 파농은 튀니지의 마누바 정신병원으로 일터를 옮겨 진료를 보고 알제리해방군 부상자들을 위해 국경을 오가면서 마지막에는 『엘무자히드』에 합류하게 되었다. 1960년에 갑자기 백혈병이 발병하기 전까지 파농은 이 신문에 수많은 글을 썼고 사후에 그 기사들은 마스페로 출판사에서 『아프리카 혁명을 향하여』라는 책으로 편집, 출간되었다. 『엘무자히드』의 모든 논설들은 익명이었기에, 파농의 아내 조시 파농의 검증을 거쳐 확인이 가능한 글만 모은 것이다. --- p.387

어떻든 튀니지와 모로코의 식민지 건설은 프랑스 단독으로 진행할 수 없었고 에스파냐, 독일, 이탈리아 같은 이해 당사국을 고려해야 했다. 반면 알제리는 그렇지 않았다. 20세기부터 알제리에는 자율적인 통화와 은행, 채권이 있었지만 프랑스의 해외영토라는 명분으로 프랑스의 독점적 처리를 따라야 했다. 세 나라를 통치하는 부서도 달랐다. 알제리는 정복 당시 해군에서 육군으로 군부의 관할이 되었고 튀니지와 모로코는 처음부터 외교부 관할이었다. (...) 그 무렵 국제관계에서 결정적인 함수가 된 것은 알제리 영토 안에 엄청난 매장량의 석유가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1956년에 석유와 천연가스가 매장되어 있다는 것이 사실로 밝혀졌다. 드골의 부상은 이 지하자원의 문제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1958년 드골이 전권을 획득하고 보름이 지난 6월 17일에서 20일 사이 모로코와 튀니지 간 협력 협정을 체결하는 튀니지 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는 FLN을 협정에서 제외했을 뿐만 아니라 공식 행사에서도 배제하였다. 그 최악은 프랑스의 다른 기지는 4개월 이내에 전부 폐지하지만 비제르트 기지만은 유보한다는 프랑스-튀니지 협정의 조인이었다. 튀니지와의 통합을 유지하려는 드골의 생각은 FLN에게는 말 그대로 전쟁을 의미했다. --- p. 444-445

프랑스의 주권을 거부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프랑스적 가치를 수용하고 존중할 의사가 충분했다는 것은 바로 그 사실 자체로 인해 의미를 가질 수 있었다. 신생 독립국가가 되려는 나라의 학생들은 세워야 할 것이 너무 많았고 시간은 너무 뒤처졌기에 부정 자체에 모든 해답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민족 외에는 의심과 경계로 다른 사회, 다른 나라, 다른 문명을 바라보면 안 된다는 것, 그런 좁은 태도에 갇혀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을 감각적으로 깨닫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것이 여기든 저기든 손잡을 수 있다는 공염불 같은 공존을 의미하지 않았다. 특히 학생 운동가들에게 아랍-이슬람 문명을 아끼고 가꾸겠다는 것은 타문화의 불관용과 거부를 의미하지 않았다. 아랍-이슬람은 모든 인간이 기독교-라틴 문명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고 믿는 세계에 대응하는 정체성의 핵심이었다. 학생들은 자신의 나라를 좀먹고 시달리게 했던 것과 공존하려는 의지를 가졌다. 그들은 그것이 자신들의 존재 의지임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교육 민주화와 문맹퇴치만으로 이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보지도 않았다. 식민체계에 대항하고 민족문화를 되살리고 꽃피우려 더 깊은 것을 요구하였다. 벤야히야가 명문의 정관을 작성한 것은 이러한 신념에 기초하고 있었다.
--- p.565-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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