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히 해가 사라지기 시작하면 동서남쪽에 벌려놓은 북을 동시에 치기 시작한다. 본격적인 일식과의 전쟁을 치르는 것이다.
“해야 어디로 사라지느냐? 나, 조선 왕이다! 그래, 이렇게 가는 거야. 딱 이렇게 말이야. 북을 막 치는 거야. 북을 붙잡고 계속 치면 해가 다시 돌아와. 그게 해야!”
왕이 근정전 앞뜰에서 소복을 입고 일식과 전쟁을 치를 때 각 관청의 모든 관리들도 소복을 입은 채 해를 향해 북을 치면서 왕을 응원하기 시작한다.
“V. I. C. T. O. R. Y. 빅토리, 빅토리, 야! 우리 전하 이겨라, 빅토리!” --- pp.12~13 「#1. 일식과 ‘맞짱’ 뜨던 조선의 왕」중에서
“생각을 해보십쇼! 우리가 뭐 연애를 해서 결혼했습니까, 아니면 소개팅을 해서 결혼을 했습니까? 하다못해 결혼 정보업체 소개로 결혼했으면 억울하지나 않지. 이건 뭐 얼굴 한번 못 보고, 아부지가 시키는 대로 결혼하니……. 이런 여자랑 평생을 어떻게 삽니까?”
“야! 너만 생각하냐? 너만? 네 마누라는 어쩔 건데? 이혼하고 나면 네 마누라는 어떻게 살라고?”
“…….”
“그러지 말고 본처는 적당히 들여놓고, 첩이랑 알콩달콩 살면 되잖아. 대충 그렇게 살자, 응?”
그랬다. 만약 이혼을 허용하면 정조를 잃은 이혼녀들이 거리로 쏟아질 것이고, 그러면 이혼녀들의 생계 문제와 사회적 혼란이 일어날 것이다. 그래서 이혼 대신 ‘소박’을 권장하는 사회가 되었던 것이다. --- p.28 「#2. 우리 이대로 헤어지게 해주세요」중에서
조선시대 사람들은 아무리 더워도 상투머리를 고집했다. 그런데 실제로는 편법을 동원해서 상투를 틀곤 했다.
(…)
“너 그럼 지금까지 진짜 오리지널 상투를 하고 다닌 거였어? 얼씨구, 진짜네? 진짜 상투네?
“상투에 진짜 상투가 있고 가짜 상투가 있냐?”
“야 인마, 보통 상투 아랫부분의 머리를 박박 밀어내잖아. 그게 배코 치는 거고! 그런 다음에 ‘주변머리’를 말아 올려서 상투를 트는 거잖아.”
“진짜냐?”
“이 더위에 그럼 통으로 상투를 트냐? 괜히 지단이 ‘속알머리’ 없이 돌아다니는지 알았어?”--- pp.112~113 「#3. 양반의 상투머리에는 ‘속알머리’가 없다?」중에서
전 공조판서 이우는 괜한 객기를 부려 코끼리에게 돌을 던지고, 그도 모자라 침을 뱉었다. 그러자 코끼리가 괴성을 지르며 이우에게 달려오더니 그 큰 발로 짓밟아버렸다.
(…)
“전하! 아무리 말 못하는 미물이라 하나, 정2품 당상관을 죽인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는 사형입니다!”
“그래도 코길이를 함부로 죽일 수는 없잖아. 저래 봬도 저게 왜놈들이 선물한 거라 외교 관례도 그렇고…….”
(…)
이렇게 해서 인도네시아에서 일본을 거쳐 조선으로 넘어온 코끼리는 전라도 순천 앞바다의 장도로 귀양을 가게 되었는데, 과연 이 코끼리의 시련은 어디서 끝이 날까? --- pp.175~176 「#4. 조선 코끼리의 기구한 운명」중에서
환향녀들의 운명은 거의 대부분 장유 집안의 그것과 비슷했으니, 돌아오는 즉시 주변의 손가락질 속에 처녀들은 목을 매거나 산으로 도피해서 은둔생활을 하거나 비구니로 살았고, 유부녀들은 시댁의 눈총 속에 살아야 했다. 그나마 시댁에 몸을 의탁해 살면 다행이었다. 대부분의 환향녀들은 장유의 예처럼 이런저런 핑계로 이혼을 당했으니, 참으로 한스러운 팔자라 하겠다.
병자호란 때 끌려간 조선인의 숫자가 약 60만 명. 이들 가운데 50만 명이 여성이었다는 사실만 봐도 당시 조선이 겪었을 혼란을 예상할 수 있다. 이때의 ‘환향녀’라는 단어가 ‘화냥년’으로 바뀌면서 성적으로 문란한 여자를 빗대는 욕으로 발전한 걸 보면 당시 환향녀에 대한 인식을 알 수 있을 것이다. --- p.232 「#5. 연신내에 서린 화냥년의 한」중에서
당시 태종과 조정의 마음은 충녕대군에게로 모아지고 있었다. 일단 심성이 착하고 공부도 잘했고, 결정적으로 왕자로서의 품위를 잘 지켰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문제가 하나 있었으니, 충녕에게는 형이 두 명이나 있다는 것이었다. 폐세자가 된 양녕대군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충녕의 바로 위에 효령대군이 있었다.
(…)
“그 녀석(효령대군)이 또 술은 입에도 안 대요. 그러니 술버릇을 트집 잡을 수도 없거든.”
“전하, 아예 역발상으로 가는 건 어떻습니까?
“술을 못 마셔서 왕으로서는 자격미달이라고 하는 겁니다. 원래 우리나라에서 남자가 일을 하려면 술을 어느 정도는 마셔야 하잖습니까? 영업사원들 능력을 검증할 때 1순위가 주량 아닙니까? 왕도 하다 보면 영업을 뛸 때가 많은데, 술을 못 마시는 건 결정적 약점이라고 몰아가면 무난하지 않을까요?”--- pp.252~253 「#6. 조선의 왕자로 산다는 것」중에서
호랑이 때문에 나라의 운영 자체를 걱정해야 할 상황에 처하자 조선은 호랑이와의 전쟁을 선포하기에 이른다.
(…)
“호랑이란 게 워낙 개념이 희박해서요. 황해도에서 막 몰다 보면 이것들이 경기도 땅으로 넘어가고, 경기도에서 몰다 보면 전라도나 경상도로 도망을 치는 바람에 말입니다. 제가 맡은 구역이 황해도라서, 경기도로 넘어간 호랑이를 잡으려고 군사를 한 발짝이라도 움직이는 순간에 저는 이미 죄를 짓는 거라서요. 구역만 아니면 그냥 넘어가서 잡는 건데 말입니다.”
“그래? 그럼 뭐 너 좋을 대로 해. 경기도까지 넘어와서 호랑이 사냥을 해도 되니까 제발 그놈의 호랑이들 확 씨를 말려버려!”
“알겠습니다! 제가 확실히 이것들 씨를 말려버리겠습니다!”
이리하여 이귀는 평산에 부임하자마자 병력을 몰아 경기도로 내처 달려왔다. 그가 내세운 목적은 호랑이 사냥이었지만, 실제로는 인조반정의 선봉군으로 광해군 축출에 앞장서게 된다. 따지고 보면 광해군 스스로가 혁명군의 족쇄를 풀어줬다 할 수 있겠다.
--- pp.186~189 「#7. 호랑이 잡는 특공대 ‘착호갑사’, 호랑이 대신 광해군을 잡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