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인 자녀 양육은 부패한 세상을 무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또한 이렇게 말하지도 않는다. “숨어 있어라. 그냥 끝까지 견뎌라. 세상은 너무도 악하니 나는 그 가운데 일부가 되고 싶지 않다.” 그보다 이렇게 선포하는 것이다. “나는 그 모든 것들 가운데 여기 서 있을 것이다. 하나님이 나를 지금 이 세상 안에 두셨으니 나는 세상 속에서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의 말처럼 우리가 이방인이라는 것을 안다. 이 세상은 나의 집이 아니다. 결코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여기서 완전히 편안함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정말로 내가 세상에 어울린다고 느끼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여기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는 않을 것이다.”
바로 여기서 영적인 자녀 양육이 중요해진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 땅에서 생산적이고 영적인 삶을 살면서도 세상에서 편안함을 느끼지 않게 만드는 것이 바로 영적인 자녀 양육이다. 그리고 진심으로 하나님과 성령님을 의지하는 것이 영적인 부모가 되는 핵심이다. --- p.20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의 잘못된 행동을 고치려고 자녀들 곁에 바짝 붙어서 따라다니며 일일이 지적하느라 자신의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붓는다. 그 일은 우리 몫이 아닌데도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임무는 무엇인가? 자녀들의 믿음이 성장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고, 우리가 한 것처럼 예수님과 사랑의 관계를 키우는 법을 가르쳐 준다. 나아가 아이들 앞에서 진실하게 삶으로써 그들이 우리 자신의 변화를 직접 보게 하는 것이다.
내가 십대였을 때, 우리 아버지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아래층으로 내려가셨다. 하지만 아무리 귀를 쫑긋 세워 봐도 TV 소리나 주방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아버지가 매일 아침 아래층에서 뭘 하시는지 보았다. 아버지는 무릎 꿇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계셨다. 아버지가 나에게 성경을 읽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기억은 없지만, 그 모습이 나에게 조용히, 그리고 한결같이 모범이 되어 주었다. --- pp.27-28
성경 이야기를 읽어 주거나 말해 줄 때, 아이들이 더 큰 연속체 안에서 그 이야기가 언제 어디서 일어났는지 설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항상 일어난 일에 대한 배경을 설명해 주어야 하며, 구원자 예수님이나 하나님 아버지를 주인공으로 해야 한다. 다른 사람이 주인공처럼 보일 때도 말이다.
마지막으로 부모로서 우리는 일관성 있게 계시된 예수님을 알려 주어야 한다. 예수님을 당신과 자녀의 삶의 영웅으로 모시라. 예수님은 우리 대신 죽으시기 위해 자신의 필요와 욕구를 제쳐 두고 영웅답게 우리를 사랑하셨고 또 사랑하신다. 영웅답게 기도에 응답해 주시고, 영웅답게 우리의 말을 경청하시며, 영웅답게 악을 정복하신다. 당신의 자녀가 그 영웅 이야기에서 다음에 일어날 일을 항상 기대할 수 있도록 매일 노력하라.
나는 아이들이 학교에 가기 전에 종종 이렇게 말하곤 했다. “하나님이 오늘 너를 어떻게 돌봐주실지, 또는 하나님의 말씀이나 너를 사랑하는 누군가를 통해 어떤 문제에 대해 어떻게 말씀해 주실지,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을 너에게 어떻게 보여 주실지 궁금하구나. 잘 살피고 있어라. 하나님이 그 일을 어떻게 하실지는 모르지만, 틀림없이 그렇게 해 주실 테니까. 항상 주의해야 한다. 오늘 너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이야기의 한 부분이 될 테니까 말이야.”--- pp.72-73
우리 아이들도 살면서 실패를 경험할 것이다. 거짓을 선택할 것이고, 유혹에 넘어갈 것이다. 이때 영적인 부모라면 자녀들에게 이렇게 말해야 한다. “그래, 이번엔 네가 진리를 택하지 않았구나. 하지만 이것으로 너를 규정짓지 마. 이것은 진짜 네 모습이 아냐. 이건 네가 한 행동이지 너의 본질이 아니란 말이지. 너는 여전히 동일한 사람이야. 변함없이 하나님께 속해 있고, 그리스도 안에 있단다. 그 사실은 변치 않아.” 죄책감과 수치심은 우리를 쇠약하게 하는 마귀들이므로 우리는 그들의 참된 정체성을 상기시켜 주어야만 한다. --- pp.90-91
우리는 악한 세상에 살고 있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분명 나쁜 일이 일어날 것이다. 사람들은 고의로든 고의가 아니든 아이들에게 상처를 줄 것이다. 인생은 공평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은 모든 것, 심지어 나쁜 일까지도 하나님의 손을 거쳐서 온다고 믿는 확신이다. 아이들의 상황을 통제하려 해서는 안 된다. 아이들의 삶에서 힘든 일이 일어나면 그 힘든 일들이 하나님이 그들을 다듬기 위해 하시는 일임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기도하며 시련을 당할 때 은혜 안에서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본을 보여 주어야 한다.
잠시 당신의 자녀 양육법을 돌아보라. 당신 자신의 두려움 때문에 당신의 가정에, 그리고 자녀의 삶에 비현실적인 편안한 공간을 만들고 있는가? 자녀에게 고통을 주는 불완전한 상황, 우정, 또는 임무로부터 자녀를 구출해 내고 있는가? 영적인 부모로서 당신은 이것을 정직하게 평가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 다음엔 어디에서의 삶이 좀 더 편안하고 안락한지 생각해 보라. 그리고 시련과 고통을 단지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고, 그것들이 당신의 자녀들을 더 강하게 만들게 할 수 있는 실제적인 방법들을 생각해 보라. --- pp.139-140
징계의 목적은 단순히 내 자녀가 그런 부정적인 경험을 맞닥뜨림으로써 다시는 ‘그것’을 하고 싶지 않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징계의 목적은 근본적인 문제를 드러내고 치유하여 그것이 더 이상 부정적인 행동을 일으키지 않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참된 영적 형성이다. 그런데 우리는 행동 수정으로 만족할 때가 너무 많다.
우리 자녀들이 어릴 때도 이기적이거나 반항적인 행동 또는 나쁜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근본적인 문제, 즉 죄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궤도 수정 목표는 하나님만이 가져다주실 수 있는 치유의 길에 그들의 마음이 함께 가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할 때 자녀들이 자신의 죄를 숨기거나 육체적인 문제로 다루지 않고 정직하게 고백하게 할 수 있다. 또 그럼으로써 그들에게 구세주가 필요한 이유를 이해하도록 도울 수 있다. 이것이 그들의 믿음의 기초가 된다. 히브리서 12장에서 보았듯이, 성경적인 징계를 하는 목적은 영적인 변화라는 것을 늘 명심해야 한다. 자녀들이 한 살이든 열여덟 살이든 간에, 목적은 언제나 이런 종류의 치유이다. --- p.182
아주 어릴 때부터 나는 아버지가 훌륭한 본을 보여 주신다고 느꼈다. 비록 부족한 점들도 있고 실패할 때도 있지만 말이다. 이것은 아버지가 항상 자신의 행동과 예수님의 행동이 일치하는지 살피셨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버지는 그런 일이 생길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본을 보여 주셨다. 내가 잘못한 사람한테 가서 용서를 구하고, 그런 다음 그 행동을 고치는 것이다.
이 본보기는 내가 반드시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단, 내가 잘못했을 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이것은 자녀 양육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우리는 본보기를 하나의 ‘표준’으로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우리가 도달하려고 애쓰는 모종의 완벽함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실패할 때나 그것을 바로잡을 때, 살아 숨 쉬는 은혜의 본보기가 될 수 있다. 어느 쪽이든 은혜가 우리를 이끌기 때문이다. 우리의 말이 하나님의 기준에 적합하면, 우리는 이 진리의 본보기가 될 수 있다.
--- pp.245-2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