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에서 성서는 특별한 마법과 치유의 능력을 지닌 책이었다. 17세기 영국과 뉴잉글랜드 사람들은 성서가 코피를 멎게 해주며, 출산 시 합병증으로부터 여성을 보호해준다고 믿었다. 후기 빅토리아 시대 잉글랜드 햄프셔에서 살았던 한 여성은 발작을 치료하기 위해 신약성서를 한 장씩 찢어 샌드위치 중간에 넣는 식으로 한 권을 모두 먹었다고 한다. 한편 성서는 신탁의 도구로 쓰이기도 했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생겼을 때, 사람들은 임의로 성경을 펼쳐 나타난 구절에서 해결책을 찾곤 했다. --- p.8
고대 세계에서 읽기와 쓰기는 소수의 관료 및 종교 엘리트 집단에게 국한된 특권이었다. 예를 들어 고대 이집트에서 글쓰기가 가능했던 집단은 전체 인구의 1퍼센트에 지나지 않았으며, 이 소수의 특권층은 파라오, 행정 관료, 군 고위간부, 이들 지도층의 아내 그리고 신관으로 구성되었다. 고대인은 그림 혹은 상징을 이용해 나무껍질, 종려나무나 바나나 잎, 나무, 점토, 파피루스, 거북딱지, 대나무 그리고 실크 위에 글을 썼다. 한편 인구의 대다수는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했다. --- p.15
7~15세기 유럽의 수도사 스크립토리움은 재능 있는 필경사와 채식사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들은 라틴어, 그리스어, 혹은 히브리어로(언어를 이해할 수 있건 없건 관계없이) 종교 서적을 베낄 수 있어야 했으며, 글자 크기가 균일하고 문장이 직선 행렬을 이루게 필기할 수 있는 기술을 익혀야 했다. 또한 다양한 종류의 글을 능숙하게 베낄 수 있어야 했다. --- p.41
구텐베르크의 발명 후에도 스크립토리움이 주도하던 시대부터 내려온 책 만들기의 특징은 일부 그대로 남았으나, 인쇄술로 인해 책을 더 빠르게 만들 수 있게 되었고 유럽 주요 언어의 표준화가 촉진되었다. 사실 인쇄기 자체는 비교적 저렴했다. 18세기까지 책 생산 단가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종이였으며, 그 비용은 책 소매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제지 방법은 여전히 아랍 세계에서 건너온 방식을 따라, 유럽 전역에서 가난한 ‘넝마주의’들이 모아온 누더기와 버려진 천을 이용했다. 책의 물리적 형태(코덱스)는 변함없었으며, 그 후 500년 이상 계속 유지되었다.--- p.55
18세기는 프랑스의 시대였다. 프랑스어가 라틴어를 제치고 전 세계 식자층의 공용 언어가 되었으며 프랑스 계몽주의 문학과 사상은 세계 곳곳에 영향을 미쳤다. 이 ‘이성의 시대’는 또한 출판업 확장의 시대이기도 했다. 18세기 후반 책은 서부 유럽에서 친숙한 소비재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1750년 이후 서구의 문해율은 놀라울 정도로 증가했으며 도시 지역에 거대 규모의 독자층이 형성되었다. --- p.95
존 버니언(1628~1688)의 우의 소설 《천로역정》은 모든 신교 종파에 걸쳐 가장 널리 알려진 책이었다. 비국교회 신교들에게 《천로역정》은 중요도에서 성경 바로 다음 가는 책이었다. 1678년과 1684년 두 편에 걸쳐 초판이 출간된 《천로역정》은 17세기 급진주의적인 반국교주의의 전통을 따른 책이었다. 19세기 《천로역정》은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 그리고 아프리카 지역에서 베스트셀러로 떠올랐다. 이처럼 세계 서적 시장을 정복하고 나서야 19세기 말 고향인 영국으로 ‘귀향’하게 되었으며 뒤늦게 영국 문학 고전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 p.118
1830년 이전 보통 소설의 판매 부수는 몇백 부를 넘기는 일이 흔치 않았다. 한 예로 스탕달의 《적과 흑》은 1830년 출판 당시 인쇄 부수가 750부에 지나지 않았다. 스탕달은 자신의 작품을 ‘소수의 행복한 이’에게 바쳤던 것이다. 스탕달의 독자 모두가 행복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확실한 것은 적어도 스탕달의 살아생전 그의 작품을 읽을 수 있었던 독자는 소수였다. 그러나 1914년경 값싼 소설을 위한 대중 시장이 형성되었고 프랑스 전역의 독자들은 스탕달의 작품에 친숙해졌다. 사회적 경제적 변화로 인해 인쇄술의 ‘구체제’는 종말을 고했다. 책과 신문의 대량 생산되었고 종이의 가격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저렴해졌다. 하루 10시간 근무제가 서서히 정착되면서 사람들은 더 많은 여가 시간을 즐길 수 있게 되었고, 적어도 서부 유럽에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글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 p.131
20세기 전반은 세계 역사의 암흑기였으며 책의 역사에서도 고난의 시기였다. 전쟁, 경제 불황, 종이의 부족 그리고 인건비 상승으로 19세기 후반과 같은 전성기는 기대할 수 없었다. 20세기는 대량 학살의 시대였다. 수백만 명이 죽었고 이들의 역사와 문화를 역사에서 지우기 위한 잔인한 만행이 시도되었으며, 이 잔인한 역사의 흔적은 책과 도서관에 기록으로 남겨져 있다. 한편 이러한 힘든 시기를 거치며 독자들은 현실도피주의적인 펄프 픽션에 대한 참을 수 없는 갈망을 느끼풰 되었다. 세계 제2차 대전 후, 서적 생산량이 다시 회복되었고 북클럽Book Club의 인기가 높아졌으며, 현대 출판업이 서구와 아시아에서 그 모양새를 갖추게 되었다. 그리고 디지털 혁명이 목전으로 다가왔다. --- p.167
이제 디지털화의 진전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미국에서 2008년과 2009년도 사이 전자책은 책 생산의 2퍼센트를 차지했다. 물론 이는 전체와 비교했을 때 그리 높은 수치는 아니지만, 그 비율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2009년 전 세계적으로 400만 대의 전자책 단말기가 판매되었다. 미국시장 예측 조사에 따르면, 전자책 단말기의 판매고는 2010년에는 1200만, 2012년에는 1800만 대까지 상승할 것이라 한다. 2015년이면 중국이 단일 시장으로서 세계 최대의 전자책 단말기 시장이 될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 물론 중국 국내의 전자책 콘텐츠가 전무한 형편이고 대부분 전자책이 불법 다운로드를 통해 유통되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 p.206
책은 살아남는 데 성공했으나, 대신 고급문화의 산물이라는 확고한 지위를 포기하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18세기 독자들은 책이 엉성하게 만들어지거나 인쇄업자가 실수로 페이지에 잉크 자국을 남기면 출판업자들에게 항의를 하곤 했다. 물론 오늘날 많은 훌륭한 책이 만들어지고 있기는 하나, 값싸고 손쉽게 구할 수 있는 페이퍼백이 표준화된 방식으로 대량 생산되는 오늘의 현실에서 독자들은 더 이상 책을 감정(connoisseurship)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다.
--- p.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