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회사를 그만두면? 우리 집 생활비는?’ 대로는 이런 고민을 하는 자신에게 짜증이 났다. 생활고를 생각하기 전에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물불을 가리지 않았는데. 생활고와 타협하면서 점점 불의를 외면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아 속상했다. 갈팡질팡하는 자신에게 길을 알려줄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랐다. --- p. 18
대로는 뭐라도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제대로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대답을 못하는 것이 그동안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해서 말을 못하는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왠지 희한테 들킨 것만 같았다.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살려면 먼저 자기한테 솔직해야 하지 않을까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나의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정확하게 알 필요가 있어요. 그래야 현실을 바로 보고 문제를 직시할 수 있겠지요.” 분위기는 숙연했다. 희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세 사람은 마치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하는 기분이 들었다. --- p. 39
방인이 피식 웃었다. 한 장도 넘기지 못하고 졸았던 일이 잦았다. “다시 명환 씨 이야기로 돌아갈까요? 『정관정요』의 배경이 현재의 어떤 문제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해요.” “대단한 건 아니고, 그저 좀 더 생각하게 됐어요. 실권이 없는 실무자를 앞에 두고 내가 길길이 날뛰어봤자 서로 얻을 게 없잖아요. 그래서 그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지 않고 맡은 임무에 대한 궁리를 했죠. 사장이 원하는 게 무엇일지, 어떤 그림을 그리고 싶을지 그 입장에서 최대한 상상해보니 방향이 나오더라고요. 게다가 지금은 대리지만 그 사람도 몇 년 후에는 과장이나 팀장이 되어 실권을 가지고 일할 사람이잖아요.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요.” --- p. 53
“나를 찾는다는 거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대로가 풀이 죽어 말했다. “어렵지요. ‘나’는 여기 있는데 그런 나를 두고 또 다른 ‘나’를 찾아야 한다니. 유교에서 말하는 합일이라는 것도 결국 ‘자아와의 대화’를 뜻해요. 그래서 이번에는 다들 『중용』 을 통해서 ‘나’와 좀 가까워졌나요”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는 게 참 어려운 것 같아요. 결국 중심을 잡고 있어야 어떠한 바람이 몰아쳐도 흔들림이 없을 텐데. 그러기에 세상의 유혹은 너무 많아요.” 명환이 커피 잔을 빙글빙글 돌리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