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는 새는 얼굴을 가져야 해서 바위에 부리를 깨뜨리고 새로운 그것을 구하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새는 크고 날지 않는다 들판을 질주하고 내가 사랑하지 못하는 고인(故人)과 여자들을 친구라 부른다 나뭇가지에 앉아서 풍조를 즐길 바에야 줄기를 붙들고 세게 흔든다 사람처럼 울면서 내가 생각하는 새는 그런 사람처럼 굴지만 나의 생각에게 또다른 한 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재회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 오후 마을로부터 피어오르는 홍연에 입을 찍으며 사람의 행복이란 붉은색 입술로 행복에 대해 말하려는 자에게 입맞추는 것이라 여긴다 내가 생각하는 새는 그 생각 속에서 다만 목수가 되려는 꿈을 갖는다 울음으로 흔들던 나무의 참된 주인으로 의자에 앉아 풍향과 요행에서 벗어나기를 원한다 내가 생각하는 새는 내가 생각하는 것을 보면서 자기가 태중임을 자랑하면서 ---「내가 생각하는 새는」중에서
주인도 노예도 다 죽었고, 죽은 뒤에 무엇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 다만 이야기가 남았네. 책 속에, 영화 속에, 머릿속에. 끝까지 나름 행복했던 남자의 이야기와, 양배추와 개를 소중히 키웠던 여자의 이야기가 매년 우리를 살찌우지. ---「인간의 유산」 중에서
나는 자네 그림이 감춘 것에 대해서라면 정말 모르는 게 없었지 붉은 내 얼굴 뒤에서 비가 온다거나 검은 풀밭 속에 눈이 휘몰아치는 식이었다네 왜 세계의 윤곽을 그리는 일은 색으로 세계를 뭉개는 일보다는 항상 덜 슬픈가
요즘 다른 화가 앞에서 옷을 벗으며 나는 십일월만을 그리던 자네가 실은 그 누구보다 더 십일월에 몸서리쳤다는 사실을 깨닫네 하지만 무슨 차이가 있겠나 마음이 붉은색이든 검은색이든 사람이 떠나면 한낱 꿈속의 달리기 같은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