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삶의 의미가 삶에 있다 해도, 삶의 가치는 삶보다 우위에 있다. 삶은 그보다 우위에 있는 가치들을 통해서 초월된다. 그러니 삶은 최고의 가치가 아니다. 반면, 삶이 최고의 가치였다면, 처참했을지도 모른다. 역사상 실천에 있어 삶을 최고의 가치로 고려했을 때, 그것은 매번 역사적 재난이 되었다. 인간들이 삶을 항상 최고의 가치로 여겨왔다면, 실제 세계는 속박 상태로, 사회적 소외 혹은 만족스러운 순응주의 속으로, 끊임없이 다시 빠져버렸으리라.--- p.43~44
그런데 프랑스어와의 첫번째 만남―내가 기억하는 첫번째 만남―은 그리 즐겁지 않았다. 이 불만의 원인을 제공한 이는 바로 19세기 작가 빅토르 위고다. 정확히 말하자면, 위고의 시 한 구절.--- p.81
“패주하는 부대의 스페인 병사.” 빅토르 위고의 말, 생미셸 대로의 빵집 여주인이 환기한 이 말은 나를 지독한 비탄에 빠뜨렸다. 그 말은 사실이었고, 우리는 패주중이었으니까. 그 단어가 가진 모든 의미에서 우리는 그러했다. 빅토르 위고의 시적 표현은, 그때부터, 단순히 국수주의적인 허세로 느껴지기도 했으나 그만큼 정확한 표현이기도 했다. 우리를 패주로 몰아붙인 이는 나폴레옹이 아니라, 물론 프랑코였으니, 아프리카 식민지 전쟁을 나선 장군이요, 배불뚝이에 거세된 가수의 목소리를 갖고 있지만 집요하고 인정사정없으며 냉혹한 프란시스코 프랑코, 모든 희망과 예상을 뒤엎고 사십여 년 동안 스페인을 지배한 바로 그자였다.--- p.90~91
나는 가능한 한 빨리 프랑스어 발음에서 내 억양의 흔적을 전부 지워버려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면 그 누구도 나를 더는 “패주하는 부대의 스페인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으리라. 외국인이라는 내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또한 그러한 정체성을 내적이고, 비밀스럽고, 근본적이며, 예기치 못한 힘으로 만들기 위해, 나는 정확한 발음을 갖춘 익명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p.115
쓸 수 있는 모든 이야기, 그러니까 최근에 내게 주어진 모든 소설적 글쓰기의 가능성 가운데, 나는 욕망의 신비로운 망설임을 따라 『잘 가거라, 찬란한 빛이여...』를 쓰기로 선택했으니(작업을 시작하자마자 단숨에 제목이 떠올랐는데, 서사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모호한 상태에서 제목을 정하는 건 내게 특별한 경우다), 부헨발트 체류 이전의 삶을 다룬다는 단순한 이유에서였다.--- p.130
나는 수용소의 기억으로, 그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살 것을 강요당하고 싶지 않았다. 귀중한 것들과 슬픔들로 채워진 그 기억 속에서. 수용소의 기억이 내 소설적 상상력 앞에 세워둔 장애물들은 나를 짜증스럽게 했다. 다른 것을 만들어내고, 다른-곳, 다른-존재라는 거대한 영토에서 모험하고자 고집을 부려도, 지나치게 대담하며 지나치게 큰 의미를 담은 삶은, 때때로 창작의 길을 막고 나를 나 자신에게로 다시 이끌었다.--- p.132
기억하는바, 내게 『팔뤼드』를 빌려준 사람은 아르망이 아니다. 반면에, 루이 기유의 『검은 피』(1935), 폴 니장의 『음모』(1938), 장폴 사르트르의 『벽』(1939)과 『구토』(1938), 앙드레 말로의 『인간의 조건』(1933)과 『희망』(1937)을 권했다. 내게 깊이 영향을 미친 책들이다, 분명히. 물론 내 청소년기의 유일한 교양소설은 아닐 테지만, 그럼에도 이 소설들이 아니었다면 나는 결코 지금의 내가 아니었으리라.--- p.135
어쨌든 내 관점에서 따져보건대, 『에스프리』 회합에서 가장 중요했던 사건은, 에두아르오귀스트 F가 마치 친절한 데우스 엑스마키나처럼 내 인생에 나타난 것이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흥분과 호기심으로 나를 채워줄 새로운 단어가 내 인생에 예고도 없이 나타난 것이다. 바로 ‘역사성’이라는 단어가.--- p.159
앙리4세 고등학교 체육관 근처에 있는 뜰에서 아르망 J는 지드의 『소련에서 돌아와』에 대해 비난하다가 헤겔의 변증법에 대한 기초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파울 루트비히 란츠베르크는 내게 역사라는, 어렴풋하고 강제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엄청난 세계로 들어가는 문 몇 개를 열어주었다.--- p.160~161
나에게, 의미와 피로 채워진 이 ‘역사성’이라는 단어는 하나의 발견을 상징한다. 바로 정치와 역사라는 실질적인 세계의 발견을. 육체와 정신을 저당잡혀 필요한 경우 소멸마저 감수해야 하는, 아마도 미로 같은 하나의 혼돈스러운 대륙. 당시 나는 열여섯 살이었고, 물론 서로가 서로를 자극하는 그 수많은 논쟁은 내 지적 능력을 넘어선 것이었다. 내 의식은 그러한 논지를 완전히 명료하게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도. 그러나 그때 받았던 지배적인 인상은 마치 정신적인 열병처럼 거의 육체에까지 자극을 주었고, 훨씬 나중에 나는 다른 맥락들 속에서, 가령 셰익스피어나 그리스비극, 그리고 마르크스와 루카치 초기의 몇몇 텍스트를 읽으면서 그 인상을 되찾은바, 이는 바로 세계에 대한 적극적인 소속감과 관련한 느낌이었다. 세계를 알아내겠다는 환상, 세계를 변화시키겠다는 의지 말이다.--- p.163~164
왜 지드의 그 짧은 이야기가 내 기억에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겼을까? 왜 그 책이 기억 속에서 그토록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을까? 더하여, 왜 다른 어떤 이야기도 내 기억 속 『팔뤼드』가 차지한 자리를 빼앗아갈 수는 없었던 걸까?--- p.168
해가 거듭되고,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며, 나는 『머나먼 여행』을 프랑스어로 썼다는 부적절함에 대해 각양각색의 다양한 이유를 제시했는데…… 내 인생의 그 시절을 재구성하는 지금에 와서야, 진짜 이유가 분명하게 드러났다, 그것도 처음으로. 프랑스어에 적응하는 과정이 내 인성을 만들어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알아내면서, 바로 그 추억의 작업, 1939년의 몇 달을 재구성하면서, 나는 왜 내가 첫번째 책을 프랑스어로 썼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p.176~177
보들레르와 베데커. 이들은 도시를 관통하는 탐험으로 이끌어준 나만의 지도제작자들이었다. 세계의 중심이며 출발 기지였던 팡테옹 광장에서부터, 매번 탐험이 시작되었다.--- p.204
외관은 그렇다 쳐도 본질마저 증발해버린 그 동네의 중심, 내 기억 속 생제르맹데프레의 중심에, 적어도 퓌르스텐베르그 광장만큼은 아주 순수하고 변질되지 않은 물속 다이아몬드처럼 그대로 남아 있다. 내가 이처럼 과장스럽게 환기하는 것이, 이곳이 개인적인 추억들과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된 장소인지, 목소리를 드높이지 않을 수 없음을 잘 드러내주리라.--- p.219
가장 중요한 질문은, 능숙하고 재능을 타고나고 영악하고 종종 미숙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수사학적이며 그 어떤 단절도 없이 자연스럽게 프랑스 시의 전통 속으로 들어간 이 매력적인 젊은 시인이, 왜 갑자기 인간 랭보가 되어버렸는가 하는 것이다. 랭보는, 타락한 천사가 추락할 때 그 주변이 불타오르듯 믿을 수 없이 강렬한 빛으로, 다채로운 감각으로 타오르며, 감각과 관능이라는 면에서 엄청나고 끝도 없는 어떤 한 지점에, 프랑스어의 모든 가능성을 가지고 하늘에서 떨어져내린 운석 같았다.--- p.240
스페인 ―너무 가깝지만 다다를 수 없는, 사라져버린 어린 시절의, 무화無化된 가족생활의 영토― 쪽으로 튀어나온 비리아투의 테라스에서 문득 그러한 것들을 의식했지만, 방학 내내 축적된 강렬한 행복의 순간들을 불시에 찢어버릴 만큼 위력적인 이 한결같은 근심거리도, 프랑스어를 나의 것으로 만드는 데 성공함으로써 적어도 상쇄되었으며 ―어쨌든 경감되었거나― 혹은 지워져버렸으니, 이 성공이 관념적인 공동체 안으로 나를 안내하여 더이상 그 누구도 내게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요구하지 않게 된 것이다. 지드, 지로두, 말로, 사르트르, 마르탱 뒤 가르, 레리스, 그 누구도 나한테 경탄할 아름다움으로 가득찬 그들의 책을 펼칠 수 있게, 문학이라는 엄숙한 제약 속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하는 데 있어 여권을 요구하지 않았다.--- p.295~296
비리아투의 테라스, 에브의 곁에서 진심 어린 침묵의 시간을 보내던 그날 오후였을까? 전원풍의 투박한 성당에 인접한 작은 묘지에 묻히고 싶다는 소망이 처음으로 내게 스쳤던 것이…… 무국적자들한테 가능한 그 조국, 하나의 소속과 다른 소속 ―스페인 사람이라는 아주 절대적이며 때로는 견디기 어려운 근원과 그 자명함, 그리고 프랑스 사람이라는 아주 불확실하고 때로는 근심스러운 선택과 열정― 사이, 에우스칼레리아(바스크 지방)의 오래된 대지에 자리잡은 이 국경지에. 나의 부재를 영속시키기에 완벽히 딱 들어맞는 장소가 아니었을지…… 나는 또한 내 육신을 ―붉은색, 금색, 보라색― 공화국의 삼색기로 둘러싸달라고 요구할 것이다.--- p.318~319
어쨌든 내 기억에서 이 부분만은 의심할 여지도, 모호한 것도 없다. 확신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셀렉트 카페의 그 테이블에 발터 벤야민이 있었는가 하는 점뿐이다. 테이블 끄트머리에서 자기 견해를 밝히며 다른 사람들한테 특히 영향을 주고 있는 것 같았는데, 그가 정말 발터 벤야민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고, 앞으로도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한참이 지나 발터 벤야민의 사진들을 보았을 때, 나는 셀렉트 카페에서 본 그 사람, 드물게 말을 할 때면 다른 독일 망명자들이 주의깊게 경청하곤 했던 그 미지의 남자를 기억해낼 수 있었다.--- p.350
나는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올라갔다. 이 빛, 유칼리나무들의 향기, 수국들, 자갈 깔린 오솔길을 굴러가는 자동차 바퀴 소리, 노는 아이들이 외치는 소리, 모든 것이 예전과 같았다. 옛날 그 모습이었다. 베리만의 영화 [산딸기] 속 인물처럼, 나는 늙어버린 나를 데리고 현실에 다시 나타난 과거 속을 산책했다.
“오후가 지나간다, 하나 그날 ‘오후’는 머물러 있다……”
--- p.3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