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결혼한 신부가 처음 여보, 라고 부르는 것처럼 길이 없어 보이는 곳에서 불쑥 봉분 하나 나타난다 인기척이다 여보, 라는 봉긋한 입술로 첫 발음의 은밀함으로 일가를 이루자고 불러 세우는 저건 분명 사람의 기척이다 기어코 여기 와 누운 몸이 있었기에 뒤척임도 없이 저렇게 인기척을 내는 것 새 신부 적 여보, 라는 첫말의 엠보싱으로 저기 말랑히 누웠다 일어나는 기척들 누가 올 것도 누가 갈 것도 먼저 간 것도 나중 간 것도 염두에 없이 지나가는 기척을 가만히 불러 세우는 봉분의 인기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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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의 귀를 달고 개화하는 튤립
파도의 귓바퀴 속을 걸어들어가봐 튤립 싹이 왜 귀부터 여는지 알게 될 거야 파도와 파도 사이 그 조용한 시간을 견디는 게 튤립의 전(全), 생(生)이거든
코끼리 코로 겨울을 견디는 오동나무 둥치나 손바닥 펴 보이는 맨주먹의 어린 싹들도 전생을 맡긴 땅에다 귀부터 갖다대거든
왼쪽으로 세 번 오른쪽으로 두 번 또 왼쪽으로 한 번 길을 몇 번 꺾다보면 번호를 잊어버린 녹슨 금고 앞에 선 것처럼 아득해져서 어디 먼 데를 향해 귀부터 열게 되거든
파도의 귓바퀴를 한 바퀴 굴러나오는 윈드서퍼가 다음 파도를 기다리며 귀를 열듯이 튤립은 그 어디를 향해 귀를 열면서 죽은 새 대가리 하나를 쑤욱 낳았던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