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에 생각했다 나는 왜 저 사내가 되지 못할까 선로는 나가지도 들어가지도 못하는 문 그 위에 서서 나는 왜 저 사내가 되지 못할까 생각했다
그러니까 등이 아주 작게 말린 가난한 아비 하나가 선로 위에 누워 있던 거다 잠이 오지 않을 때마다 외할머니는 그의 등을 긁어주었던 거다 좁게 파인 등골을 손바닥으로 쓰다듬으며 등이 작으면 저 긴 잠 일렁이는 물결에도 별자리들이 출렁이지 출렁이기 마련이지, 혀를 찼던 거다
외할머니 연곡 뒷산에 묻고 오던 날 어린 그에게 감을 따주었다는 셋째 외삼촌과 그날 따먹은 건 감이 아니라 밤이었다는 첫째 외삼촌, 그는 그 중간쯤에 서 있는 담이었던 거다 혹은 이듬해 연곡천에서 끓여먹던 개장국 안에 흰둥이의 눈깔이 들어 있었다는 사촌누이와 처음부터 대가리는 넣지도 않았었다는 막내의 실랑이, 그는 그 사이에 끼여 들리지 않는 발음이었던 거다
있거나 말거나 있었거나 없었거나
그러니까 선로 밖으로 휩쓸려나가 처음 보는 동네 정류장에서 노선도 모르는 버스를 기다리며 생각했다 나는 왜 달려오는 전동차 밑으로 몸을 눕히지 못할까 그리하여 수십 수백의 출근길을 몇십 분이라도 훼방 놓지 못할까 생각했다
죄책감 ―천부에서
우리는 계단을 내려갔다 짐을 부리자마자 계단을 내려갔다 눈이 쌓인 만큼 계단은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곳이 계단이라 믿으며 계단을 내려갔다 눈이 쌓인 곳으로 소리도 사라졌다 길이 길이었던 곳으로 계단이 계단이었던 곳으로 우리는 내려갔다 내려가도 내리막이었다 멀리서 벼랑을 때려대는 파도는 몇천 년이고 그래왔다는 듯이 파도였다
우리는 계속 계단을 내려갔다 내려가다가 우리는 우리가 길을 만들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별 시답잖은 생 각을 다 해보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