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가치를 찾아서
도서1팀 김도훈 (문학, 인물 담당 / eyefamily@yes24.com)
그의 책을 마주하고, 두 가지 질문.
21세기다.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만 같았던 그 21세기가 현실이 됐다. 스마트폰 하나로 전 세계 사람들과 친구가 될 수 있고, 출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주문한 책을 퇴근하기 전에 받아볼 수 있는 것을 보면 확실히 나날이 새로운 세상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21세기에는 그 변화가 더욱 급격하고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왜 삶은 여전히 치열하고, 고독하고 외로울까? 인류가 축적해온 기술과 문화, 과학은 우리네 삶을 궁극적으로 풍요롭게 할 수 없는 걸까? 결론적으로, 왜 우리는 여전히 살기 힘든 걸까?
독창적인 방식으로 인류의 역사와 문화를 아우르며 현대적 일상의 가치를 조명해온 알랭 드 보통이 색다른 주제를 가지고 우리를 찾아왔다. 그것도 한국 독자에게 가장 먼저, 21세기와 통 어울리지 않는 "종교"라는 키워드를 던지면서. 어린 시절부터 철저한 무신론적 환경에서 자란 그가 이 첨단의 시대에 왜 "종교"를 이야기하고 있을까? 자신들의 교리와 신념을 중시하면서 그들과 다른 이들에게는 갖은 수단을 동원하며 폭력적이기 일쑤인 "종교인"들이 가득한 이 시대에, 왜 하필 "종교"일까?
무신론자가 종교를 통해 배운다고?
알랭 드 보통은 그 자신이 무신론자이지만 여전히 살기 힘든 이 세상에 '종교'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종교적'인 것이 필요하단다. 역설적이게도, '신은 죽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신을 섬기는 사람들과 공동체, 또한 그들이 생산해온 문화와 제도를 거울삼아 현실을 비춰보고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역설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이 책의 제목이다.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알랭 드 보통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하다. 소외와 고립, 외로움과 고독으로 가득한 현대사회가 종교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점이 분명 존재한다는 것. 그리스도교(가톨릭과 프로텐스탄트 모두 포함), 불교, 유대교 등 아직도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종교와 '종교적'인 것들의 사례를 구체적으로 열거하면서 그들에게서 얻게 되는 교훈을 조목조목 설명한다. 100명이 함께 모여 찬송을 부르는 행위와 낯선 이들의 발을 씻어주는 전례적인 행위 속에서 현대사회가 잃어버린 공동체 정신을 배울 수 있고, 현대 교육체계가 지양하는 종교의 교육방법-추상적 관념과 삶 사이의 관계에 대한 강조, 텍스트에 대한 명료한 해석과 같은 방법-을 통해 지식보다 지혜를 반복적이면서도 효과적으로 가르치는 교육체계를 배울 수 있단다. 뿐만 아니라 인간이야말로 본래적으로 결함을 가진 피조물이라고 생각하는 "비관주의" 전통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서 감사와 만족을 느끼며 살아가는 삶을 만들어 갈 수 있다고 한다. 인류는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꾸준히 진보할 것이라는 막연한 낙관주의가 만연한 현대사회가 종교 전통의 비관주의를 통해 배울 수 있다는 것.
현대사회의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가치
현대사회에서는 대개 '종교'라고 하면 현실과 동떨어진 저 너머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非현실적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분명한 오류다. 종교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물론 종교는 학문에서 다루기 힘든, 아니 다루지 않는 저 너머의 세계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죽음 저 너머의 세계에서부터, 눈으로 볼 수 없고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영적인 세계까지 "모두" 설명한다. 왜냐하면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해 설명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설명을 위해 '非현실적'인 세계를 다루기도 하지만, 이에 못지 않게 인간이라는 존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상당한 부분을 할애한다. 존재 자체에 대한 정립 이후에는 그 존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이러한 종교의 행동규범은 非종교인이 보기에 인간의 삶을 너무 옭아 매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구체적으로 현실적이다.
알랭 드 보통은 이러한 종교의 현실성에 주목하면서 역설적이게도 무신론자들에게도 도움이 될 법한 이야기들-자애, 교육, 공동체, 미술, 건축 등-을 구체적으로 전한다. 총론이기보다 각론이라고 할까. 무신론자이면서도 종교의 긍정적인 측면을 다각도고 분석하는 모습이 그답다. 세부적인 그의 논의를 읽다 보니 결국은 의미와 가치에 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사회가 잊고 있는, 알지만 덮어 놓은 가치에 다시금 주목해야 한다는 메시지 말이다.
이러한 사실은 종교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통해서도 발견할 수 있다. 상징 인류학과 해석적 인류학의 탁월한 이론가인 클리포드 기어츠는 그의 대표적인 저서인 『문화의 해석』을 통해 종교에 대한 광의적인 정의를 내린다. 그는 종교에 대해 일컫기를, "인간 존재에 대한 의미부여 체계"¹라고 말한다. 그의 정의를 좀더 확대하자면 불교가 인간과 세계에 대해 설명하는 방식이 불교도들에게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듯이, 그 사람으로 하여금 그렇게 행동하고 살아가도록 하는 의미부여체계가 그 사람의 '종교'이자 '신앙'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개념을 빌려 확대해보면 어떤 이에게는 명예가, 또 다른 이에게는 돈(물질)이 자신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체계가 될 수도 있다. 이 책은 결국 이러한 의미와 가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현대사회가 잃어버린 가치와 의미를 되찾으려는 시도라고 할까.
내 삶을 지탱하는 가치는 뭘꼬.
『어린 왕자』를 보면 여우가 어린 왕자를 떠나면서 소중한 교훈을 남기는 장면이 나온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교훈.² 효율과 효과를 중요시하는 현대 사회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말 같지만 알랭 드 보통 역시 이 책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이야기한다. 때로는 고리타분하고 재미없게 여겨지지만, 인류 역사를 통해 살펴보면 인간과 사회, 그리고 이 세계를 굳건히 지탱해온 그러한 가치들 말이다. 사랑, 믿음, 관용, 정의, 절제, 친절, 아름다움...
그의 책을 덮어놓고, 눈을 감아본다. 나로 하여금 움직이게 하고, 내 삶을 좌지우지하는 가치는 무엇인지, 하루하루 바쁜 일상 속에서 중요한 가치를 잊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되뇌어본다. 확실히, 눈에 보이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중요하긴 한가보다. 그래서 더욱 질끈 눈을 감아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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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클리포드 기어츠, 문화의 해석, 1998, 까치, p.115. 실제 종교에 대한 그의 정의는 훨씬 더 복잡하고 다층적이다.
2) 다양한 번역본의 어린왕자를 보아도 동일한 내용을 발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