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스스로의 지혜와 능력으로 이러한 상태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으나, 하나님의 성령은 이러한 불행에서 인간을 건져내 빛과 생명과 하나님의 세계로 들어가게 하신다. 하나님의 첫 창조가 어둠을 극복했듯이, 복음의 진리를 통한 성령 하나님의 재창조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예수님의 얼굴빛을 보게 한다(고후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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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의로 간주하신 ‘이’는(‘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만일 이것이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는 것 자체를 가리키는 것이라면 아브라함의 믿음이 그의 의로 여겨졌다는 뜻이 된다.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라는 바울의 진술도 이러한 해석을 지지하는 것같이 보인다(롬 4:9). 그러나 문맥을 자세히 보면 믿음을 통해서 의가 주어진다는 의미로 바울이 이해한 것이 분명하다(롬 4:11, 13). 사실 사도 바울에게 믿음은 언제나 하나님의 의를 얻는 수단이고, 의의 근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이다(롬 4:24-25; 갈 2:16; 3:13-14; 빌 3:9). 그러므로 믿음은 반드시 있어야 하는 중요한 것이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믿음의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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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로 하여금 이러한 암울한 미래를 피하고 번영과 형통의 밝은 미래를 얻도록 하기 위해서 율법의 모든 말씀을 주셨다(29:29). 29절의 ‘감추어진 일’들은 하나님 백성의 미래와 관련된 일들이다. 이것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 백성의 관심은 그들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깊이 탐구하는 것이 아니다. ‘감추어진 일들’과 반대되는 ‘나타난 일들’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행복과 번영을 위해서 주신 모든 율법과 계명과 율례와 법도를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율법의 모든 말씀에 순종하게 하시려고 이것들을 자기 백성에게 주셨다. 그러므로 모든 백성의 관심은 하나님께서 계시한 모든 말씀에 있어야 하고, 그들이 어떻게 하면 그분의 모든 말씀을 지키고 순종할지에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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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이 여호와께 묻지 아니했다는 언급은 설명이 필요하다. 사울은 블레셋과의 임박한 전투를 앞두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구했으나 하나님께서 일체 응답하지 아니하셨다. 삼상 28장 6절은 “사울이 여호와께 묻자오되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셨다”고 분명하게 말한다. 이 언급은 사울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세 가지 방도로 물었음을 분명하게 한다. 그 셋은 꿈과, 제사장의 에봇에 들어있는 우림과, 선지자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에 전혀 응답하지 않으셨다(10:6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시므로”). 그 결과 사울은 자신이 전에 죽였던 신접한 자와 박수들 중에 생존한 엔돌의 신접한 여인을 찾은 것이었다. 그러므로 14절의 사울이 여호와께 묻지 않았다는 것은 삼상 28장 6절에 언급된 사실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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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16장) 1절은 사람에게 속한 것과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것을 대조적으로 말한다. 사람에게 속한 것은 마음의 경영, 곧 마음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생각하고 정리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언제나 마음으로 생각을 정리한 그대로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 세상에 자기가 말하고자 계획한 대로만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말(혀)의 응답(대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온다는 대조적인 진술은, 아무리 사람이 곰곰이 할 말을 생각해도, 경우에 합당한 적절한 말은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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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됨의 이차적인 목적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시고 그를 사랑하신 것과 같이, 그의 제자들도 세상에 보내셨고 그들을 사랑하신 것을 세상이 알게 하는 것이다(17:23). 이차적인 목적은 일차적인 목적이 이루어질 때 성취가 가능하다. 예수님께서 이와 같이 하나 됨을 위해서 기도하셨으나, 애석하게도 기독교의 역사는 분열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교회의 빈번한 분열은 복음 진리의 증거를 약화시켰다. 이제 모든 신자와 교회는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님의 하나 됨을 모델로 삼고, 그의 거룩한 진리의 말씀을 하나 됨의 기준으로 삼아, 온전한 하나 됨을 이루어 많은 사람을 구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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