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합천에서 태어나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으로 『그리운 주막』 『가을 악견산』 『약쑥 개쑥』 『풀나라』, 연구서로 『한국 근대시의 공간과 장소』 『한국 근대문학의 실증과 방법』 『한국 지역문학의 논리』 『경남·부산 지역문학 연구 1』, 산문집으로 『몽골에서 보낸 네 철』 『시는 달린다』 『새벽빛에 서다』를 냈다. 『허민 전집』 『무궁화―근포 조순규 시조 전집』 『소년소설육인집』을 비롯한 여러 책을 엮기도 했다. 2006년 한 해 동안 몽골에 초빙교수로 머물렀다. 현재 경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아침 햇살에 쑥대가 붉다 추위 탓으로 생각이 잦아졌는가 발밑에서 등뒤에서 바스락거린다 천문대 호텔 높은 뜰 멀리 눈밭을 건너는 기차와 기차를 따르는 철조망 강에서 풀을 뜯는 소떼는 지난여름 물줄기 함께 씹는 게다 휘청 강이 허릴 비튼다 치마 능선 길게 들린다 어쩌다 여자도 드센 여자를 만났다.
---「외도」 전문
소젖차를 쏟는다 누가 어깨를 쳤나 보니 팔짱 낀 채 늘어선 벼랑 웅성웅성 서녘이 붉다 낙타가 푸른 늑대를 쫓는다는 골짝은 어제 지났다 막 어른이 된 듯한 여자아이가 늙은 아버지와 소똥을 줍는다 휘파람을 부는 뱀 건너 느릅나무가 무릎을 굽힌 채 본다 하늘 옆구리를 조용히 내딛는 초생달 저승 문지방은 누구하고 건넜을까.
---「고비알타이」 전문
동티가 날까 도착 시간을 묻지 않았다 남은 거리로 짐작하며 웃었다 해가 지는 동안 톨 강가에서 소젖차를 끓였다 낙타구름은 등짐째 서쪽으로 가고 낙타 가족은 고개 저으며 남쪽으로 갔다 배부른 가시숲 고개를 넘어서면 삶은 둥근 슬픔에 찔리는 일 산신에게 올릴 양고기를 소주에 적셨다 산 가까이서 이름을 불러 얼마나 많은 산이 숨어버렸던가 엄지손가락을 빠는 화롯불 곁에서 아이들은 양 복숭뼈를 던지고 흰 꽈리처럼 부푼 잠을 잤다 길은 어디서 마을을 잃어버린 것일까 게르에 얹어둔 바지는 어젯밤 늑대가 물고 갔다 옷을 입고 사람살이를 배우려나 다른 집에 들어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려나 게르 문지방을 밟고 간 보름달은 이제 자갈 사막 벗어나리라 혼자 소금 호수로 들리라.
---「타락을 마시는 저녁」 전문
타르왁은 몽골 모르모트 옛날 으뜸 활꾼 타르왁은 솜씨를 으스대던 지배자 하인이 꺾기 위해 부추겼다지 날짐승을 맞히도록 그런데 까마귀는 떨어뜨렸으나 제비는 꼬리를 맞히는 바람에 떨어뜨리지 못했다나 약속한 대로 두 앞발을 씹어버리곤 땅속 짐승으로 살아가게 되었다는 이야기
물을 마시지 않거나 풀뿌리만 씹는 일이 어찌 자랑일 수 야 있는가 소리 다른 매와 까마귀가 둥지 서로 나눌 때까지 줄기 다른 자작나무와 노간주가 뿌리 서로 섞을 때까지 하 루에 세 번 먹을 때만 나와 짧은 앞다리로 바투 서는 삶 모 질다 모질다 해도 해를 보지 않기로 한 약속을 지키려 땅짐 승이 되어버린 타르왁을 따르랴
털갈이 끝난 들 땅속에서 땅속으로 흐르는 너와 길에서 길로 떠도는 나와 둘이 서서 보내는 낮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