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한국 정치의 문제는 진보보수, 여야의 문제도 아니고 ‘버르장머리’의 문제도 아니었다. 때마침 가수 이정현의 테크노 음악 ‘바꿔’가 큰 인기를 누리면서 “바꿔 바꿔 바꿔 모든 걸 다 바꿔”라는 외침이 시대적 메시지인 것처럼 들렸지만 한국 정치의 문제는 물갈이를 한다고 해서 달라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정치인들이 특권층으로 여겨지는 풍토와 더불어 그들의 ‘특권 중독증’이었다. 한국처럼 ‘정치 지상주의’가 심한 나라에서 국회의원이 누리는 특권을 그대로 두고서 그 특권을 누릴 사람들의 자격을 심사하겠다는 건 그 선의에도 불구하고 결국 처절한 ‘밥그릇 싸움’으로 전락할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었던 셈이다. --- p.44 (1권)
911 테러는 국제 관계에서 미국의 ‘일방주의’를 최고조에 이르게 만들었다. 부시 행정부는 2001년 12월 탄도탄요격미사일(ABM) 협정 탈퇴를 선언했으며, 핵실험금지조약(CTBT), 생물무기금지협정(BWC), 화학무기금지협정(CWC)과 같은 다자간 국제 군비통제 체제에 대한 불신을 노골적으로 표명했다. 이어 2002년 1월 대통령 연두교서에서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이란, 북한을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규정함으로써 대북 관계는 물론 한국의 남남 갈등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 p.320 (1권)
2002년 2월 18일 국회 본회의 대정부 질문에서 민중당 출신 한나라당 의원 이재오는 이회창을 비판하는 어느 민주당 의원의 발언에 대해 “이 빨갱이 같은 놈아, 그만해”라는 욕설을 퍼부어 화제가 되었다. 민주화 투쟁과 좌파 정당 활동을 하는 동안 여러 차례 ‘빨갱이’로 몰리면서 감옥살이를 했던 사람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 겨우 “이 빨갱이 같은 놈아, 그만해”라니, 재미있지 않은가? 혹 이재오는 원래부터 “이 빨갱이 같은 놈아, 그만해”라는 식의 생각을 갖고 있던 사람이었는데, 그걸 위장하고 재야 투쟁을 했던 걸까? 아니면 강한 출세욕 또는 ‘인정 욕구’에서 그런 변절의 원인을 찾는 것이 옳을까? --- p.26 (2권)
2002년 가을 김종엽은 “월드컵을 계기로 굉장한 에너지를 경험했는데…… 다양한 세력들 사이에서 그 에너지의 성격을 규정하고 이를 흡수하려는 투쟁이 벌어지고 있고 이런 시도는 앞으로 상당히 지속될 듯합니다”라고 전망했다. 그런 투쟁의 승자이자 월드컵 열풍의 가장 큰 수혜자는 정몽준과 노무현으로 나타났다. 정몽준은 유력 대선 후보 1위로까지 떠올랐으나 여론조사를 통한 노무현과의 후보 단일화 ‘도박’에서 패배했고, 정몽준의 월드컵 파워까지 넘겨받은 노무현은 2002년 12월 대선에서 승리해 대통령이 된다. --- p.117 (2권)
2004년 3월 12일 오전 11시 56분, 헌정사상 최초로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됐다. 찬성 193표, 반대 2표였다. 가결 직후 본회의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국회의장석을 향해 명패와 서류 뭉치를 던지며 격렬하게 항의했다. 국회의장 박관용은 열린우리당 의원들에게 “왜 이런 일을 자초합니까? 자업자득입니다”라고 말했으며, 단상 위에서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던지는 신발을 막는 경위들에 둘러싸여 “대한민국은 어떤 경우라도 전진해야 합니다”라고 외쳤다. --- pp.20~21 (2권)
이전의 한류가 주로 중국 중심이었다면, 2004년부터의 한류는 적어도 언론 보도상으론 일본에서의 ‘욘사마 신드롬’으로 수렴되는 것처럼 보였다. ‘욘사마’는 배용준을 가리키는 일본어의 극존칭이다. 일본 기자들은 ‘욘사마 신드롬’, ‘욘사마 사회현상’, ‘욘사마 종교’, ‘욘사마 교주’, ‘욘사마병’등 다양한 이름을 붙였다. 한국에서 배용준을 취재하기 위해 와 있는 일본 기자만 50여 명이나 되었으며, 일본 스포츠신문이나 주간지들은 배용준의 기사 게재 여부에 따라서 최소 5만~10만 부 이상의 판매 부수 차이가 났다. --- p.208 (3권)
한국과 같은 대통령 공화국 체제에서 대통령 결정론은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과연 그런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각 캠프는 모두 이구동성으로 다른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나라가 망하거나 큰 위기에 처할 것처럼 말한다. 당선 가능성이 높은 두세 명의 후보는 각자 수백만 명의 지지자를 거느리고 있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그 수백만 명의 정신 상태를 의심해야 하는 걸까? 그것보다는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나라가 망하거나 큰 위기에 처하지 않게끔 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데에 지혜를 모으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대통령 결정론을 어떻게 평가하건, 그건 한 가지 치명적인 결함을 안고 있다. 대통령이 잘못된 길로 가더라도 막을 길이 없다. 국민이 할 수 있는 일은 이미 투표장에서 다 끝나버렸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무슨 일을 하건 묵묵히 따라가거나 구경할 수밖에 없다는 체념과 패배주쟀가 대통령 결정론의 토대다. --- pp.421~422쪽 (3권)
2006년 11월 7일 열린우리당 김한길 원내대표는 국회 연설에서 “열린우리당 창당은 정치사에 크게 기록될 만한 의미 있는 정치 실험이었다. 이제는 그 실험을 마감하고 지켜가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을 가려내 다시 시작하는 아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정기국회를 끝내 놓고 당 진로에 대해 결론을 내겠다”고 했다.
11월 8일 열린우리당 정동영 전 의장은 기자들과의 오찬간담회에서 “4대 개혁 입법(국가보안법, 사립학교법, 과거사진상규명법, 언론관계법)의 모자를 썼던 게 잘못인 것 같다”면서 “주력했어야 할 초점은 우리당을 만들어준 시대적 계층적 요구에 응답하는 것이었는데 실용이니 개혁이니 하는 쓸데없는 공방으로 날을 세운 게 통탄스럽다”고 말했다. 정 전 의장은 “(이 같은 생각은) 당에서 (당의 실패에 대해) 집단적으로 느끼는 정서”라고 했다. 정 전 의장은 “참여정부는 집행 과정에서 ‘관료의 바다’에 빠졌고 그 바다에서 항해술이 부족했다”면서 “관료의 바다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여우와 사자의 지혜가 필요했다”며 아쉬워했다. --- pp.147~148 (4권)
인터넷을 떠도는 화제의 신조어는 단연 ‘고소영’이었다. 고소영은 ‘고려대 출신’, ‘소망교회 신도’, ‘영남 출신’의 맨 앞 글자를 따 만든 말이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단행한 청와대와 내각 인사가 특정 인맥에 쏠린 것을 풍자한 것이다. “고소영이 대한민국을 접수했다”는 말까지 나왔다. --- p.43 (5권)
그 많던 촛불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아니, 우리는 촛불의 폭발과 몰락에서 무슨 교훈을 얻어야 하는 걸까? 답은 ‘승자 독식주의’에 대한 재검토에 있는 건 아니었을까? 앞으로 어떤 선거에서건 아무도 완승은 가능하지 않으며, 누가 이기건 ‘승자 독식주의’는 나라를 망치는 짓이니, 더불어 같이 살아야 한다는 걸 깨달아야 할 기회는 아니었을까? 그러나 그런 깨달음은 아직 오지 않았고, 앞으로도 격렬한 증오의 대결 구도와 거기에서 생기는 사회적 혼란은 계속된다. --- p.155 (5권)
민주화 이후에도 수많은 죽음이 있었다. 어떤 죽음은 외면되었고, 어떤 죽음은 범국민적인 촛불집회로 추모되었다. 우리는 곧잘 ‘죽음에 대한 예의’를 말하지만, 우리는 결코 그런 예의에 투철한 사람들은 아니다. 매년 200명이 넘는 어린 학생들이 자살을 하고, 철거민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수시로 자살해도 우리는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죽음에 대한 우리의 철학은 정치 과잉이다. ‘편 가르기’ 원리에 따라 자신이 마땅치 않게 보았던 사람이 자살을 하면 조롱을 하는 불경까지 서슴없이 저지르는 사람들도 많다. 같은 편에서 그걸 꾸짖는 사람도 없다. 우리는 지금 노 전 대통령의 서거 국면에서도 그런 일들이 수없이 벌어지고 있음을 목격하고 있다. 아, 죽음에까지 침투한 이 무서운 ‘죽음의 정치학’이여!
--- p.374 (5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