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성경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표현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표상을 사용하지만, 여기서 사도가 특별히 사용하는 표상은 한 몸으로서의 그리스도와 교회의 표상이다. 남편에 대한 아내의 태도를 보여주기 위하여 사도가 사용한 표상은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몸인 교회의 표상인데, 여기 아내에 대한 남편의 태도를 논하는 부분에서 사도가 취한 표상은 몸인 그리스도와 그 지체인 교회이다. 참으로 창조적인 사고의 전환이다.
그러나 이것은 자신의 생각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근거 없이 무원칙하게 표상을 사용한 것이 아니다. 사도는 그리스도와 교회가 맺는 관계의 이 두 가지 측면이 아내와 남편과 관련하여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 것이다. 여기서 강조되는 사랑의 성격은 자신의 몸에 대한 사랑이다. 그리고 이것은 곧 자신에 대한 사랑이다. 아내에 대한 남편의 사랑은 바로 사람이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랑에 비교되는 사랑이다. 그리고 이 사랑의 참된 원형은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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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과 하와 이후의 어떤 부부도, 아내가 남편의 갈비뼈로 지음 받은 경우는 없다. 그러므로 아담과 하와의 ‘한 몸’은 그 이후의 모든 부부가 원형으로 삼아야 할 ‘한 몸’이다. 24절 허두의 ‘이러므로’라는 말은, ‘아담과 하와가 그런 방식으로 피조되어서 세상에 등장하여 그런 관계를 맺었다는 사실로부터’ 라고 풀어 쓸 수 있다. 즉 아담과 하와의 ‘한 몸’은 계시의 도구로 사용된 원형적 관계의 한 몸이다. 그러므로 모든 부부 관계는 그 계시의 관계를 닮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일차적으로 하나님께서 하와를 아담과 동일한 방법으로 만들지 않으시고, 아담의 육체의 일부를 가지고 만든 것은 혼인 관계의 본질이 어떠해야 함을 보여주기 위한 방편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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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가정은 교회와 분리되어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각각의 가정은 그 자체가 작은 단위가 되어서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드러내야 하지만, 그 각각의 가정들은 다시 하나의 공동체인 교회가 되어서, 전체적으로 그리스도와 관계를 가지며, 이런 관계를 통하여 가정은 다시 그 가정을 위한 규범을 배우게 된다. 가정과 교회는 그런 방식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어떤 형태의 공동체들을 형성해 가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혼인 관계는 많은 경우에 교회에 의존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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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에 대한 아내의 복종, 아내에 대한 남편의 사랑은 이와 같이 상대방에 대하여 요구할 수 있는 권리 조항이 아니라, 상대방에 대하여 서로가 지는 의무 조항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면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하는 논쟁은 사라질 것이다. 물론 에베소서의 이 구절을 공부한다고 해서 하루 아침에 남편은 아내에 대한 사랑의 화신이 되고 아내는 남편에 대한 순종의 화신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렇게 기대할 수도 없다. 그러나 이런 사랑을 아내에게 쏟을 수 있는 남편, 이렇게 남편에게 순종하는 아내가 되기 위하여 다른 묘방을 찾아도 효과는 없다. 우리는 다시 이 구절을 묵상하고 다시 이 구절을 읽으면서, 사도에게 영감을 주셔서 이 구절을 기록하게 하신 그 성신께서 이 구절을 사용하여 우리 안에 그런 사랑과 순종의 정신을 일으켜 주시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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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는 간단한 말을 통하여 사도는 자녀에 대한 부모의 권리와 관련된 자신의 생각을 압축하여 표현하였다. 그러므로 이 말은 깊이 음미할 만한 내용이다. 이것과 관련하여 일반적으로 부모가 잘 빠지는 폐단 중의 하나는 자녀를 자신의 소유로 생각하는 것이다. 자녀가 자신의 몸을 통하여 세상에 태어났다는 사실, 그리고 그 아이의 존재와 생명이 자신을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부모는 부지불식간에 자녀에 대하여 마땅히 행사하여야 할 이상의 권위를 행사하려는 유혹에 빠질 수 있으며, 그런 착각으로부터 기인되는 모든 행동은 궁극적으로 자녀를 노엽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녀를 노엽게 하는 부모의 행동이란, 자녀가 한 인간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가지는 권리와 존엄성을 인정하여 그를 존중하고 함부로 대하지 말아야 함을 망각하는 모든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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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인 남종에 대한 규례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히브리 남자가 종으로 일할 수 있는 최장 기간은 6년이다. 여하한 이유로 종으로 팔렸더라도 그는 7년째에는 해방되어 자유인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만약 그가 종으로 봉사하는 기간 중간에 희년이 끼어 있다면 그는 6년을 다 채우지 않고 해방되어야 한다. 희년에는 모든 종이 무조건 해방되어야 하고 모든 토지가 원래의 가문에게 돌아가야 하는 까닭이다. 둘째, 만약 히브리 남자가 종으로 올 때에 혼인한 상태였든지, 혹은 종이 된 다음에 자기 힘으로 혼인했다면 그는 해방될 때에 가족과 함께 나간다. 셋째, 만약 히브리 남종이 상전이 준 여인과 혼인하였다면 그가 나갈 때에 아내와 자녀를 데리고 나가지 못한다. 넷째 그러나 그가 주인 및 자기 가족과 헤어지기를 원치 않는다면 일정한 예식과 서약에 의해서 평생 동안 영원히 그 주인의 종이 될 수 있다. 이것이 남종에 대한 규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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