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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왜 연쇄살인범이 되었나

그녀는 왜 연쇄살인범이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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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1년 09월 22일
쪽수, 무게, 크기 288쪽 | 450g | 153*224*20mm
ISBN13 9788994963129
ISBN10 899496312X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1 죽음을 부른 삼각관계
베르너 콜슈라이버는 수사 결과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확인 결과, 한스 그뤼네는 신원 미상의 사망자와 동일 인물로 볼 수 있는 요건이 충분하다. 그는 아내 엘프리데와 그녀의 애인 게르하르트에게 살해되어 유기된 것으로 보인다. 이런 혐의를 뒷받침해주는 징후는 많다.--- p.23

남편은 나를 오랫동안 가졌으며 그래서 속속들이 알고 있는 자기 소유물인 양 취급했다. 신이나 전쟁에 관한 이야기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으며, 히틀러를 두고 애석하게도 진가를 인정받지 못한 지도자 운운했다. 분통이 터졌다. 나는 남편에게 잠자리 상대, 필요할 때 부려먹을 수 있는 가정부, 남들 앞에 내세울 마누라에 지나지 않았다. 그저 오로지 그만 돌보고, 언제든 부르면 달려가야 하는 시녀나 다름없었다.
… 그러나 나 역시 한 인간이지 않은가. 나도 내 인생을 살아야 하지 않는가. 그러나 남편은 단 한마디도 내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 그저 법적인 남편으로서의 권리만 행사하면 그뿐이었다. 나는 혼란과 회의에 사로잡혔다. 불행했으며, 갈가리 찢긴 것만 같았다. 마치 우리 안에 갇힌 짐승처럼 굴욕적인 기분이었다. 정말 끔찍했다--- pp.35~36

여성이 저지른 살인은 보기 드문 사건이다. 독일 연방경찰청은 2006년도 범죄 통계를 발표하면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상해와 살인 사건의 수사에서 혐의자는 주로 성인 남성이다.” 구체적인 수치로 따져보면 이렇다. 살인 사건에서 여성이 범인인 경우는 단지 15퍼센트에 해당한다. 과실이 아니라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하는 살인과 자신을 죽여 달라는 상대의 요구에 따른 살해의 경우에는 그 수가 더욱 줄어들어 12퍼센트에 불과하다. 여성보다는 남성이 치명적인 폭력을 쓴다는 점은 범죄학에서 전혀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 여성 살인범이 남성 살인범과 차이를 보이는 점은 이를테면 갈수록 나이가 어려지는 경향이 있으며, 기혼자인 경우가 많고 전과가 거의 없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살인 동기의 성격에서 찾아볼 수 있는 주요한 차이점은 여성의 경우 대개 관계가 엇나가면서 빚어지는 문제라는 사실이다. 여성이 범인인 살인 사건에서 희생자는 주로 남편이나 애인 또는 자신의 아이다. 반대로 남성 범인은 주로 자신이 속한 공동체나 가족 바깥에서 살인을 저지른다. 그리고 희생을 당하는 쪽도 대개 남성이다. 여성이 범인인 살인 사건에서 가장 많은 경우는 자신의 이성 파트너를 죽이는 것이다. 이른바 범죄학에서 ‘치정살인’이라고 부르는 이런 살인 행태는 지난 200년 동안 거의 변함이 없는 양상을 보여주었다.--- pp.49~51

최근의 과학 연구 역시 여성 살인범은 대개 일차적으로 남성의 주도권에 맞서 그의 폭력으로부터 자신과 아이 혹은 다른 가족을 보호하려는 욕구가 가장 큰 동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많은 경우에 어려서 폭력이나 무시에 시달렸거나, 심지어 성추행을 당한 경험이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어떤 경우든 여성 살인범의 시각으로 보면, 지긋지긋한 짐승이 되어버린 남편이나 애인이 가하는 위협은 이혼이나 이별과 같은 사회의 통상적인 분리 방법만으로는 충분히 방어하기 힘든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 결국 물리적인 힘을 앞세운 남성이 자꾸 경계를 넘어 괴롭히면 여성은 드디어 살인을 결심하게 된다.--- p.52

유명한 심리학자 안드레아스 마르네로스는 애정 관계에서 여성이 남성을 죽이는 원인을 여성의 전형적인 문제로 바라보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 “남성이냐 여성이냐 하는 차이 외에도 개인의 성향이나 그때그때의 상황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자아도취의 나르시시즘이 병적인 지경에 이르러 비극을 낳는 것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여성이 저지르는 살인 사건의 대부분이 임상적인 수준에서의 나르시시즘 인격 장애를 보이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나르시시스트의 징후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즉, 병적인 수준은 아니라 할지라도 그런 징후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터무니없어 보일 정도로 과도하고 깊은 두려움, 자학하듯 쏟아내는 열등감, 무턱대고 자존심을 부풀리며 거침없이 자신의 욕구를 과장하고, 주변은 아랑곳하지 않는 태도 등이 그런 징후다. 여성이 이 단계에 이르게 되면, 남성에게는 죽음의 그늘이 드리워진다.--- pp.61~62

2 침묵 그리고 살인
언론은 연일 대서특필을 해댔고, 나라 전체가 충격에 휩싸였다. 갓난아기를 아홉 명이나 죽이다니, 그런 범죄는 독일의 범죄 역사상 초유의 사태였기 때문이다. 수잔네 헤흐트는 아홉 번이나 자신의 뱃속에서 생명이 자라는 것을 느꼈다. 태아가 자궁 속에서 처음으로 꼼지락거리며 몸을 뒤채는 것을 고스란히 감지했다. 배가 불러오며 몸이 출산의 순간을 위해 준비 작업을 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새 생명이 이제는 곧 세상으로 나갈 거라며 힘차게 발길질을 하는 것을 어떤 감정으로 받아들였을까? 아홉 번이나 그녀는 탄생 직후의 신생아를 돌보지 않고 버려두었다. 아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 끝에 죽음을 맞도록 방치한 것이다.--- p.68

수잔네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치과 보조사 일을 배우러 다녔다. 그게 아버지의 뜻이었다. 항변 한마디 하지 않았고 불평을 한 적도 없었다.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결정하고 꾸려간다는 것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었다. 집에서든 학교에서든 어른의 말에 순종해야만 한다고 배우며 자란 수잔네였다.
… 수잔네의 생활환경은 겉보기에는 변했지만, 사실 내용은 그대로였다. 가정에서의 결정권은 어디까지나 남편의 몫이었다. … 생활비를 벌어다주는 남편은 집에서 제왕처럼 군림했다. 아내의 인생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역시 남편이 결정했다. 실제 느끼는 감정은 정반대이면서도 수잔네는 이를 감수하고 살았다. 자신이 무엇이어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예전에는 아버지가 결정했다면, 이제 그 권한을 남편이 쥐고 있었다.--- pp.74~76

엄마나 아빠 혹은 두 사람이 합심해서 친자식을 죽이는 일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이는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일이다. 심지어 어떤 문화권(예를 들어 특정 에스키모족이나 유목 민족)에서는 아기를 죽이는 것이 도덕적으로든 법적으로든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가족의 규모를 결정짓는 사람은 수천 년에 걸쳐 아버지, 곧 가부장이었다.--- p.99

독일에서 ‘영아 살해’를 처음으로 법적 처벌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1507년의 일이다. 이른바 밤베르크의 ‘형사재판법’이 그것이다. 그로부터 25년 뒤에는 카를 5세가 공포한 ‘카롤리나Carolina’, 즉 일명 고통을 안기는 법령도 아기를 죽이는 일을 중벌에 처할 것이라고 일갈하고 있다. 몰래 사생아를 낳고 곧이어 살해하는 행위는 성생활이 갖는 생산이라는 본래의 기능을 심각하게 저해한다고 보고 엄벌을 내리겠다는 게 그 내용이다. 그런데 문제는 처벌의 대상을 여성으로 국한하고 있다는 점이다. 친자식을 죽인 엄마는 그래서 악마의 창부이며, 곧 마녀와 동일시되었다.

… 국가가 친자식을 죽인 엄마의 특별한 사회적 상황과 그 심리 상태를 처음으로 고려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프로이센의 왕 프리드리히 2세 는 “모든 창녀의 처벌”을 폐지토록 했다. “불륜을 통해 임신한 여성일지라도 그 임신 사실이 알려진다고 해서 무시와 모멸을 받는 일은 줄어들어야만 한다.”

… 1871년 영아 살해는 제국의 형법 법전에도 받아들여졌다. 이른바 “그레첸Gretchen 조항” 은 사생아와 같은 원치 않은 아기를 임신 중에나 혹은 출산 직후에 죽인 엄마를 그 유일한 대상으로 겨눈 것이다. 이 법 조항은 사회적으로 열악한 처지에 있는 여성을 고려해 만들어졌다. 미혼모나 혼외 관계로 임신을 한 여성이 아기를 죽였을 경우, 이 법은 예전처럼 사형이나 무기징역과 같은 중형이 아닌 대폭 형량을 낮춘 형벌을 적용하도록 했다.--- pp.100~102

친자 살해를 저지른 여성의 범행 동기와 그 사회적 배경을 연구한 학문의 결과를 종합해볼 때, 범인의 유형은 크게 세 그룹으로 나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 그룹은 출산 이전부터 아기를 포기할 계획을 세우고 낳자마자 내다버리거나 죽인다. 아쉽게도 이런 여성들에 관해서는 알려진 게 거의 없다.
… 둘째는 임신 사실을 숨기고 누군가 도와주겠지 하는 막연한 희망으로 버티는 경우다. 물론 이때 도움의 손길을 뻗어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1차적 대상은 아이의 아빠다. 간절히 바랐던 관심과 지원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아이는 죽는다. 셋째 그룹은 임신 사실을 한사코 부정하거나, 자신은 임신하지 않았다고 자기 최면을 거는 경우다.--- pp.105~106

영아 살해는 경찰의 범죄 통계에서 여성이 범인으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유일한 범행이다. 또 그게 사안의 본성상 어쩔 수 없는 노릇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임신을 숨기고 부정하다가 아이를 낳아 죽이는 주체는 여성이기 때문이다. 물론 사회적인 모든 연관을 솎아버리고 비극의 책임을 여성에게만 묻는 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원치 않은 임신의 씨를 뿌린 남성 역시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게다가 아기를 가진 여자를 홀로 버려두고, 흘려볼 수 없는 문제에서 애써 눈을 돌리는 남자야말로 비극을 낳은 주범으로 비난받아야 마땅하다.--- p.111

3 블루베리 마리
“이제는 진실을 말하리다.” 마리아 호른이 무겁게 입을 뗐다. “내가 남편을 독살했어요. 정확히 E 605를 먹였어. 살충제가 들어 있는 작은 양철병은 일을 벌이기 14일 전에 ‘지벤Sieben’이라는 회사에 주문을 해서 샀죠. 어떻게 하는 게 가장 좋을지 궁리를 했지. 결국 후식에 독을 섞기로 결심했어요.”--- p.128

여성 연쇄살인범의 개인적인 프로필은 물론 부정적 특징으로 가득하다. 병적인 요소도 적잖다. 이런 점을 의식하고 유죄판결을 받은 22명의 여성 연쇄살인범의 재판 기록과 정신과 의사의 소견서를 검토해본 결과 다음과 같은 상황을 알 수 있었다.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성격적 특징으로는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거의 59퍼센트에 가까운 여성들이 풀리지 않는 열등감으로 괴로워했다. 그녀들에게서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자신감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생각과 행동이 열등감으로 점철되어 있으며, 그 결과 주변과 철저하게 거리를 두는 폐쇄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 또 생각해볼 수 있는 유형은 자기중심적인 이기적 성향이다. 툭하면 공격적으로 나오며, 남을 배려할 줄 모르고, 절대 자신을 굽히는 일이 없다. 늘 자신이 옳다고 고집을 피우며 대단히 냉정하다. 원래 자신이 타고난 재능은 많은데 이런저런 이유로 좌절했다고 믿는 경우가 태반이다. 아니면 앞으로 별로 잘될 기회가 없다고 생각하고 두려워한다. 이들에게 살인은 일종의 해방을 위한 몸짓이다. 사생활의 경계선을 넘어오거나 장차 위협이 될 것으로 보이는 사람, 한마디로 짐스럽고 부담스러운 사람은 죽여야만 한다.--- pp.136~138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여성이 어떤 특정한 성격을 자주 보여준다 하더라도, 그런 특징을 가지고 살인을 범할 전형적인 성격이라고 단정 짓는 것은 무리다(지금까지 22명의 여성 연쇄살인범 가운데 체포되어 법의 심판을 받은 여성은 16명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적은 수를 가지고 일반적 특징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따라서 어떤 특정 성격을 두고 범죄와 관련된 인과성을 추정한다는 것은 비약이다.

… 여성 연쇄살인범이 남성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남성은 보통 전혀 모르는 타인을 상대로 범행을 저지르는 반면, 여성은 주로 가까운 사이에 있는 아이, 남자, 여자를 공격 대상으로 삼는다. 친척이나 친지 혹은 이웃 등 평소 잘 알고 지내며, 또 자신이 돌봐야 할 책임이 있다고 여기는 사람을 해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여성은 남성에 비해 전과를 가진 경우가 드물다. 출신 가정의 상황도 남성보다 훨씬 좋으며, 사회적으로도 더욱 안정적이고 결혼을 한 기혼녀가 태반이다.
그리고 약 32세에 첫 범행을 저지른다. 즉 여성 연쇄살인범은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연령층을 보여준다. 또 여성은 수사 기관의 추적을 남성보다 훨씬 더 잘, 지속적으로 피한다. 여성 연쇄살인범은 첫 범행을 저지르고 나서 평균 6년 반이 넘어야 체포되었다. 이에 비해 남성은 2년 반이면 꼬리가 밟혔다.

남성은 대개 희생자의 목을 조르거나 타살하거나 총상을 입히는 데 반해, 여성은 주로 독살이나 질식사를 택했다. 아무래도 남성 연쇄살인범과 여성 연쇄살인범 간에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그때그때 살인을 저지르는 동기일 것이다. 남성은 대개 상대를 제압하거나 제거하기 위해 범행을 저지르는 반면, 여성은 제압당하거나 제거당하지 않으려고 살인을 범한다. 남성 연쇄살인범은 종종 극단을 향해 치닫는 경향을 보여주는 반면, 여성은 범행을 강행할지라도 스스로 정해놓은 한계를 넘어가지 않는다. 여성의 경우 무엇보다도 범행 목표가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여성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자존심을 지키려는 자기보호이자 자기방어다.--- pp.141~142

4 죽음의 천사
쾰른 경찰은 연쇄살인을 벌인 것이 확실한 피고가 그동안 훔친 돈이 40만 마르크에 달하며, 전부 18번의 살인을 시도해 17명을 독살했다고 결론지었다. 그것도 하나 같이 늙고 병든 노인을 상대로 저지른 범행이었다. 이로써 브리기테 크롤치히는 남성도 아닌 여성으로서 독일 범죄 역사상 가장 악랄하고 잔혹한 살인범이 되고 말았다.--- p.181

브리기테는 이를 악물고 싸웠다. 가진 것 하나 없이 밑바닥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썼다. 법 따위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거듭 법을 짓밟았다. 물론 그 대가는 적잖이 치렀다. 하지만 처벌을 받아도 개의치 않았다. 거짓말을 하고 위조와 날조를 거듭했으며, 속이고 훔치며 빼앗았다. 그것도 몇십 년 동안! 희생자에게 미안한 마음은 전혀 없었다. 그녀는 오로지 자기 자신만 생각했다.--- p.187

연쇄살인은 시민들을 극도로 불안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범인을 검거하는 데 엄청난 수고를 요구한다. 특히 여성이 연쇄적으로 살인을 저지를 때 이런 어려움은 더욱 커진다. 독일에서 여성 연쇄살인범은 체포되기까지 평균 5.5명을 죽인다. 그리고 검거하는 데에는 약 6년 반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범인이 남성인 경우는 한결 사정이 낫다. 통계적으로 남성 연쇄살인범은 4명을 살해하며, 2년 반이면 꼬리가 밟히고 만다. 그렇다면 이는 여성이 훨씬 영악하고 잔인하며 교묘하게 살인을 저지른다는 말일까?

대개의 경우 여성 범인이 잘 발각되지 않는 결정적인 원인은 주로 주변 사람을 범행 대상으로 삼기 때문이다. 직장이나 가정과 같은 익숙한 환경에서 살인을 감행하는 탓에 처음부터 사건을 은폐하기가 쉽다. 아예 그런 사건이 벌어졌는지조차 주변에서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1945년부터 오늘날까지 독일에서 자행된 연쇄살인 22건을 조사해보니 수사기관이 여성을 범인으로 지목한 경우는 단 한 건에 불과했다. 반대로 남성은 대개 충동적인 동기, 이를테면 성욕이나 돈 때문에 공공연하게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잦다. 따라서 발각될 위험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pp.197~198

여성 살인범 가운데에는 단지 32퍼센트만이 전과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수사를 어렵게 만드는 결정적 요인이다. 그들의 지문도, 사진도, 유전자 정보도 경찰의 데이터뱅크에 저장되어 있지 않다. 여성은 그저 어쩌다 실수로 죄를 저지르는 초범이며, 하필 눈앞에서 어른거리기에 명품을 훔치는 비교적 해를 끼치지 않는 범인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형법이 다스리는 중죄는 주로 폭력을 쓰는 일이다. 절도나 사기 혹은 횡령 따위는 상대적으로 가볍게 처벌한다.
이런 사정 때문에 독일에서는 체포당하기 전에 폭력범으로 경찰의 주목을 받은 여성 살인범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다른 죄를 저지른 여성들도 대개 평소에는 품행에 별 이상이 없는, 법을 충실히 지키는 시민으로 여겨졌을 따름이다. 그러니까 여성이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경우, 경찰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그 전형을 찾지 못하고 헤매게 된다. 그만큼 수사의 칼날이 무뎌질 수밖에 없다.

… 자신이 맡은 환자를 줄줄이 살해하는 간호사의 경우, 그 범행이 발각되는 것을 막아주는 장애물은 적잖다. 그리고 범인 자신은 이를 충분히 의식하고 십분 활용한다. 순백의 간호사복을 입은 살인범은 자신의 직업과 지시만 일삼는 의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환자를 상대하기에 지친 나머지 범행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범행을 감추는 데 있어 중요하게 작용하는 원인으로 크게 네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우선, 간호사 하면 떠오르는 순백의 이미지다. 이런 선입견은 간호사가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상상조차 할 수 없다는 두 번째 편견을 낳는다. 더 나아가 병원이나 요양원의 경영진이 여론에 스캔들이 공개되는 것을 한사코 막으려드는 태도도 한몫 거든다. 마지막으로 여성은 자신의 직업을 잃고 형사처분을 받을까봐 두려운 나머지 범행 이전과 이후에 아주 신중하게 행동한다.--- pp.201~202

5 하얀 옷을 입은 살인자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들어간 힘든 수사는 2년이 넘는 세월을 허송한 끝에 마침내 1988년 6월 10일, 부퍼탈 검찰의 공소로 마무리되었다. 검사는 1978년 10월부터 간호사로 일해온 베티나 간츠아우게가 1984년 2월 6일부터 1986년 2월 5일까지 모두 17명의 환자를 “야비한 동기”로 “아주 교활하게” 살해했다고 맹비난했다. 수술실에서 중환자실로 옮겨지자마자 심장마비가 온 것처럼 꾸미려고 클로니딘 성분의 약제를 주성분으로 하는 카타프레산을 정맥에 주사했다는 것이다. 더욱이 다섯 건의 사례에서는 염화칼륨까지 투여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p.210

이른바 ‘죽음의 천사’는 경찰이나 법정에서 살인을 범한 동기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십중팔구 ‘동정심’을 들먹였다. 자신이 돌보던 환자가 아픔에 신음하는 것을 도저히 눈뜨고 볼 수 없었다며 울먹였다. 그런데 이 동정심이라는 게 모호하기 짝이 없다. 물론 환자와 간호사가 감정적으로 아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는 있다. 실제 그런 관계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문제는 살인으로 번진 경우, 그 같은 긴밀한 감정적 유대 관계는 대개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다.

… 중환자실의 간호사나 간병인이 환자를 연쇄적으로 죽이는 데에는 많은 경우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생사를 다투는 극도의 긴장감으로 인해 그런 시설에서 종사하는 사람은 상상을 초월하는 스트레스를 받는다. 몸과 마음이 녹초가 되는 탓에 별것 아닌 일에도 극도의 신경질적인 반응이 아무렇지도 않게 튀어나온다.

… 베티나는 항상 죽음을 눈앞에 두고 살았다. 그녀는 죽음을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벌이며 몇 번이고 달아나버리자고 충동하는 자신을 다스려야만 했다. 인간의 존엄함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생각하지 않고 기계에 의존해 수명을 연장하는 현대 의학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고민에 사로잡힐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도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마음을 달래가면서 날로 황폐해져가는 자신을 애써 무시했을 것이다. 그 같은 과중한 근무 조건은 굳은 심성을 가진 노련한 사람일지라도 간단히 망가뜨릴 수 있다.--- pp.233~234

여기서 물론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범인 자신이다. 누구도 환자를 죽이라고 명령하지 않았으며, 아무도 손을 잡아끌어다가 주사? 놓아주거나 다량의 약을 먹이라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환자 살해라는 불행한 비극은 도움의 손길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간호사를 그 곤경에 홀로 내버려둔 주변의 책임도 무시할 수 없다.

… 과중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게 눈으로 분명히 보이는 데도 갈등을 해결하고 두려움을 풀어줄 시도를 전혀 하지 않은 의사와 동료 역시 피고인석에 앉아야만 한다. 최소한 도덕이라는 이름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물론 궁극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쪽은 중환자실이나 양로원의 인력에만 환자를 떠넘겨놓고, 거기서 벌어지는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 사회 공동체다. 이런 사건을 간호사와 환자 사이의 문제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오로지 죽어가는 과정만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연장시키고 환자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등을 돌리는 사회의 냉혹한 체계가 그 주범이다. 이렇게 볼 때 간호사가 혼이 사라진 체계의 희생양이 되어 환자를 죽이는 일은 얼마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다.--- pp.236~237

6 감응성 정신병
궁핍과 억압의 세월을 사는 동안 카티아는 자신감 상실과 자기소외라는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과정을 겪었다. 살인을 저질렀을 당시 카티아의 자아는 지독한 상실감에 시달렸으며, 자신의 뜻을 실행에 옮기고 관철할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져 있었다. … 그녀의 자의식은 구멍이 숭숭 뚫린 탓에 조금만 건드려도 무너질 정도로 취약했다. 이런 과정의 말기에 이른 카티아에게는 자신의 행동을 합리적으로 통제하고 조절할 능력이 없었다.
… 남자는 강함을 갈구하는 카티아의 심리를 이용해 쉽고 편하게, 그러나 금지된 방법으로 돈을 마련하도록 유혹했다. 그녀는 이에 저항하지 못했으며, 또 할 수도 없었다. 희생자의 죽음을 보고도 카티아는 심드렁하기만 했다. 그만큼 감정이 메말라버렸던 것이다. 심지어 자신의 고통에도 무감한 여자가 되고 말았다.--- p.256

연쇄살인은 여성이 범인인 살인 범죄 분야에서 특별한 성격을 갖는다. 범행이 이뤄질 당시의 정황과 범행의 빈도는 이런 특별한 성격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그런 면에서 평생 단 한 번 살인을 저지른 여성 살인범에 대해서는 연쇄살인범과 확실하게 구분해서 다뤄야 한다. 일회적이든 연쇄적이든 모두 다 ‘살인’이라고 싸잡아 다루게 될 경우, 우리는 적절한 예방책을 세울 수 없다.--- p.270

우선, 여성 연쇄살인범은 어쩌다 한 번 살인을 저지른 여성과 달리 친자식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직업을 가지고 활동하는 여성이 연쇄살인을 저지른다. 그리고 일회적 살인에 비해 관계상의 갈등은 그리 중요한 동기가 아니다. 여성 연쇄살인은 특히 공범 없이 혼자 저지르는 게 일반적이다. 그 방법은 주로 치명적으로 작용하는 이물질을 투여하는 것이다. 지금 확인한 차이를 두고 여성 연쇄살인범 그룹만의 특징이라고 하기에는 여전히 무리가 따른다.

… 그리고 바로 이 점에서 두 그룹 사이의 결정적인 차이가 드러난다. 이런 차이를 분명히 알아보기 위해서는 범인의 성격이나 행동에서 그 조짐을 찾으려 하지 말고, 왜 살인을 저지르는가 하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여성이 저지르는 살인은 어디까지나 자신이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안간힘이다. 여성은 남성처럼 충동적으로 범행을 저지르는 게 아니라, 오랫동안 쌓여온 갈등을 견디다 못한 나머지 계획한다.

이때 일회적인 여성 살인범은 자신의 범행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성공한다. 희생자가 죽어 없어짐으로써 가슴을 짓누르던 중압감이 해소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제를 일으키는 원수가 제거된 탓에 범행을 더 저지를 이유가 없다. 연쇄살인범의 경우도 첫 번째 범행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든다. 다만 이 경우에 문제는 희생자가 아니라, 범인 자신이다. 혹은 남성 공범이거나, 그녀를 범행으로 이끈 근본 문제(범인이나 공범의 병든 정신)가 그대로 남아 있는 탓에 이를 제거하려는 시도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새로운 범행을 저지르도록 자극하는 원인이 여전히 불을 지피고 있기 때문이다.
--- pp.272~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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