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관측자의 위치에 따라 같은 현상이 다르게 보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보는 사람의 상태에 따라 시간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는 시간은 상대적인 것이고, 시간과 공간은 끊으려 해도 끊을 수 없는 관계라는 의미이다. 시간이나 공간은 별개로 독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공’이란 개념이 생긴다.
--- p. 16
공간이 곧 시간이고, 시간이 곧 공간이다. 공간이 있어 시간이 있고, 공간이 사라지면 시간도 사라진다. 이 세계는 A가 아니면 B, B가 아니면 A라는 이원론적인 세계가 아니라 A속에 ‘A와 B’가 들어 있는 세계였던 것이다.
--- p. 22
꽃 한 송이에 우주 만물이 들어있는 것이다. 호두 껍질 속에서 무한한 우주를 보고, 포도송이, 눈(雪)의 결정체, 물결, 이파리들 하나하나에 우주 만물이 들어 있는 것이다. 즉 이 세계 전체는 하나인 셈이다. 우주 만물이 서로 인과의 사슬로 엮여 있으며, 하나가 곧 모든 것이고, 모든 것이 곧 하나이다.
--- p. 35
따라서 이런 우주의 실상을 철저히 깨닫게 되면, 자아(自我)를 초월하게 된다. 그 결과 나 혹은 나의 것, 아만, 아집에서 벗어나게 된다.
--- p. 36
그러나 이런 우주의 실상을 깨닫지 못하면, ‘나’ 혹은 ‘나의 것’이라는 생각에 집착하게 되고, 이런 자아의 집착은 결국 탐욕을 추구하게 되고, 성내고, 어리석음에 빠지게 된다. 인간의 모든 번뇌의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이런 ‘무명(無明)’ 때문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 우리는 각종 업을 짓게 된다.
--- p. 36
이와 같이 생물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은 별다른 존재가 아니다. 우리 인간 역시 동물적 본능을 갖고 살아가는 허무주의적이고 목적의식을 결여한 존재들이다. 대부분의 인간이면 누구나 자아에 대한 강한 집착과 생존욕, 편안함, 안정, 성취감 등 동물적 본능을 갖게 마련이고, 그것을 쟁취하기 위해서 싸우며 살아간다. 인간과 동물 사이에는 대부분 아무런 질적 차이가 없다. 단지 어느 특정한 능력에서 동물과 인간은 서로 정도의 차이를 보일 뿐이다.
--- p. 59
깨달음은 일체 현상의 진실한 실상을 깨달은 경지를 가리킨다. 이것이 경전에서 말하는 지혜이다. 이를 굳이 반야 지혜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생존에 필요한 지식이나 지혜가 아니라) 일체 현상의 진실한 실상을 깨달은 지적 경지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이를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있다는 것이다.
--- pp. 65~66
예를 들면, 우리는 집을 보면, 이를 집이라고 인식한다. 하지만 집이란 사실은 주춧돌이나 기둥이나 벽돌이나 기와 등 집 아닌 다른 요소들의 결합체이다. 집이라는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것을 집이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이처럼 어떤 개체가 사물을 인식할 때, 정말로 그 사물 ‘자체’를 인식하는가? 아니면 그 ‘형상(혹은 이미지)’을 인식하는가? 사실상 내가 인식하는 것은 그 형상이고 이미지이지 그 사물 자체는 아니다. 사실은 각 개체가 인식하는 모든 것은 마음이 지어낸 ‘마음의 상(相)’이다.
--- p. 71
그러나 중생들은 ‘무아’라고 말하면, 우선 먼저 ‘나’라는 주체를 떠올리게 된다. 그래서 ‘무아’란 ‘나가 없다’라고 인식하려 한다. 그러나 이는 인간과 사물을 다르게 보는 것이다. ‘무아’라는 것은 ‘나와 너’를 떠나, 일체 법에는 ‘고정불변, 즉 변하지 않는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가 있다’ 혹은 ‘나가 없다’는 것은, 이는 여전히 자아라는 생각에 집착하는 것이다.
--- p. 110
우리는 왜 태어났을까? 우리가 태어난 것은 우리가 지은 업의 결과이다. 우리가 지은 업으로 인해 생과 사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업은 씨앗과 같다. 업은 씨앗이고, 우리는 그 열매이다.
--- p. 179
우리는 왜 사는 걸까? 아직 ‘할 일을 마치지 못해서이다.’ 우리가 사는 이유는 바로 업에서 벗어나는 일을 마치지 못해서다. 그로 인해 윤회의 사슬을 끊지 못하고 생과 사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생이란 궁극적으로 생과 사를 초월한 영원한 대자유를 향한 여정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이유는 ‘가장 뛰어나고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에 이르는 여정 속에서 ‘아직 할 일을 마치지 못해서이다.’ 이것이 생명을 지닌 모든 중생이 사는 이유이다.
--- p. 1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