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한낮의 땡볕을 뚫고 도착한 게스트하우스, 등짝에 쩍 달라붙은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는데, 휴, 에어컨이 없단다. 일단 샤워부터 해 보지만 아침부터 달궈진 물탱크에서 나오는 물이 뜨겁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 해야 할 지경이다.
그리하여 여행자는 라오스에서의 첫 감상을 일기장에 이렇게 남겨 놓았다.
‘우린 왜 라오스로 왔을까?’
남들은 좋다며 우리 부부가 사는 제주도로 몰려드는데, 성수기라고 항공권도 구하기 힘든 이 시기에 텃밭에 고추며 상추며 토마토며 참외며 수박이며 온갖 여름 채소와 과일이 한창 영글어 가는 그 한적하고 좋은 우리 집을 두고 왜 이토록 먼 곳까지 떠나왔을까? 지중해나 남태평양의 어느 섬이라든가 시베리아나 북극의 도시처럼 생각만 해도 시원한 곳들도 많고 많은데, 바다 한 조각도 차지하지 못한 인도차이나 반도 중앙에 위치한 이 열대의 나라에 온 이유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오후의 햇살이 휘청거릴 즈음, 용기를 내어 다시 거리로 나섰다. 마을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거리엔 개미새끼 한 마리 볼 수 없다. 게스트하우스 마당에 해먹을 걸 쳐 놓고 잠이 든 매니저 소년처럼 마을 사람 모두가 아직도 길고 긴 낮잠에 빠져 있는 것일까.
사원을 찾아 들어갔다. 라오스엔 마을이 크든 작든 그 중심부엔 반드시 사원이 있다고 가이드북은 소개하고 있다. 정말 거짓말처럼 예쁜 사원이 마을 한가운데 자리 잡았다. 다들 어딜 가 있나 했던 동네 꼬마들이 모두 그곳에 모여 있다. 마침 기도 시간인 모양이었다. 까까머리를 하고 주황색 승복을 걸친 꼬마 스님들이 법당에 줄을 맞춰 앉아 있다. 난데없이 나타난 여행자를 살피느라 뒷줄에 앉은 몇몇은 실눈을 뜨고 기웃거리는 모양이 귀엽다.
그리고 약간의 술렁임. 젊은 스님이 다가온다. 쯧쯧. 수행이 부족한 녀석들 같으니라고. 탁. 어깨를 내리치는 죽비 소리 대신에 스님은 여행자에게 다가와 살갑게 이야기를 붙인다. ‘서머스쿨’이란다. 그러니까, 교회로 치자면 여름성경학교 같은 거다. 그리고 자신은 스님이 될 건 아니라고 묻지도 않은 설명을 덧붙인다. 다만 라오스의 남자라면 모두가 1년 이상 스님이 되어 보아야 하는 거라고. 내년엔 수도 비엔티안에 가서 컴퓨터 소프트웨어 쪽을 공부하고 싶단다. 젊은 스님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눈치였지만, 우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꼬마 스님들의 여름 수행에 별로 도움이 안 될 것 같았으므로.
이번엔 강물을 향해 길을 잡았다. 해가 완전히 기울었지만 더위는 전혀 꺾이지 않았다. 가는 길에 처음으로 우리 부부 말고 또 다른 여행자 한 명을 만났다. 노랗게 말린 긴 수염과 머리카락. 이스라엘 쪽 여행자일까. 그 역시 지친 얼굴로 노천카페에 앉아 얼음 커피를 마시고 있다. 쳐다보며 눈웃음 짓는 것이 꼭, “이 더운 날에 넌 왜 이 나라까지 흘러왔니?”라고 묻는 것 같다. 그럼 넌? 나도 그를 향해 싱긋 웃어 보인다.
골목길이 강가로 접어들었다. 그 순간이었다. 그곳에 라오스 여행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풍경
하나가 펼쳐졌다. 그때 난 이 더운 여름날에 열대의 나라 라오스까지 오게 된 한 가지 이유를 알 게 되었다.
--- p.59~61
여행자는 이제 마법에 걸린 듯 골목골목을 쏘다닌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아버지와 어린 두 아들이 황톳빛 강물 위에 배를 띄우고 고기를 잡고 있다. 한 녀석은 고기잡이보다는 둥그렇게 파문이 되어 퍼져 나가는 물결 만들기에 더 흥미를 가진 모양이다. 그리고 깡마른 남자가 골목 어귀에서 옥수수를 팔고 있던 모녀를 오토바이 뒷좌석에 태우고 있다. 맞은편에선 땀을 비 오듯 흘리면서도 두 꼬마를 앞세우고 자전거 투어 중인 금빛 머리의 여성 여행자가 나를 보며 지나간다. 우산을 쓰고 집으로 향하는 꼬마 스님들이 귀엽다. 툭툭에 탄 어느 커플 여행자는 운전사를 대신해서 호객을 하고 있다. 아마도 그들의 목적지는 버스터미널일 테고 네 명이 차지 않는 한 툭툭은 달릴 수 없다고 운전사가 말했을 것이다. 더위에 지친 커플 여행자는 이참에 툭툭 호객을 전담하는 조수로 전격 나섰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 모든 풍경들이, 아주 느리게 펼쳐졌다. 시간이 멈춘 듯이 흘러가고 있었다. 마치 정지한 장면들을 앞에 두고 누군가 소곤소곤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만 같았다. 그날 하루, 시간이 멈춘 루앙프 라방의 골목길에서 보낸 한나절을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
--- p.209~211
정말이지, 세상 그 어디를 간다 해도 아이들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있을까. 뷰파인더 속으로 들어 온 아이들로 인해 여행자는 가슴이 설렌다.
교사가 된다는 것은, 저 아이들의 눈을 오래 들여다봐 주는 것이 아닐까.
교실로 걸음을 옮겼다. 몇몇 아이들이 걸상에 앉았고, 작은 꼬마 하나가 칠판에 ABCD를 야무지게 쓰고 있었다. 꼬마는 키가 너무 작아 발밑에 나무토막 두 개를 놓고 있었다. 곧 교실 밖에서부터 아이들이 주르륵 따라 들어오면서, 쉬는 시간의 교실이 순식간에 가득 찬다. 뜻하지 않게도 이방에서 온 여행자는 꼬맹이들의 골목대장이 되어 있다.
한번 열린 아이들의 마음은 이제 감당할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달려들고, 안기고, 매달리고, 렌즈 속으로 뛰어들고. 찍은 사진들을 카메라 스크린을 통해 보여 줄 때마다 “와~ 아!” 탄성을 지르고는 까르르르 끝도 없이 웃어 댔다. 아마도, 나 역시 그랬을 것이다, 저만했을 때에는. 세상 모든 것들이 궁금하고 세상 모든 것들이 놀이가 될 수 있었을 그때에는. 누가 그랬던가. 아이들은 놀기 위해서 세상에 온다고. 낯선 이방인에게 아무런 경계심도 조금의 이해득실도 없이 자신의 가장 밝고 싱싱한 미소를 보여 주는 저 아이들처럼, 우리들 모두에게도 그런 시간들 이 있었을 것이다.
어느새 휴식 시간이 끝나고 떠나야 할 시간. “안녕” 하고 먼저 인사를 했다.
“Good-bye!”
“사바이디!”
여기저기서 아이들의 인사가 겹쳐졌다. 그때였다.
“See you tomorrow!”
나의 카메라맨 보조였던 눈이 크고 덩치도 큰 그 여자아이였다. 그런데 내일 보자니,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나그네에게. 발걸음이 잠시 굳어졌다. 아마도 아이는 내일이나 모레면 또 다른 놀이에 빠져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어느 여름날 오후에 다녀갔던 여행자 부부를 쉽게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날 눈물 글썽이는 얼굴로 처음 만난 이방인에게 내일 또 보고 싶다는 마음을 전하던 한 아이를 여행자는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오는 길. 머릿속에는 아이들의 영상이 남고, 발끝에는 아쉬운 빗물이 채였다. 앞서 가는 아내의 노랫소리가 들린다.
--- p.232~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