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만났던 분은 나를 보자마자 기생충을 비웃었다.
“기생충은 뇌가 없죠? 무식한 사람에게 기생충 같다고 해도 되는 거죠?”
처음 만난 사이인지라 정색을 하고 반박하면 어색할 것 같아 빙그레 웃고 말았지만, 지면을 빌려 그때의 분풀이를 해본다. 기생충이 뇌가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뇌에 해당하는 중추신경계를 갖추고 있어 나름대로 이성적인 판단을 한다. 심지어 자기보다 수십 배, 수백 배 더 큰 숙주를 조종하기도 한다. (…) 플레그르(J. Flegr)라는 체코 학자는 자신이 가끔 이상한 행동을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멍해져 있다가 정신을 차려 보면 차가 쌩쌩 다니는 찻길 한가운데에 가 있고, 총격전이 일어나 사람들이 다 대피하는데도 혼자 멍하니 서 있더라는 것. 자기가 왜 이럴까를 연구하던 그는 자신이 톡소포자충이라는 기생충에 감염돼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 후 톡소포자충 연구에 뛰어들어 괄목할 만한 업적을 쌓는다.
--- p.30~32
얻어먹긴 하지만 기껏해야 하루 밥풀 한 톨 정도로 소식하는 생물체고 사람을 죽이는 일도 웬만해선 없다. 또한 인간의 몸에 살면서 알레르기를 비롯한 각종 면역 질환을 막아 주고 있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그것도 무려 20년 전에!). 이런 생물체한테 기생충이란 이름을 붙인 게 애당초 잘못이었다. 학생들에게 기생충의 실상을 가르쳐 주고 어떤 이름이 적당할까 물었더니 다음과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음, 기생충은 인간과 더불어 공생하는 생물체니까 ‘동반생물’이 어떨까요?”
처음부터 그랬다면 사람들이 기생충에 대해 그렇게까지 거부감을 가졌을까? 기생충 학자들은 학생들보다 생각이 짧았다.
--- p.60~61
발견한 학자가 자신의 이름을 따서 정할 때도 있다. ‘부케레리아 반크롭티’라는 기생충을 보자. ‘부케러’라는 학자가 세계 최초로 유충을 발견해 자기 이름을 붙이려 했는데, 그로부터 얼마 뒤 ‘반크롭트’라는 학자가 그 기생충의 성충을 발견해 버렸다. 둘이 싸우다가 결국 타협한 게 저런 이름인데, 후대에 공부하는 학생들만 피곤해졌다.
--- p.68
오무라가 태어난 일본과 캠벨이 태어난 아일랜드엔 이 기생충이 없다. 하지만 이들은 다른 나라에서 유행하는 기생충을 치료하는 약을 만들었고, 덕분에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했다. 노벨위원회에서 이들을 노벨의학상 수상자로 결정한 이유는 ‘인류애’가 아니었을까? (…)
1992년 우리나라 기생충 감염률은 3.8%로 떨어졌다. 이후 기생충학자들은 “기생충도 없는데 뭘 연구하냐?”는 비아냥거림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이건 기억하자. 자기 나라에 없는 기생충이라도 열심히 연구하는 곳이 바로 선진국이며, 이런 인류애가 있어야 노벨과학상도 탈 수 있다는 것을.
--- p.76~77
어떤 사람이 우리나라에서 회충 알이 든 상추쌈을 먹다가 회충에 걸렸다고 해보자. 그로부터 두 달쯤 뒤, 그분의 배 속에서는 다 자란 회충 다섯 마리가 기생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일본으로 출장을 갔다. 그가 일본에서 먹은 유기농 야채에 하필이면 또 회충 알이 들어 있었고, 그로부터 두 달 후 일본 출신의 회충 세 마리가 기생하게 됐다. 넓다면 넓지만 좁다면 좁은 곳이 인간의 몸속, 회충 여덟 마리는 결국 작은창자에서 만났다.
“어이, 일본 회충. 우리 먹을 것도 없는데, 좋은 말로 할 때 제 발로 나가지 그래?”
한국 회충의 말에 일본 회충이 응수한다.
“네가 가라, 하와이. 그리고 우린 원래 발이 없다 아이가.”
한국 회충은 분기탱천한다.
“말로 해선 안 되겠다. 얘들아, 가자!”
이런 식으로 패싸움이 난다는 게 사람들의 시나리오겠지만 회충은 그 기대를 저버린다. 일본 회충이건 한국 회충이건 다 같은 회충이며, 회충끼리는 물론이고 기생충끼리도 절대 싸우지 않는다는 것이 그들의 철칙이니까.
--- p.74~75
글쓰기라는 게 어렵고 쉽고를 떠나 일단 쓰는 게 중요하다. 앞서 알려준 글쓰기 기법들을 모조리 습득했다 해도, 글을 쓰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시간이 없어서, 쓸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 아니면 아직 연습이 부족해서 등, 글을 쓰지 말아야 할 핑계는 얼마든지 있다. 그러다 보면 나중에 펜 잡을 힘이 없을 만큼 나이가 든 뒤 “내 인생을 소설로 쓰면 열 권은 나올 텐데”라며 쓸쓸한 표정을 지어야 할 것이다. (…)
“졸작은 쓰기 쉽고 걸작은 어려우니, 졸작부터 써야지 않겠는가?”
어느 분이 한 말이다. 너무 잘 쓰려고 하지 말고 일단 졸작이라도 써보자. 글은 열심히 쓰는 사람이 이기는 분야이니까.
--- p.161~162
못생긴 외모와 따돌림, 무서운 아버지와 그로 인한 형제들의 파편화, 이런 조건이면 충분히 비뚤게 자랄 만도 한데 난 왜 그렇게 안 됐을까. 덩치가 작고 싸움을 못한 것도 한 가지 이유였다. 초등학교 5학년 즈음, 길을 가는데 나보다 훨씬 덩치가 큰 친구를 만났다. 그는 다짜고짜 내게 이렇게 말했다.
“야, 넌 왜 이렇게 병신같이 생겼냐? 살다 살다 너처럼 병신같이 생긴 애는 처음 본다.”
그런 말을 들었으면 맞을 때 맞더라도 달려들어 한 대라도 패줘야 그가 더 이상 날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옆에는 내 남동생이 있었으니 형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뭔가 했어야 했지만, 난 그러지 못한 채 묵묵히 그가 가하는 모욕을 감내했다. (…)
하지만 싸움을 못하는 것이 내가 잘 자란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난 그 상당 부분이 어머니의 힘이라고 본다. (…)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누군가가 자신을 믿어 준다면, 비뚤어지지 않을 수 있다. 당시 내게 어머니는 세상에서 날 믿어 준, 거의 유일한 분이었다.
--- p.168~169
당시 아이들 중엔 나중에 커서 뭐가 되겠다는 포부를 당당하게 밝히는 경우가 있었다. 과학자, 법조인, 선생님……. 하지만 난 당시 장래희망이란 게 없었다. 희망이란 건 ‘나중에 커서 뭐가 되겠다’는 것인데, 하루하루가 너무 지겹고 짜증나던 아이에게 먼 미래의 일을 생각하는 건 사치였다. 지금이 이런데 나중이라고 나아지겠는가, 이게 당시 내가 늘 하던 생각이었다.
--- p.172
답은 금방 나왔다. 외모 때문이었다. 세균, 바이러스처럼 정말 우리에게 해로운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기생충은 크기가 커서 눈에 금방 띈다. 그리고 기생충은 징그럽게 생겼다. 기회만 있다면 사람을 해칠 사자나 호랑이를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 그들이 멋진 외모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난 이런 결론에 도달한다.
나 또한 외모로 인해 차별받았던 사람인데, 나마저 기생충을 싫어해서야 되겠는가?
--- p.1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