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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꽃이 되고 글이 되고

삶이 꽃이 되고 글이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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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12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230쪽 | 344g | 140*210*20mm
ISBN13 9791158770389
ISBN10 1158770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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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한 시간을 이겨보려고 팬시가게를 찾아갔다. 많은 것들 중에 카드 고르기가 어렵다. 뚜렷한 사용처가 없기 때문이다. 직원을 불러 친구처럼 물어본다. 골라준 빨간 장미 카드를 사서 책상 위에 펼쳤다. 사진을 찍어 딸 영미에게 보냈다. 곧바로 문자가 왔다.
“누구야! 엄마에게 이런 카드 보낸 남자, ㅋㅋ”
장난스럽게 군다.
“보낸 남자가 아니고 카드가 예뻐서 하나 샀지, ㅎㅎ”
변명이 필요하지 않았지만 몇 자 보냈다. 외손녀 정현이가 한마디 거든단다.
“아휴! 이런 카드를 어떻게 주고받아, 오글거려서!”
손녀는 요즘 아이들 같지 않게 카드에 담긴 내용에 얼굴이 붉어진 모양이다.
그래 외손녀 말처럼 오글거리는 카드는 보는 것으로 만족하자. 내 생전에는 필요치 않을 카드라 생각하고, 나는 나에게 빨간 장미 카드를 보낸다.
--- pp. 32~33

“이 눈사람은 나야”라고 했더니 혼자 있으면 쓸쓸하니 그의 것도 만들잔다. 그는 내 꿍꿍이속을 모를 거다. 대답 대신 집안에서 남편의 목도리와 모자를 갖고 나왔다. 그리고 그가 수집해놓은 멋진 파이프도 들고 나왔다. 놀라서 그가 나를 쳐다본다.
“미안해요. 당신이 아니라서요.”
“이 잘생긴 눈사람은 미국의 유명한 배우 그레고리 펙입니다.”
그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다. 자신을 만들어주는 줄 알고 힘들어도 눈을 뭉쳤는데 외국 영화배우라니 말문이 막혔나보다. 그는 속으로 그랬을 거다. 나는 아직도 소녀와 살고 있는 거라고.
“섭섭해하지 마세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당신이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그레고리 펙이니까요.”
나의 실없는 말에 그는 짧게 툭 던진다.
“그려.”
--- pp. 111~112

다시 위층에 올라가야 하는데 엘리베이터에 사람들이 많아 탈 수가 없다. 좀체 걸어 올라가지 않는 내가 한 발 한 발 계단을 올랐다. 내가 왜 이러지,라는 생각이 잠깐 스치는 순간 할아버지 앞에 다가섰다. 그 앞으로 오고 가는 사람은 많은데 구걸 바구니 속은 조용하기만 하다. 두 다리를 굽혀 무릎을 가슴으로 당겨 앉은 몸이 한 주먹만큼이나 가느리고 쇠약하다. 작은 바람 한 점에도 쓰러질 것만 같다.
생수병 뚜껑 열 기운이 없을 것 같아 열어주었다. 단팥빵 비닐을 찢으려니까 얼른 빵을 빼앗듯 가져다가 몸 뒤로 숨긴다. “왜요?” 하고 물으니까 뭐라고 하는데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하는 입에서 침이 떨어졌다. 고개도 들지 못하니 표정도 읽을 수가 없다. “집에 기다리는 사람 있어요?” 하고 물었더니 살짝 머리를 까딱한다. 딱해라. 목마름과 배고픔을 숨기려는 자식 사랑일까. 아내 사랑일까. 우울한 마음을 닫으며 그 자리를 뒤로했다.
--- pp. 191~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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