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의도한 것이건 아니건 간에 『고래』는 소설이 갈 수 있는 최대의 영역으로 발을 들여놓은 것만은 틀림없다. 과연 소설의 확장이 어디까지인가 확정짓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그럴 필요가 없는 일이기도 하다. 소설이 할 수 있는 바는 그 경계 바깥으로 끊임없이 월경하는 것뿐일 것이다. 『고래』는 남미소설이 그러했던 것처럼 어느 순간 소설의 영역을 훌쩍 뛰어넘어 또다른 공간으로 들어갔다. -신수정(문학평론가, 명지대 문예창작과 교수)
춘희의 고독은 그녀의 생애 전체가 그랬던 것처럼 누구에게도 제대로 전달되거나 결코 이해될 리 없는 성질의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세인들이 제멋대로 추측하여 떠들어댄다 해도 특별한 이야기나 교훈을 남길 리 없는 사적인 세계에 국한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일생 동안 구운 벽돌의 양만큼이나 또는 숨을 거둔 후 그녀의 영혼이 우주 저편으로 향하고 있는 것처럼, 어쩐지 시공을 초월한 거대한 스케일을 연상시키는 측면이 있다. (…) 『고래』 전체를 통틀어 춘희 이상으로 내부의 세계를 풍성하게 구축한 개인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낭만주의적 전통에서 연원한, 이와 같이 철저히 내부의 세계에만 구애되고 있는 자기 정향적 개인의 형상을 또한 어찌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겠는가. 조형래(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