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주의적 설교에 대한 스토트의 설명으로 돌아가 보면, 적용이라는 분야야말로 문제가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곳이다. 만약 설교가 특별히 어느 곳도 목표로 삼고 있지 않다면, 그 설교는 틀림없이 성공하게 되어 있다. 설교에서 적용의 가능성과 그것이 제기하는 도전은 “비행기를 착륙시켜라!”라는 표현으로 요약된다. 나는 설교를 비행기 조종과 비교하는 이 도발적인 은유를 나의 친구이자 동료이며 교구 목사인 레이 데이비드 글렌에게서 얻었다. (…) 기도와 묵상, 그리고 진지한 주석 작업을 통해 우리는 그 본문에 대한 어떤 이해에 도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청중이 우리의 설교를 통해 오늘 그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려면, 우리는 우리가 처한 특별한 상황 속에서 맞이하는 그 주일에 그 말씀을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가?
--- 「서론」 중에서
어떤 설교자들은 깊이와 엄밀함의 필요를 인정하기 때문에 설교를 오직 지성만을 만족시키려는 강연으로 변질시키고 말았다. 그런 설교들은 교훈적일 수는 있으나 실존적 만남을 통해 한 인간의 전체를 하나님의 현실을 향해 열어 놓지 못한다. 이와 비슷하게, 분명히 감정은 설교에서 어떤 역할을 감당한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우리를 감정적으로 격동시키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현실을 향해 자신을 열게 하는 데는 실패하고, 끊임없이 눈물을 짜내는 이야기들로 범벅이 된 설교들에 대해 알고 있다.
--- 「02. 목적지, 비행기, 화물(현재의 삶, 설교, 하나님의 말씀)」 중에서
유대인 문헌학자 에리히 아우어바흐는 그의 저서인 『미메시스』(Mimesis)에서 그런 이해에 도달한다. 거기에서 그는 성경의 “전체주의적” 특성을 언급한다. 성경은 우리를 압도하고, 현실에 대한 성경의 해석은 참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리의 삶은 오직 그것이 그 일부를 이루는 내러티브의 맥락에서만 뜻이 통한다는 통찰은 철학, 신학, 선교학, 그리고 여러 다른 학문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는 내러티브 중요성의 반가운 회복과 연결되어 있다. 우리의 세계관들은 가장 깊은 차원의 메타내러티브(metanarrative, 거대 담론) 혹은 세상에 관한 웅장하고 포괄적인 이야기들에 근거하고 있다. 내러티브는 성경이 무슨 일을 하는지를 우리가 이해하는 데 특별하게 유익한 수단을 제공한다. 우리는 성경이 충분히 믿을 만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성경은 어떻게 그런 것으로서 기능하는가? 도대체 성경은 어떤 일을 하는가?
--- 「04. 도착지에서 바라보는 광경(하나님이 중심에 계시는 피조 세계)」 중에서
오늘날 성경을 통일성 있게 이해하고 성경에 실제로 사로잡히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스코틀랜드의 신학자 제임스 오르(James Orr, 1844-1913)와 네덜란드의 박식한 학자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 1837-1920)는, 현대성은 유사하게 통일된 기독교 세계관에 의해서만 반응할 수 있는, 삶의 모든 것에 대한 통일된 비전을 바탕으로 작동한다고 같은 시대에 간파한 바 있다. 그런 세계관은 성경의 통일된 관점에 의해 인정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성경 전체에 대한 내러티브적 읽기는 이 점에 있어 불가결한 요소이다. 복음주의자들은 성경을 교회의 삶의 핵심으로 만드는 일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해 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종종 파편화되고 단편적인 방식으로 그렇게 해 왔다. 오늘날 주류 교단들이 채택하고 있는, 교회의 삶 속으로 스며든 포괄적인 메타내러티브를 거의 의식하지 않는, 성구집 방식의 접근법 역시 그보다 낫지는 않았다.
--- 「04. 도착지에서 바라보는 광경(하나님이 중심에 계시는 피조 세계)」 중에서
다음으로 특정한 회중이라는 문제가 있다. 지역 교회는 설교라는 비행기가 매주 착륙해야 할 곳, 즉 공항이다. 최근 수십 년간 선교학은 지역 교회의 중요성을 인식해 왔다. 예를 들어 레슬리 뉴비긴은 지역 교회의 해석학에 대해 말했는데, 그것은 세상에서 복음이 해석되고 실제적이 되고 그럴듯한 것이 되는 것은 지역 교회 안에서, 그리고 지역 교회를 통해서라는 의미였다. 비행기의 기장은 성령이시다. 그러나 설교자들은 성령과 협력하면서 비행기를 착륙시키는 일에 전문가가 될 필요가 있다.
--- 「05. 공항(상황화)」 중에서
나는 10대 때 아파르트헤이트 시절의 남아공에서 그리스도를 믿고 회심한 후 활기차고 생생하게 살아 있는 복음주의 기독교 안으로 들어섰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에 대해 열정적이었고 전도 활동에 열심이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한 교회의 신자로, 그리고 그 후에는 사역자로 지내면서도 단 한 번도 인종차별주의에 대해 회개하라는 엄중한 요청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나 당시에 우리는 매일 가장 억압적인 인종차별주의와 마주하고 있었다! 로마서 13장은 인종차별주의로부터 돌아서라는 그 어떤 요청도 없이 보수적인 방식으로 설교되었다. 물론 그런 요청이 있었더라면 우리는 대부분의 남아공 복음주의자들에게는 출입 금지 지역이었던 정치 분야를 향해 움직였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디가 전장인지를 선택하지 못했다.
--- 「06. 비행기 착륙시키기(설교의 적용 : 몇 가지 예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