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극단의 정체
1930년대에 파시즘이 부상한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1960년대 과격 학생운동의 등장은? 1990년대 들어 이슬람 테러리즘이 기승을 부린 것은? 1994년 르완다에서 자행된 인종청소는? 그리고 옛 유고연방과 이라크에서 벌어진 민족갈등은? 아부그라이브 수용소에서 미군이 자행한 고문과 가혹행위는? 2008년에 일어난 금융위기는? 일부 지역에 국한된 것이기는 하지만 2001년 9월 11일 일어난 테러행위의 배후에 이스라엘과 미국이 있다는 믿음은? 그리고 이런 사건들 사이에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한 가지 단서를 제시해 보자. 몇 년 전, 많은 프랑스 국민이 여러 개의 소집단으로 나뉘어져서 자국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하고, 해외원조와 관련한 미국 정부의 숨은 의도에 대해 각자 견해를 서로 교환했다.(1) 의견 교환을 하기 전에 참가자들은 자국 대통령에 호의적인 반면, 미국 정부의 의도에 대해서는 불신하는 경향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의견 교환을 한 다음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자국 대통령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호감의 정도가 훨씬 더 강해졌고, 미국에 대한 불신의 정도는 훨씬 더 심해진 것이다. 사람들의 성향이 더 극단적으로 변한 것이다. 토론 결과 이들은 자기 지도자에 대해 더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고, 미국에 대해서는 더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되었다. 한자리에 모여 의견 교환을 하지 않은 프랑스인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극단화 증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 이야기는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한 가지 보편적인 사실을 보여준다. 대개의 경우 사람들은 집단에 소속되면 혼자 있을 때는 절대로 하지 않을 일을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긴다는 것이다. 십대들도 집단에 속하면 혼자서는 하지 않을 모험을 감행하는 경향을 보인다. 테러리스트나 인종청소를 자행하는 자들을 포함해 폭력 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투자자나 기업 경영진도 그렇고, 정부 관리, 평범한 이웃, 사회개혁 운동가, 정치적 시위자, 경찰관, 학생조직, 노동조합, 그리고 배심원들도 마찬가지다. 사회생활에서 벌어지는 최선의 일과 최악의 일은 집단 활동의 산물인 경우가 많다. 큰 조직이건 작은 조직이건 막론하고 조직의 구성원들은 특정 방향으로 한발 더 나아가는 경향을 보인다.
물론 파시즘을 설명하는 논리를 학생 저항운동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힘들다. 그리고 이 두 가지 논리를 가지로 이라크의 민족갈등이나 르완다의 인종청소, 아부그라이브 수용소의 고문과 가혹행위, 이스라엘과 관련된 음모론, 서브프라임 위기까지 설명할 수는 없다. 일반적인 설명을 가지고 개별적인 사건에 대입해 설명하려면 무리가 많이 따르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여러 사회현상들 사이에는 놀라울 정도의 유사성이 있다. 이런 현상들 사이에 나타나는 공통점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사람은 서로 생각이 같은 집단 속에 들어가면 극단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집단에 어떤 권위적인 주체가 소속되어 구성원들에게 어떻게 하라고 지시하거나, 특정한 사회적 역할을 맡기는 경우에는 대단히 좋지 않은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한 연구를 통해 나는 나쁜 극단주의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지 알아내고자 한다. 나쁜 극단주의는 안보와 평화, 경제 발전에 위협이 될 뿐만 아니라, 우리가 다루는 모든 영역에서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데 방해가 된다. 이 책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주안점을 둔 것은 집단극단화group polarization 현상이다. 이 현상은 소비자와 이익집단, 부동산시장, 종교집단, 정당, 독립운동, 행정기관, 의회, 인종차별주의 단체, 사법기관뿐만 아니라,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과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 그리고 국가 전체의 행동양식에 대해 많은 것을 깨우쳐 준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