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왜 이 카페에만 오는지 알아?” 책을 좋아하는 건가?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이경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속삭였다. “음악이 없어서야.” 가까이서 보는 그의 검은 눈동자는 어두운 초록빛을 띠고 있다. 더 깊숙한 안쪽엔 아직 분화되지 않은 색채의 덩어리가 투명하다. 이경은 흠칫 몸을 뺀다. --- p.197
“비밀 하나 가르쳐 줄까?” 그는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게 있을 때 질문하는 사람이다. “나는 언제나 무대가 무서워. 무서웠고 무서울 거야.” 목소리는 늦은 저녁, 돌아갈 둥지가 망가진 작은 새의 울음소리처럼 구슬프다. “입덧하는 여자처럼 속이 메슥거리고, 손바닥엔 폐유 같은 땀이 배어 나오지. 대기실에서 난 언제나 한 가지 생각만 하고 있어. 객석에서 누군가 달려 나와 무대에 폭탄을 던져 주길, 사람들이 흩어지고 나는 돌아갈 수 있기를. 그 두려움을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으려 애썼기 때문에 점점 더 두려워졌어.” “그럴 땐 어떻게 하나요?” “그냥, 걸어 나가지. 무대로 걸어 나가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 거지.” --- p.266
또 어떤 장면은 뚝 잘라 낸 듯 짧다. 벼랑 끝에서 발을 헛디디듯 추락해 버린 날들에 대해 이경이 물었을 때, 약간은 격한 반응을 기대하고 있었을 때, 율은 짐작과 달리 담담하게, 너에게만 일러 주겠다는 듯, 반주 없는 노래를 부르듯 덤덤히 말했다. 이갱. 좋은 생은 나쁜 노래를 만들어. 나쁜 생은 좋은 노래를 만들고. 그 둘을 다 겪은 사람만이 위대한 노래를 만들 수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