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이란 것은 매설가가 표 나게 드러내는 것보다 그 밑으로 흐르는 바람과 고통, 슬픔과 한숨의 흔적이 더 재미있는 법이옵니다. 서포는 성진이 도를 깨닫도록 양소유의 삶을 끼워 넣었다고 생각하겠으나 『구운몽』에는 용상을 차지하고픈 서포의 꿈이 녹아 있사옵니다.” --- p.223
“자네 말이 옳으이. 소설 한 편 잘 지었다고 현실이 바뀌지는 않아. 하지만 어떤 조짐이나 버팀목이 될 수는 있지 않을까? 최척의 아픔을 안타까워한 이들이라면 전쟁의 참혹함을 영원히 못 잊을 것 같아. 자네 소설은 대부분 불행하게 끝나더군. 행복을 말할 때도 무척 주저하고 조심스러워. 그래, 자네 심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네. 우리네 삶에는 기쁨보다 슬픔이, 즐거움보다 괴로움이 많을지도 몰라. 자네처럼 그 고통을 응시하고 품에 안으려는 노력도 필요하겠지만 현곡처럼 그 고통을 작은 기쁨으로 채우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보네.” --- p.203
모독은 허리에 두르고 있던 서책을 꺼내 그의 앞에 놓았다. “소생이 이 소설을 짓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김만중이 두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알 수 없는 소릴 하는군. 자네가 소설을 짓는데 어찌하여 내 허락이 필요하단 말인가?” “이 소설의 주인공은 바로 대감이십니다.” “무엇이라고? 내가 주인공이라고?” --- p.258
“내 생전에 그날을 맞을 수 없을지도 모르네. 소설이란 원래 천천히 오랫동안 흘러드는 법이니까. 허나 한번 독자들 가슴에 닿으면 결코 지워지지 않지. 저도 모르게 소설의 분위기와 가르침에 젖어든다네. 상소를 쓸 수도 있지만 그건 강력하게 항의했다는 기분만 낼 뿐 전혀 효과적이지 못해. 사라진 듯하다가도 나타나고 사라진 듯하다가도 다시 나타나는 소설이야말로 내가 세상에 남길 수 있는 값진 흔적인 듯하네.”--- p.280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이라고? 꼭 마지막 유언 같구나. 죽어서도 잊혀지기 싫다는 것인가? 영원히 잊혀지지 않기 위해 이 소설을 썼다는 이야기인가? 슬픔으로 가득 찬 제목이구나. 자신을 죽음의 구렁텅이에 빠뜨린 나를 원망하는 제목이구나. 허나 어쩌랴. 죽은 자는 잊혀지는 것이 운명인 것을. 꼭 사람만이 아니다. 널리 읽히던 소설도 언젠가는 잊혀지기 마련이니까. 잊혀지는 것을 서러워할 까닭이 없지.
젊은 매설가(소설가) 모독은 한때 졸수재 조성기라는 유명한 매설가의 문하에서 소설 쓰는 법을 공부했지만, 스승이 죽은 뒤로는 더 이상 글을 쓰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인현왕후를 쫓아내고 왕비 자리에 오른 장옥정이 그를 은밀히 궁으로 불러들인다. 장옥정은 모독에게 서포 김만중이 유배지에서 집필 중인 소설을 훔쳐오라고 명한다. 한때 존경하던 어르신이었으나 목숨의 위협 앞에서 모독은 장옥정의 명을 받아 서포가 있다는 남해로 내려간다. 그러나 남해에는 김만중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조성기 아래서 함께 수학하며 결혼을 약속했지만, 스승의 작품을 훔쳐 도망쳐 버린 백능파가 김만중의 곁에 있었다. 『사씨남정기』를 손에 넣기 위한 배신과 애증의 스토리 위로 문학과 소설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뒤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