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개인이 아닌 사회의 생존경쟁을 뚜렷이 부각시켜준다. 개인의 생사와는 별개인 사회의 생사가 있는 것이며, 사회는 개인들의 생명을 소모하며 스스로의 생존을 도모한다. 사회는 개인과는 다른 생존경쟁의 단위인 것이다. 생물학적으로 표현하면 인류 사회는 초유기체超有機體/superorganism의 성격을 갖고 있다.(30쪽)
민주주의는 초유기체의 머리를 사회 구성원이 선발하고 통제하며 사회가 시민을 위하여 존재하는 공동체 사회로 회귀하는 것이다. 조건부 초유기체는 개인의 생존과 번식이 우선이다. 이런 목적을 더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 초유기체를 구성하는 것이다. 인류는 조건부 초유기체이기 때문에 민주주의는 인류의 진화 궤적상 필연적인 것이다.(38쪽)
초유기체적 사회가 초유기체적 아사회들로 구성된다는 것은 민주적인 사회에는 바람 잘 날이 없다는 것을 예고한다. 개별적으로 생존과 생식을 도모해야 하는 개인들이 모인 초유기체, 그런 초유기체들이 모여 이룬 더 큰 초유기체의 내부에서 모두의 이해가 일치하여 한마음이 되는 일은 예외적이며 오히려 끊임없는 이해의 충돌과 갈등이 빚어지기 마련이다. 그것은 초유기체가 매일 열병을 앓으며 허약한 상태에 놓이기 쉽다는 뜻이다.(42쪽)
그룹선택은 그룹의 구성원인 동물 개체들이 자신의 이익을 유보하고 협동함으로써 적합도가 높아진 그룹이 선택되는 현상이다. 사람이나 늑대 같은 포식자 종에서 그룹선택은 구성원들 간에는 윤리를 촉진하며 협동을 조장하고 다른 그룹에 대해서는 초유기체가 되어 공격하도록 만든다. 그룹선택은 사람의 많은 모순적 행동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윤리에 대한 전형적인 혼란이나 딜레마는 그룹선택과 그로 인한 인간의 본능이 고려되지 않은 채 인간 사회를 보는 데서 온다고 생각된다.(64쪽)
선행의 구성 요소에 의한 정의는 선행 판단의 중심에 쾌락과 고통이 있음을 말해주며 행위자가 아니라 피행위자의 행복이 판단의 관건임을 보여준다. 행위자가 행복을 얻었느냐는 중요하지 않으며 고통을 당하던 사람이 행복해졌는가가 핵심이다. 자연선택을 염두에 두고 보면 선행은 행위자가 자신의 적합도를 희생하며 다른 사람의 적합도를 높여주는 행위라고 할 수 있겠다.(76쪽)
살신성인적 선행은 초유기체적 사회의 진화라는 관점에서 보면 필수적인 메커니즘이다. 타인의 위기 상황에 핫라인이 가동되는 것은 행위자를 불필요한 위험으로 몰고 가며 희생시키기 쉽지만 행위자가 반드시 희생되는 것은 아니다. 위기 상황이란 한 사람만이 겪는 것이 아니고 살다 보면 모두가 다 겪게 마련이다. 혼자서 위험에 대처하는 것보다 여러 사람이 힘을 합치면 위기를 극복할 가능성은 훨씬 높아진다.(106쪽)
사회적 경쟁은 당사자에게는 스트레스를 주지만 초유기체 사회에게는 필수적인 장치이다. 수위경쟁은 자질이 훌륭한 리더를 선발할 수 있게 하고 서열경쟁은 미묘한 서열과 질서를 부여하고 모든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최선을 다하게 만든다. 사회는 한편으로는 다투지 말라고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경쟁을 부추긴다. 사회의 구성원들은 이에 맞추어 한편으로는 협동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동료를 추월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역사상 최고의 풍요를 누리는 현대 한국인의 많은 고통은 사회적 경쟁에서 온다. 사회적 경쟁은 구성원들에게 고통을 주는 악이고 구성원들이 윤리적 악을 저지르게 만드는 원인이기도 하다.(15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