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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캘리포니아

호텔 캘리포니아

리뷰 총점9.4 리뷰 7건 | 판매지수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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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1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544쪽 | 712g | 152*225*35mm
ISBN13 9791186963340
ISBN10 1186963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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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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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두 손을 높게 들고 벌서고 있는 것 같아. 덜덜 떨리는 팔을 힘주어 참고 있는데, 누군가가 얇은 종이 한 장을 그 위에 얹는 거야. 그럼 새털같이 가벼운 종이 한 장에도 두 팔은 무너져 버리겠지? 그런데 사람들은 말할 거야. 겨우 이 종이 한 장에?”

그녀가 말한 종이 한 장. 그 한 장의 무게를 느낄 때까지 혼자 벌을 서야 했는지도 모른다.
“벌설 필요 없어. 그만 손 내려!”라고 말해주는 이가 없었다.
“조금만 참아. 다 왔어.”
“그런데 기껏 종이 한 장 때문에?”
지구보다 더 무거운 종이 한 장의 법칙.


장인어른의 얼굴에는 황당함이 역력해 보였다.
“자네 그걸 말이라고 하나? 그 애가 없는데, 다른 여자가 임신해서 낳은 애가 그게 서영이 애란 말인가? 단지 그 작은 배아 갖고 어떻게 서영이 애라고 할 수 있나”
“아버님, 다른 여자가 낳았다고 해도 그 사람 유전자잖아요. 그럼 서영이 애인 거죠. 단지 다른 사람의 자궁만 빌릴 뿐이고요.”
재민은 설득과 동의를 구하는 애절한 눈빛으로 장인어른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글쎄. 나는 모르겠네. 그렇게 해서 태어난 애가 서영이 애라는 생각이 들 것 같지는 않네. 그냥 배아인지 뭔지는 잊어버리고 좋은 사람 만나서 제대로 애 낳고 행복하게 살아야지. 그래야 내가 맘이 편하지.”
장인어른은 마른기침을 하면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엄마도 없이 애를 낳으면, 키우기는 누가 키우고. 말이나 되는 소리를 해야지, 원.”
뭔가 묵직한 것이 재민의 가슴을 압박해왔다.
“그럼 그 애들은 어떡해요? 그냥 버려요? 지금 냉동고에 있다고요. 그리고 그 애들을 포기하면 서영의 존재는 이 세상에 완전히 사라져 버려요.”
“떠나간 사람은 이미 떠나간 거야. 그렇게 미련 갖는 것도 바보 같은 짓이야. 그리고 그 배아가 뭐라고.”
장인어른은 문을 열어 차에서 내리면서 말했다.


언젠가 재민은 서영에게 말했다.
“너의 가장 큰 장점은 잘 웃는다는 거야”
그 말에 그녀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사라졌다. 서영은 미간을 찡그리고 정색하며 말했다.
“그런데 그거 알아? 그 사실이 나를 참 외롭게 만들어. 내가 힘들다고 하면, 사람들은 엄살이라고 해. 너처럼 행복한 애가 뭐가 힘드냐고. 그래서 힘들다는 말도 못 해.”
“때로는 나도 힘들다고 말하고 위로받고 싶은데. 그런데 누가 내게 괜찮으냐고 하면, 나는 언제나 웃으면서 괜찮다고 해. 그런데 정말 괜찮은 건 아닌데.”


하지만 돌아온 현아의 말은 서영이 기대했던 것과 달랐다.
“그래, 너도 힘들겠지만 세상에는 너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이 많아. 그런 사람을 보고 너도 힘내.”
서영은 전혀 힘이 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깟 일로 그렇게 힘들어’라고 들렸다. 자신이 마치 엄살을 부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 힘이 빠졌다. 동시에 그녀의 말을 반박이라도 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적어도 문학을 전공한 이라면 한 인간의 고통에 대한 이해는 필수불가결이라고 여겼다. 문학의 대상은 학문 자체가 아니라, 인간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현아 또한 우울증과 불면증으로 한동안 병원을 다니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고 있으니까 우울증이 심해지는 것 같아. 잠도 거의 못 자고 있어. 재민씨 출근하고 나면, 그때서야 겨우 세 시간 정도 자. 잠을 못 자니까 정말 힘드네.”
뱃속의 아이를 반복해서 떠나보낸 아픔은 경험해 보지 못해 이해하기 어렵다고 해도 이 문제만은 이해할 거라고 여겼다. 서영은 현아에게 위로를 받고 싶은 기대는 없지만, 이해는 받고 싶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기대와 달리 무척 싸늘했다.
“네가 스스로 우울증이라고 말한다면, 그건 우울증이 아니야. 정말 우울증이면 스스로 우울증이라고 말 못 해. 그건 단지 우울하다고 느끼는 우울감인 거지. 그리고 아침이라도 잠을 잔다며? 그럼 그것도 불면증이 아닌 거지. 수면부족인 거뿐이야. 아니면 밤낮이 바뀐 거거나.”
수화기 너머로 얼음처럼 차가운 밀물이 하얀 포말을 몰며 서영의 귀를 통해 가슴에 밀려왔다. 서영은 그 밀물에 자신의 심장과 함께 몸도 거실 저 밖까지 떠밀려 바닥에 후줄근하게 널브러진 느낌이었다.
괜히 말했다. 후회가 밀려왔다.
서영은 그녀가 공부 외에 세상에 대하는 마음의 결이 어떤지 알 기회가 없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럼 불면증인 사람은 잠을 전혀 못 자는 거니? 어떻게 사람이 몇 날 며칠을 잠을 아예 못 잘 수가 있어? 지금 한 달도 넘게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있어. 아침에는 거의 지쳐서 쓰러져 잠들고. 정말 괴로워.”
“그래도 잠을 자잖아. 나는 아예 일주일을 꼬박 새웠었어.”
“그래도 일주일 뒤에는 잤다는 이야기네. 나는 지금 몇 년째 이러고 있어. 임신했을 때는 호르몬 변화 때문인지 그나마 좀 잤는데, 유산되고 나서는 거의 못 자.”
서영은 마치 누구의 병이 더 깊은가 내기하는 듯해서 씁쓸했다.
그래, 넌 예전에도 너의 것보다 작아 보이는 건 다 무시했지.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물리적인 수치로 잴 수 있는 게 아니야. 아프다는 사람, 그냥 아프다고 공감해주면 안 되겠니
일주일 밤을 새워도 괴로운 거고, 하룻밤을 새워도 괴로운 거야. 작은 가시 하나로 때로는 사람이 죽을 수도 있어. 시인 릴케처럼 말이야. 네가 말하는 그 작은 가시가 내게는 마치 대들보처럼 느껴져. 큰 대들보가 내 몸 한가운데에 박혀 있는 것만 같아.
현아는 계속 논리적으로 설명했다. 감성을 호소하는데, 현아는 이성의 칼날을 휘둘렀다. 이성의 칼날은 날카로워 준비되어 있지 않은 이에게는 때론 위협적으로 보였다. 현아는 자신이 우울증과 불면증을 극복한 방법을 설명하며 서영의 상태를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방법을 제시했다. 마치 마취주사도 맞지 않은 상태에서 해부를 당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서영에게 많이 변했다고 말했다. 감상에서 그만 벗어나서 예전의 모습을 찾으라는 말까지 보탰다.
몸을 다쳐도 재활 기간이 필요하듯이 마음도 재활 기간이 필요했다. 절룩거리며 걷는 사람의 손을 잡아당기며 뛰라고 한다면, 그는 쓰러지고 다시는 못 일어날지도 모른다. 마음도 그러하다. 현아는 그녀에게 다시 예전처럼 뛰라고 말하며, 그러지 못하는 그녀를 비난했다. 적어도 서영은 그 말이 비난처럼 들렸다.


“예전에 미국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어떤 백만장자 부부가 있었는데, 불임이었나 봐요. 그런데 시험관 아기를 시도하던 중에 그만 교통사고로 부부가 사망한 거예요. 그런데 그들이 남긴 냉동 배아가 있었던 거죠. 그래서 이 배아에게 그 부부의 재산을 상속할 건지 아닌 지, 법적 논쟁이 있었다고 해요. 즉, 배아를 생명으로 볼 건가 아닌가 하는 문제인 거죠.”


재민은 위스키를 들이켰다. 목이 뜨거워 얼굴을 찡그렸다. 위스키가 담긴 유리잔을 두 손으로 감싸고 눈을 감았다. 취기가 올라왔다. 원하는 대리모를 구하고 임신만 하면 될 줄 알았다. 이제는 아이가 태어나면 어떻게 키워야 할지. 이런 종류의 구체적인 문제들이 떠오르면서 이 일을 시작한 게 잘한 것인지 그조차 의심이 되었다.
엄마 없는 아이는 어떻게 될까?
모든 것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아이는 세상에 태어나게 해줘서 감사하다고 할까?
아이에게 엄마 이야기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엄마는 네가 잉태되기도 전에 죽었단다. 휴우.
아이에게도 이기적인 행동을 한 것은 아닌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괴로울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재민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몹시 힘들다.


“자칫하면 의사 선생님이 네가 아닌 바로 옆의 다른 배아를 선택할 뻔했어.”
“그럼, 그 배아는 어떻게 되었는데요”
“엄마는 네 동생을 안 원했거든. 그래서 버려달라고 했지.”
“그럼 의사 선생님이 저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저도 그렇게 버려질 수 있었겠네요.”
“…”
나중에 그런 일이 생긴다고 해도, 절대 아이들에게는 말하지 말아야 한다.


라디오 방송이 훗날 서영에게 떠오르며 그녀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한 아버지가 보낸 편지였다.
하나밖에 없는 이 십 대 아들이 어느 날 교통사고로 불귀의 객이 되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아들을 잃은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아들이 사귀었던 여자 친구들을 수소문해서 찾아다녔다고 했다. 실례가 되는 줄 알면서도 여자 친구들에게 이렇게 물어봤다고 한다.
혹시 우리 아이의 애를 임신하지 않았냐고.
서영은 그 방송을 들으며 불쾌감에 미간을 찌푸렸었다. 그 여자 친구들이 느꼈을 황당함과 한편의 모멸감 같은 감정이 그녀에게 이입되었다. 그때 서영도 같은 이십 대였다. 그런데 오랜 시간이 지나 아이에 대한 집착이 강해질수록 그 라디오 방송이 떠올랐다.
그 아버지의 마음도 이런 것이었을까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삼청동 카페에 여자들이 모여 있다. 다들 엄마가 되고 싶다고, 자신의 흔적을 조금이라도 남기고 싶다며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이 곳에서 울음을 토해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아파야 하냐고. 왜 이렇게 힘들어야 하냐고.
간절히. 아이를. 원한다고.


그런데 갑자기 배가 꾸르륵 가스 차는 느낌이 들었다. 임신한 이후로 변비가 심해져 종종 가스가 차면서 배가 아팠었다. 재민이 사다 준 매실청도 이미 다 마시고 없었다. 채린은 화장실을 다녀오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때, 뭔가 배에서 스르르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이 느낌! 채린은 분명하게 기억했다. 지후를 임신했을 때 느꼈던 그 익숙한 느낌이었다. 가슴이 벅차오르는 환희는 찰나였다. 이내 숨이 가빠 오면서 뜨거운 기운이 목울대까지 치밀어 올라왔다. 머리가 아득해졌다.
조금 전 모니터에서 봤던 그 아이는 가상이 아닌 그녀 배 속에서 실제로 존재하는 아이였다.
다리에 힘이 스르르 풀려 그 자리에 그만 주저앉아 버렸다.
채린은 두 손으로 눈을 가렸다. 눈물을 참으려고 할수록 목울대는 차올랐다. 작은 신음을 참기 위해 악물고 있던 치아가 덜덜 떨렸다. 눈을 가린 두 손 사이로 뜨거운 액체가 스며 나오고, 꽉 막고 있던 목울대는 터져 젖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아아, 어떡해.”
지나가던 사람들이 그녀 주위에 몰려와 괜찮으냐고 물었다. 하지만 채린에게는 어떤 말도 들리지 않았다.
채린은 주저앉은 채로 눈을 감고 양수로 가득 찬 어두운 자궁을 들여다봤다. 그 안에는 채린의 목소리를 듣고 느끼는 한 아기가 누워 있었다.
채린과 눈이 마주치자 배시시 웃는다. 배가 고픈지 엄지손가락을 쪽쪽 빨고 있다.
채린은 배 위에 얹은 손끝으로 그 움직임을 응시했다. 마치 공기 방울이 뽀글거리는 것처럼 톡톡 터지는 느낌 뒤에 아기는 다시 스르르 느리게 움직였다. 아기는 그녀의 자궁 안에서 유영하고 있었다.
채린은 이 느낌을 앞으로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이 아이를 사랑하게 될 것 같았다. 아니, 이미 사랑하고 있었다. 채린은 가져서는 안 되는 이 아이에 대한 이끌림이 두려워 어깨를 떨었다.
“어지러우세요? 저기 가서 잠깐 쉬셨다 가세요.”
프런트에 있던 간호사가 달려와 주저앉은 채린을 일으켜 병실 침대에 눕혔다. 채린은 배 위에 손을 가지런히 올려놨다. 움직임은 계속되었다.
이 느낌을 기뻐하고 사랑할 수 없다는 사실에 눈물이 났다. 채린은 병원에 더는 있을 수가 없어 간호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가방을 챙기고 밖으로 나왔다.


“제가 울어도 봐 줄 사람이 없다는 그 막막한 느낌은 정말 표현을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잘 안 우나 봐요. 어차피 울어도 내가 우는 걸 아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왜, 사람이 그런 거 있잖아요. 그냥 슬프고 화가 나서 울지만, 그래도 내가 우는 걸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그 자체가 더 외롭게 느껴지는 거요. 울면 더 외로워져서 안 울어요. 아, 그런데 제 이야기만 하고 있었네요. 죄송해요. 언니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하셨는데. 예전에 언니랑 나눴던 이야기를 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그만.”
그녀는 이야기 하다 말고 얼굴을 붉히며 미안해했다. 재민은 전혀 거부감 없이 듣고 있었기에 이야기가 중단된 것이 아쉬웠다.
“아뇨. 괜찮아요. 재미있게 듣고 있었어요.”
상대의 굴곡진 인생을 재미있게 듣고 있었다는 말이 어쩐지 어폐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얼른 고쳐 다시 말했다.
“재미있었다는 것은 음, 그러니까 이야기에 어떤 울림이 있다는 뜻이에요.”
채린은 웃으며 말했다.


똑똑똑!
누군가 화장실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서영은 그 소리를 무시한 채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아무런 기척을 내지 않았다. 다른 곳으로 갔는지, 더는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서영은 시간이 한참 지난 후 어지럼증이 가시고 눈앞이 밝아지자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새까만 음표 같은 글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굳게 닫힌 화장실 문에 새겨진 낙서였다. 수많은 낙서로 문은 지저분했지만, 일부러 그대로 놔둔 것 같았다. 어쩌면 그 낙서를 지우고 또 지워도 끊임없이 낙서를 했는지도 모른다. 엄마가 되지 못하는 이들이 어느 누구에게도 하지 못하고 가슴에만 담아둔 말을 화장실 문에 뱉어낸 흔적이었다. 그리고 그 문은 유일하게 그들의 하소연을 들어주고 있었다. 서영은 멍한 눈으로 그 낙서를 더듬어갔다.
이번에는 꼭 성공하게 해달라는 기도. 힘들다는 이야기. 병원비가 너무 비싸다는 하소연. 대부분 한탄과 자기연민이었다. 서영은 구겨진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아 가슴이 먹먹해졌다.
화장실 문의 낙서를 따라 시선이 위로 올라가자 굵직한 매직으로 쓴 까만 글이 눈에 들어왔다.

한 번만이라도,
딱 한 번만이라도
엄마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시선이 멈추었다. 지금까지 그녀를 지탱하고 있던 축대가 일제히 와르르 무너졌다. 뜨거운 기운이 목울대를 밀쳐 올라와 숨이 막혔다. 그 글을 손으로 더듬었다.
형체를 알 수 없던 감정의 구름이 비가 되어 내리기 시작했다. 구름은 비뿐만 아니라 천둥과 번개까지 동반했다. 그동안 애써 괜찮다며 자신을 달래 왔지만, 괜찮지 않았다. 그냥 툴툴 털고 일어나서 아이 없이 남편과 둘이 행복하게 살면 된다고 생각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언제나 그 뒤에 밀려오는 커다란 파도는 그 생각들을 삼켜버리고는 했다.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잘 견디고 있다고. 단지 이 집착을 끊지 못하는 자신이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하지만 ‘엄마’라는 소리를 듣고 싶은 간절함은 그녀의 의지를 넘어서 있었다.

나도….
엄마라는 소리를 딱 한 번만이라도
딱 한 번만이라도 듣고 싶다.


“그런데 어쩌겠어. 너무 작아서 살 수도 없는데. 꺼낼 때 상처가 많이 났었어. 놔둬 봤자 살 수도 없다고 했어. 살아 봤자 좋지도 않을 거고. 그래서 그냥 병원에서 나왔어.”
엄마는 힘겹게 말을 이었다.
“그때 엄마 아빠가 나이가 많았고, 엄마 몸이 많이 안 좋았어. 기형아인 애를 키울 자신이 없었어. 아빠는 계속 외국에 나가서 일해야 했고. 그리고 우리가 죽고 나면 네가 혼자 그 애를 책임져야 하는데, 어떻게 그러겠니. 엄마도 고민 많이 했어.”
엄마는 마지막 문장에 힘을 주며 말했다.
“만약 지금처럼 뱃속의 아기를 볼 수 있었다면, 아마 그렇게 못 했을 것 같아. 아기를 낳기 전까지는 볼 수가 없을 때였으니까. 뱃속의 아이가 한 생명으로 느껴지지 않았거든. 그때는 다들 그렇게 애를 지우곤 했어. 네가 작년에 아기 초음파 사진을 보내줬을 때, 그 아이 생각이 많이 나더라.”
엄마는 울고 있었다. 이제는 어떤 감정도 담을 수 없을 것 같은 고목 껍질처럼 말라버린 얼굴에 눈물이 촉촉이 흘러내렸다. 서영은 소매 춤으로 엄마의 눈물을 닦았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 아이가 기형아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의사 얘기만 듣고 나는 그만, 그렇게 했어.”
엄마는 그 이후로 사내아이의 울음소리가 끊임없이 들리는 환청에 시달렸다고 했다. 국민학교 3학년 이후로 늘 아파 누워 있던 엄마에 대한 기억의 언저리에 그런 상처가 있었다. 서영은 지금까지 추호도 생각해 보지 못한 일이었다. 방과 후 집에 오면 늘 침대에 누워 있던 엄마 모습만 떠올랐다. 원래 그렇게 아픈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서영은 같은 여자로서 동정심이 갔지만, 마치 그 시대에는 그런 것이 자연스러웠다고 정당화하듯 담담하게 말하던 엄마에게 화가 났다. 어쩌면 엄마가 아니라,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에 대한 고민과 성찰이 결여된 사회와 그 시대에 화를 내야 했는지도 몰랐다.
만약 나라면 어떤 결정을 했을까?
서영은 질문했다.
남들과 다르게 태어나는 아이에게, 너는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게 나았어. 너 때문에 내 인생은 망가졌어, 라고 생각하게 될까? 아니면 어떤 이유든 간에, 너는 태어날 가치가 있는 소중한 존재야, 라며 그 아이의 탄생을 축복하고 행복해 했을까?
나는 어떤 엄마가 될까
그 생각에 미치자 가슴이 먹먹했다. 장애를 가진 자식을 둔 한 엄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가장 큰 소원은, 자기 자식보다 하루 늦게 죽는 거라고. 그래도 나는 이 아이 때문에 행복했다고.
그렇게 남게 되는 자식 걱정에 부모는 눈도 감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그래서 많은 부모들은 지레 겁을 먹고 아이가 그렇게 태어나는 것을 미리 막아버리곤 한다. 하지만 한 생명의 탄생 이유가 누군가를 행복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듯이, 불행을 막기 위해 죽어야 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 생각에 미치자, 서영은 한없이 이기적인 인간의 모습에 힘이 빠져버렸다.
그런데 엄마와 같은 입장에 놓인다면, 태어나지 않은 생명보다 살아 있는, 앞으로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 대해 우선 생각하지 않을까.
서영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서영은 고민과 갈등이 깊어질수록 엄마 생각이 간절해졌다. 엄마의 결정을 원망하고 용서하지 못할 거라고 여태껏 굳게 믿었다. 자신은 같은 상황에 처한다고 해도 조금의 고민도 없이 그 생명을 받아들일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서영은 갈등하고 흔들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엄마의 선택이 현명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엄마를 원망했던 것이 조금 미안해졌다.
이는 남편과 나뿐만 아니라 아이를 위하는 일이고, 태어나서 고통 받느니 안 태어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서영은 자신이 어떤 결정을 하더라도 그에 따르는 죄책감을 무마시키기 위해 이렇게 위로했다. 하지만 아이의 고통을 본인이 아닌 부모가 판단하고 선택한다는 것이 어쩐지 월권행위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아이의 행불행을 미리 판단하고 재단하면서 선택하는 일이 부모의 마땅한 권리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더군다나 한 명의 생명과 관련된 일이었다. 아이의 장난감을 고르고, 좋은 친구와 그렇지 않은 친구를 가려주는 일이 아니었다.
“네가 불행해지는 걸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네가 태어나지 않는 쪽을 택했어.”
“엄마가 불행해지는 걸 원하지 않았던 건 아니고요”
“아니야. 내가 힘든 건 감당할 수 있었어. 하지만 네가 힘들고 불행해지는 걸 지켜볼 수가 없었지.”
“지켜보지 않는 게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것보다 나은 건가요? 그리고 제가 왜 불행해 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조금 아플 뿐이고, 남들과 조금 다를 뿐이잖아요.”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니”
“그게 태어나지 않아야 할 만한 일인가요? 엄마는 거짓말하고 있어요. 엄마의 삶이 망가지는 게 두려웠던 거죠.”
수많은 대화가 귓가에서 윙윙 울리며 지진의 전조처럼 다른 생각은 고요해졌다. 다양한 가능성을 시뮬레이션해 보고, 자신이 선택하게 될지도 모를 일에 대한 변명이 내면에서 끊임없이 오갔다. 그렇게 고민하고 있는 서영을 보고 재민은 말했다.
“결과 나오면 그때 가서 고민해.”
병원에서 처방한 약을 먹고 하루 종일 잠을 자면 그 시간 동안은 잊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그런데 심해진 입덧 때문에 새벽에 다시 깨어나게 되면 수많은 고민으로 밤을 지새워야 했다. 점점 건강 상태는 포물선을 그리며 급격히 하강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낙태는 안 되겠어. 도저히 그건 못 하겠어. 우리가 그렇게 간절히 원해 놓고 우리 맘에 안 든다고 아이를 지워 버리는 건 말이 안 되는 것 같아.”
며칠 밤을 뜬 눈으로 지새운 서영은 아침에 알람 벨이 울리자 버튼을 눌러 끄면서 재민에게 말했다. 잠이 덜 깬 재민은 서영의 말을 듣고 몸을 돌려 누우며 말했다.
“그러자.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게 해야지. 당신이 가장 힘들 텐데. 키울 자신은 있어”
재민은 잠결에 눈도 뜨지 못하고 웅얼거리며 말했다.
“이건 자신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닌 것 같아.”
서영은 재민의 귀에 대고 나직이 대답했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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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무엇인가 어둡고 처절하다. 죽음으로 끝나는 난임의 고통…. 하지만 나는 소설 곳곳에서 작가의 따뜻한 인간애를 발견한다. 작가는 등장인물들의 작은 몸부림 하나 놓치지 않고 안아주며 위로한다. 역설적이게도 죽음으로 생명을 드러낸다. 유산을 경험하거나 낙태를 경험한, 또는 체외수정을 시도하고 있는 사람들이 본다면 큰 위로가 될 것이다. 이 소설이 말하는 것은 바로 휴머니즘이다.
강민 시인

김수련이 오랜 각고의 노력 끝에 내놓은 이번 데뷔 소설 『호텔 캘리포니아』는 이글즈가 1974년 발표한 불후의 명곡 ‘호텔 캘리포니아’를 1994년 어쿠스틱 라이브 버전으로 듣는 듯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이때의 공연에서 돈 헨리의 허스키한 목소리는 그대로지만 글렌 프레이와 조 웰시의 기타는 포효하기보다는 촉촉하게 휘감긴다. 그래서 꽤나 서글프면서 동시에 관조(觀照)적이다. 김수련은 그렇게, 비교적 대하(大河)의 서사를 통해 자신의 지난 삶을 서정적으로 통찰한다. 인생의 수련(修鍊)과 그 아픈 각성이 읽는 사람의 심금을 다독인다. 읽는다는 것의 의미가 부여되고 마치 이어지는 수채화들을 한편의 영상으로 엮어 낸 듯한 느낌을 준다. 이건 언젠가 꼭 영화로 만들어져야 할 작품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남자주인공 1명과 여자주인공 3명이 등장한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건 남자주인공 재민이다. 행복에 다가가는 건 채린이지만 이야기의 중심엔 그녀 서영이 있다. 재민은 바람처럼 스쳐가는 여자 유리를 통해 각성하며 성장한다. 하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은 서영도 재민도 채린도 유리도 아니다. 이 소설의 진짜 주인공은 "생명"이다. 이 소설의 가장 인상적이며 주목할 부분은 바로, 생명에 대한 작가의 주제의식이다. 인공수정과 잉여배아, 대리모라는 흔치 않은 소재로 생명에 대해 이렇게 끈질기게 접근한 소설이 있을까? 40대 후반에 묵직한 원고를 들고 등장한 그녀를 주목한다.
허진호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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