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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닮은 목소리로

나를 닮은 목소리로

[ 개정판 ] 박완서 산문집-09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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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1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236쪽 | 338g | 128*188*50mm
ISBN13 9788954650021
ISBN10 895465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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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나는 나를 토박이 서울 사람과 확연히 다르게 느낄 적이 있다. 내 성격 중 좋은 점이 있다면 그건 거의 나의 촌스러움에 근거하고 있다는 걸 자각할 때이다. 그리하여 고향은 어머니에게뿐 아니라 나에게도 자존심의 근거가 돼주고 있다. 이렇듯 내 고향은 아직도 나에게 살아 있는 모순이다. ---「나의 문학과 고향의 의미」중에서

작가의 눈엔 완전한 악인도 완전한 성인도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한테 미움 받은 악인한테서도 연민할 만한 인간성을 발굴해낼 수 있고, 만인이 추앙하여 마지않는 성인한테서도 인간적인 약점을 찾아내고야 마는 게 작가의 눈이다. 그리하여 악인과 성인, 빈자와 부자를 층하하지 않고 동시에 얼싸안을 수 있는 게 문학의 특권이자 자부심이다. 작가의 이런 보는 눈은 인간 개개인에게뿐 아니라 인간이 만든 사회나 제도를 보는 데도 결코 달라질 순 없다고 생각한다. ---「나의 문학과 고향의 의미」중에서

피는 꽃을 보고 즐거워하는 대신 꽃을 피우는 대자연의 섭리의 일부가 될 테고, 육신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만나는 대신 무심한 바람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옷깃을 스치게 될 터이다. 또 자식들은 가끔 내 생각을 하며 그리워도 하고, 나를 닮은 목소리로 제 자식을 나무라고, 나를 닮아 잘 웃으며, 열심히 일상을 살다가 문득 자신의 나이들어가는 모습에서,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죽은 에미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럴 때 자식들이 이 에미가 남기고 간 희미한 자국을 혐오하지 말고 따뜻이 받아들였으면 하는 게 이 세상에 대해 내가 아직도 못 버리고 있는 미련 중의 하나이다. ---「내가 꿈꾸는 나의 죽음」중에서

보성강을 끼고 압록에 이르러 섬진강과 만나고 구례를 거쳐 화계, 악양, 하동까지의 길은 정말로 환상적이었다. 파스텔조로 사위어가는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그날 온종일 한 번도 공장이나 고층 아파트의 회색빛 직선을 보지 못하였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아아, 바로 그거였구나. 오늘 하루 누린 평화와 행복의 원인이 바로 그거였구나. 그건 소리라도 지르고 싶게 놀랍고 신선한 충격이었다. ---「생각나면 그리운 땅―섬진강 유역」중에서

고모의 딸 그러니까 네 사촌한테서도 이 할미는 고모의 소녀 적을 보고 또한 나의 지난날을 본단다. 그건 아마 느이 외할머니나 외할아버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너희들 안에서 그들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신기해하기도 하고 흐뭇해하기도 할 것이다. 자식이, 손자가, 증손자가, 뿌듯한 보람이요 찬란한 경이인 까닭도 바로 그런 데 있는 게 아니겠니. 마치 흐르는 물처럼 자신의 일부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면서 영원히 늙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고 믿고 싶은 거지.
---「잔소리꾼 할머니가 손녀에게」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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