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의 설렘을 담뿍 품은 금요일이었다. 나 역시 추위가 누그러진 온화한 날씨를 만끽하러 마실을 나섰다. 동네 작은 커피숍에서 따뜻한 라떼 한 잔을 주문하고 자리에 앉던 찰나.
미동이 일기 시작하더니 그 흔들림은 점점 거세졌다. 순식간에 커피숍 안이 들썩이고 있었다. 손님들 테이블에 놓인 커피잔은 거센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지기 시작했고, 점원이 크게 소리를 질렀다.
“나가세요. 빨리요! 빨리!”
주변 건물에서도 사람들이 떼를 지어 뛰쳐나오고 있었다. 웅성거리는 불안감 속에서 땅은 파도처럼 출렁댔다.
사람이 이렇게 죽을 수도 있는 거구나….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그 순간은 그런
생각을 했다. 눈앞에 있는 십여 층짜리 건물이 45도 각도까지 휘청거리고 있던 데다, 땅이 너무 심하게 흔들려서 한 발자국도 걸을 수 없었다.
--- p. 17
식사가 다 끝날 무렵, 오자와 씨가 우리 테이블로 다가왔다.
“맛이 어땠어요? 입맛에 맞았을지 모르겠네.”
“너무 맛있었어요. 배가 터질 정도로 먹었는걸요.”
“다행이에요. 참, 혹시 명함 있어요? 실례가 안 된다면, 명함 한 장만 줄 수 있어요?”
밥집에서 명함을 달라는 일은 한국도 그렇지만 일본에서도 흔치 않은 일이다. 그래서 나는 조금 당황한 기색을 보이고 말았다. 그러자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내게 보충 설명을 덧붙였다.
“아…. 내가 이 가게를 한 지 20년 정도 돼요. 하루도 빠짐없이 내가 하는 일이 하나 있는데, 그 날 그 날 우리 가게에 온 손님들에게 손편지를 써서 보내는 거예요. 감사의 마음을 담아서 매일 밤 편지를 쓰죠. 그게 내 하루 일과의 마지막 일이에요. 우리 아가씨한테도 편지를 보내고 싶은데 주소를 몰라서요.”
편지. 오랜만에 들어보는 단어였다. 더구나 한끼 식사를 하러 간 가게에서 ‘편지’라는 단어를 듣게 될 줄이라고는 누가 상상이라도 할까. 이틀이 지나자 정말 그녀에게서 편지가 한 통 도착했다
--- p. 28
내가 현재 소속되어 있는 연예인 매니지먼트사는 일본에서 제일 큰 대형 기획사 중 하나인 ‘호리프로’라는 곳이다. 설립한 지 8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호리프로는 도쿄 증권 거래소 1부 상장 기업으로 연예인 기획사 중에서 손에 꼽을 만큼 힘이 막강하다. 배우 뿐 아니라 가수, 개그맨, 탤런트, 스포츠 선수, 성우 등 다양한 분야의 연예인이 소속되어 있는데, 대표적인 연예인으로는 일본의 톱스타 아야세 하루카, 이시하라 사토미, 후지와라 타츠야, 와다 아키코, 개그맨 사마즈, 바나나맨 등이 있으며, 소속 연예인만도 200명이 넘는다. 윤손하 씨와 조혜련 씨는 지금 일본 활동을 하지 않고 있지만, 일본에서 활동을 했던 당시 호리프로 소속이었다. (중략)
일본 연예계가 한국과 어떤 점이 다른지를 묻는 사람들이 많은데,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로 ‘탤런트와 매니저와의 관계’가 한국과 다소 다르다는 것을 꼽을 수 있다.
모두 알다시피 한국의 경우에는 탤런트와 매니저가 가족처럼 항상 같이 다니는 게 일반적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일이 없는 날이야 따로 시간을 보내지만, 일이 있는 날에는 모든 일정을 매니저가 동행한다. 집에서 촬영장까지 이동할 때도 매니저가 함께 가며, 촬영 중 쉬는 시간, 식사 시간 모두 매니저가 함께 한다.
반면 일본의 경우는 촬영이 있는 경우, 촬영장소에서 촬영시간 10분 전에 매니저와 만나는 게 기본이다. 그리고 촬영이 끝나면 촬영장소에서 바로 인사를 나누고 헤어진다.
--- p. 77
이렇게까지 흥분하는 나오키는 지금껏 본 적이 없다. 어떤 곳이기에 그러지? 내 기대감도 커졌다. 생선보다는 고기를 좋아하는 터라 ‘스시’라는 단어에 크게 흥분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5년 넘게 예약이 차있는 가게’라는 말에 호기심이 커졌다. ‘예약’을 당연시 여기는 나라 일본. 맛있는 걸 먹기 위해서 기다림은 기꺼이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본이지만, 5년은 너무 길다. 5년이나 기다려서 먹는 스시는 도대체 어떤 맛일까? 도통 상상이 되지 않았다.
금요일 저녁 여섯시.
나와 나오키는 도쿄의 신바시에서 만났다. 샐러리맨들이 퇴근 후 회포를 푸는 걸로 유명한 동네이다. 우리가 만난 금요일 저녁에도 많은 샐러리맨들로 가득했다. 나오키가 나를 데려 간 곳은, 신바시역과 연결된 낡고 허름한 건물 지하1층, 그곳에 오늘의 무대인 ‘스시도코로 마사’가 있었다.
--- p. 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