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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머리에 꽃을 달아라

네 머리에 꽃을 달아라

김비 | 삼인 | 2011년 10월 14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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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1년 10월 14일
쪽수, 무게, 크기 288쪽 | 403g | 148*210*20mm
ISBN13 9788964360378
ISBN10 8964360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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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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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에게는 모두 손목에, 혹은 발목에 걸려 있는 똑같은 열쇠. 그러나 아이는 지금 열쇠를 잃어버렸다. 단단히 잠긴 아이의 공간 속에는 어쩌면 다른 사람은 모르는 자신만의 소중한 것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거나 사람들을 불러 모을 수도 있겠지만, 여기는 지금 모두가 자신들만의 생각으로 가득 찬 그런 물속.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그런 검은 물속.
안타깝지만 이제 열쇠는 그녀 자신이 찾아야 한다. 찾지 못하게 되더라도, 열쇠를 찾으러 다니는 그녀의 몸짓은 충분히 아름다울 것이다. 결국엔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울음을 터뜨려야 하는 안타까운 마지막이라고 하더라도 그건 처음부터 그녀에게 주어진 시간의 선물.
여기는 그런 검은 물속이다.
나뿐만 아니라, 실은 모두들 그렇게 시작했다.

정체성과 취향은 분명히 다른 쪽으로 뻗은 줄기이다. 인간이라는 뿌리가 있다면, 정체성이라는 것은 가장 중심의 두꺼운 줄기일 것이며, 취향이라는 것은 중심 줄기에서 뻗어나간 무수히 많은 가지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실제로 남자나 여자에게 동성애자와 이성애자가 있듯이, 성전환자인 트랜스젠더들에게도 동성애자와 이성애자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여전히 성전환자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에 논란이 있기 때문에 100퍼센트 완벽한 근거가 될 수는 없지만, 정체성과 취향이 다른 줄기라는 사실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벗어라.” 교사는 말했다. 나는 내 귀를 의심했지만, 공개적으로 내 바지 속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아이들은 까치발을 디디며 내 앞으로 바짝 모여들었다. 교사는 다시 벗으라 말했다. 하지만,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교사의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그의 눈빛은 당장이라도 몽둥이로 후려칠 기세였다. 고개를 저었다. 교사의 욕설이 날아들었다. 그의 목소리가 고함 소리로 바뀌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고개를 젓고 있었다. 내 안의 목소리는 분명히 안 된다고 소리치고 있었다.

그러나 나 자신조차도 육체적 성과 정신적 성을 분리하여 말하는 것 자체도 모순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왜냐하면 육체적 성이 자신의 성,이라고 말하는 것이 절반의 주장인 것처럼, 정신적 성이 자신의 성이다,라고 말하는 것 역시 절반의 주장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모든 정신적인 끌림이나 생각의 흐름은 차치하고서라도, 그 당시 내게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것은 몸의 힘겨움이었다. 발기가 스트레스가 되고, 자위가 환멸이 되는 끔찍한 경험은 아마 보통의 사람들은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일 것이다. …… 그런데도 이를 악물고 나는 남자가 되는 연습을 했다. 모두들 내게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했고, 나는 이 사회가 내게 던진 그 충고를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진찰실에서 쫓겨나듯 밀려나고 말았다. …… 처음부터 나는 나 스스로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어야 했다.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 같은 것은 집어치우고, 미친놈 소리를 듣더라도 여자 옷을 입고 살거나, 온 세상 사람들에게 나는 여자다, 남자가 아니다,라고 소리쳐 외쳤어야 했던 일이었다. …… 몇 번쯤 사람들이 던지는 돌을 맞아주고 변태로 낙인찍힌 다음에야 가능했던 것이 바로 치료이고 수술이었다.

그리고 돈, 그리고 나는 아마 또다시 돈을 생각했을 것이다. 천박하고 세속적인 판단이나 생각이었다고 손가락질을 해도 상관없다. 나는 오빠에게 60만 원을 받아 집에서 나와 생활을 시작해서는, 누구의 금전적 도움도 받지 않고 지금의 직장을 잡고, 집을 얻고, 스스로의 생활을 꾸려나갈 정도로 혹독한 시간을 지내왔던 사람이었다. …… 게다가 나는 그때 수술을 거의 포기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수술을 하느냐, 마느냐, 생식기만으로 성별을 판단하는 보통 사람들의 시선으로는 남자냐, 여자냐, 하는 중대한 결정이 단, 그 십 분 안에 있던 일이었다.

마흔 해가 지났지만, 불행히도 나는 여전히 질문 앞에 서 있다. 열쇠는 어디에 있는 걸까? 그러나 이제 와서 고백하건데, 나는 그저 당신이 당신의 열쇠를 알지 못하듯, 내가 내 열쇠를 알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는 빤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그 질문 앞에 섰던 건지도 모른다.
당신에게도 삶의 시작이 있었을 것이며, 가족이 있었을 것이며, 삶의 전환이 있었을 것이며, 시간의 장난이 있었을 것이며, 위기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불행이나 위기가 갑작스럽게 다가왔던 것처럼, 어디에든 당신에게 다가올 준비를 하고 있는 희망이 있었을 것이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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