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녀의 얼굴, 말투, 행동이 어땠는지 필사적으로 떠올리려고 애썼다. 생각나는 것도 있지만 생각나지 않는 것도 있었다. 생각나지 않는 것이 더 많았다. 이 또한 당연하다. 무엇보다 내가 머리를 잘랐던 그녀가 어디 살았던 누군지 아직도 모른다. 아무리 그래도 굉장한 충격과 함께 뇌리에 새겨졌을 기억이다. 좀 더 자주 떠오를 만한 기억인데.
어쩌면 나는 박정한 인간일까. 아니다. 그냥 지극히 평범한 인간이다. 그렇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내 마음은 언제까지나 과거에 머물지 못한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 마음은 왜 때때로 과거를 향해, 전에 알고 지낸 사람들과 어울리던 그 시점에 멈춰 있으려고 할까. 인간이니까, 역시 인간이니까 그렇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창밖으로 펼쳐진 대도시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봐야 할 것이 너무 많고 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요즘 너무 바빠서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죽은 사람도 포함해.
그래도 그녀는 그나마 낫다. 지금 나는 그녀를 떠올렸다. 그러니 그녀는 그때 그 장소에 있을 수 있다. 그와 비교해 나는 어떤가. 지금 이 밤에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만약 지금 내가 이 사무실을 나가 그 아침의 시부야처럼, 아무도 모르는 거리로 사라져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면……. --- p.12~13
“그런데 저 시체는 언제부터 숲에 있었죠?”
“아, 사망한 이후 말씀인가요?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진 않았지만 대략 4~5년은 됐을 겁니다. 빌딩 옥상 물탱크에 있는 시체가 오랫동안 발견되지 못하는 사건이 가끔 있는데 이 사건은 더 씁쓸해요. 도시의 사각이니까요.”
“지금 사후 4~5년이라고 하셨나요?”
나는 형사를 향해 눈을 깜박였다.
“네, 손상 진행 정도로 보면 그쯤 됩니다.”
내가 왜 눈을 깜박이는지 알 리 없는 형사가 대답했다. 그 옆에서 실장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경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마 나도 비슷한 표정이었을 것이다. 그 정도로 형사가 한 말은 터무니없었다. 실장의 비명도 그 사실을 증명했다.
“이상해요, 그건. 어머, 죄송해요.”
높은 목소리를 억누르듯 실장은 입술에 손을 댔다.
“그래도…… 그럴 리가 없어요.”
“맞습니다.”
옆에 우뚝 선 거대한 실루엣을 바라보며 내가 말을 받았다.
“왜냐하면 이 빌딩이 2년 전에 세워졌거든요.” --- p.23~24
“탐정을 해보지 않을래요?”
“하, 하아?”
테이블에 손을 짚고 허리를 반쯤 띄운 직원 여자아이를 놀란 얼굴로 올려다보았다. 계속 놀란다는 말만 하고 있는 것을 용서해주길 바란다. 그만큼 그녀가 꺼낸 말이 기절초풍할 이야기였으니.
“그게요, 방금 한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시라이시 씨는 회사원에는 적합하지 않은 것 같아요. 늘 딴 세상에 있는 것 같고 한눈만 팔잖아요.”
일단은 성심성의껏 일하고 있는데요, 커피를 스푼으로 저으며 생각했다. 오늘도 업무를 마치고 퇴근길에 그녀와 만나서 이 카페에 왔다. 테이블 아래에는 비즈니스용 가죽 가방. 보라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성실한 회사원이잖아.
“칭찬해줘서 고맙지만.”
나는 말했다.
“내게는 어려운 사건을 해결하는 재능 같은 건 없어.” --- p.89~91
그때 사건이 일어났다. 이 열차는 준특급이다. 대부분 역에 정차하지 않고 오로지 어둠 속을 쭉쭉 달려간다. 첫 번째 역에서 타고 내리는 승객은 거의 없었다. 직원 여자아이가 앞머리를 쓸어 넘기고 창밖으로 적신호가 스쳐 지났을 때 그 일이 일어났다. 자연스럽게 내려뜨리고 있던 내 왼손에 무언가 딱딱한 감촉이 느껴졌다. 어라, 하고 놀라서 고개를 숙였는데 옆에는 아무도 없었고, 내 손에 나이프 한 자루가 쥐어져 있었다. 게다가 그 나이프는 절반까지 선명한 피로 물든 채였다.
차량 후방에서 비명이 들렸다. 다급히 시선을 돌리니 좌석에 앉아 있던 뚱뚱한 중년 남성이 괴로운 듯 몸부림치며 일어서더니 찡그린 얼굴로 가슴에 부여잡았다. 그 손을 떼자 초여름 계절에 잘 어울리는 새하얀 와이셔츠의 거대한 가슴팍에 선연한 핏빛이 번지고 있었다.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은 남성 주변의 승객들이 비명을 지르며 물러섰고, 그중 한 사람이 내 손에 피범벅인 나이프가 들렸다는 사실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비명이 또다시 일더니 이번에는 이쪽에 있는 나를 피해 인파가 이동했다. 쓰러진 남성과 나, 두 곳의 공백 지대를 남기고 승객들은 차량의 양 끝 공간으로 몸을 피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이야, 대단한데. 홍해를 가른 모세가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하고 현실 감각 떨어지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쓸데없는 생각에 오래 빠져 있을 수는 없다. 나는 나이프를 빈 좌석에 내려놓고, 선반에 올려놓은 가죽 가방에서 무슨 일이 생겼을 때를 대비해 가지고 다니는 비닐봉지를 꺼내 그 안에 나이프를 넣었다. 내가 생각해도 이런 것을 왜 들고 다니나 싶었는데 이럴 때 도움이 되는구나 싶어 감탄했다.
그러고 나서 차분한 어조로 말을 꺼냈다.
“다들 아시겠지만 저는 그분을 찌른 범인이 아닙니다. 제가 선 이 자리와 남성분의 자리는 꽤 멀고 저는 그쪽으로 가지도 않았으니까요.”
--- p.96~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