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인물 연구를 하면서 신학적 틀이나 기존 관점을 배제한 채 각 인물들을 있는 그대로 보려고 했습니다.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서 우리와 같은 삶을 산 그들의 모습을 그대로 따라가 보면서 오늘날 우리 믿음의 후배들이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얼마나 깊은 경건을 유지하며 하나님과 동행했는지, 그 가운데서 기쁨, 즐거움, 고민, 두려움, 배신, 낙심, 갈등, 아픔을 어떻게 헤쳐 나갔는지를 주목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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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하는 일마다 잘 풀리는 사람이 있고, 무엇을 하든 꼬이고 안 풀리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일은 나그넷길을 걷는 과정 일 뿐이며, 우리의 본향은 천국이다. 우리에게는 본선이 남아 있기에 예선전은 중요하지 않다. 오는 세상을 생각하면서 주님 만날 준비를 하며 살면 된다. 이것이 타락 후 회복된 신앙인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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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게 지금 누구를 미워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 사람 때문에 잠도 못 자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라. 만약 마음속에서 분노가 끓고 있다면 오늘부터 집중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노력하라. 기도하면서 용기를 내 상대방을 찾아가 만나라. 알량한 자존심을 지키는 것보다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더 나아가, 우리는 부지런히 말씀을 먹고 계속 자라서 영적 어른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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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를 짓는 일거리가 있었기에 노아는 계속 이 일을 하다가 자연스럽게 방주에 들어갔다. 다시 말해, 방주에 들어가기 전부터 방주는 노아에게 있어서 구원에 이르게 하는 방주였다. 우리에게도 동일한 원리가 적용된다. 영적인 일, 자신을 자각시키는 일이 없으면 자기도 모르게 어느새 세상에 떠내려간다. 우리에게는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지속적으로 우리를 각성시킬 영적 보호 기제가 필요하다. 노아처럼 세상을 향해 “여러분은 멸망당할 것입니다”라고 선전포고를 하고(방주를 짓는 일 자체가 세상에 대한 선전포고였다), 자신의 영혼을 무디어지지 않게 할 영적 일거리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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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자신만을 위해 살지 않는다. 이전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예수님을 믿고 난 후 자신만을 위해 살려고 하면 마음이 불편하지 않은가? 아브라함처럼 축복의 통로로 살다가 주님을 만나야 한다. 우리는 복덩어리다. 우리를 통해서 많은 사람이 복을 받고, 또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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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브가는 친절한 여인임이 틀림없었다. 결국 종이 기도 한 여인은 친절하고, 남을 도울 줄 아는 사람, 다시 말해 다음에 해 야 할 일을 아는 ‘센스 있는 여인’이었던 것이다. 상대방이 물을 요구 할 때 그에게만 물을 주고 낙타들에 대해서는 가만히 있다면 센스 없는 여인, 무신경한 여인일 것이다. 그런 사람을 아내로 맞으면 고생 한다. 그 사이에서 태어날 자녀들 역시 고통을 겪는다. 그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보이지 않으니까 말이다. 우리도 이 부분에 주의해야 한다. 미혼일 때 ‘그다음’을 아는 사람 이 되도록 적절한 훈련을 받아야 한다. 무신경이어서는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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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서 남은 40-50년을 살아갈 때 앞으로도 많은 어려움이 예상된다. 그러나 그때마다 위로부터의 도우심으로 해결해야 한다. 애당초 이 땅에 어려움이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원래 하는 일마다 꼬이는 법이다. 그러나 하늘에서 풀어 주신다. 그러므로 세상에서의 어려움 때문에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말라. 어려움은 있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잘 헤쳐 나갈 수 있다고 믿는 것이 바른 신앙이다. 지금 당신의 상황은 어떠한가? 힘들고 곤고한가? 그렇다면 바로 지금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다릴 시간이다. 하나님이 도와주신다. 어떤 문제든 하나님께 기도하라. ‘힘듦’-‘도우심’, 둘은 세트처럼 같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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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빨리 고치는 일은 경험상 쉽지 않다.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면서도 자신의 삶을 좀처럼 바꾸려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디에 기준을 두어야 하는가? 분명하고 확실한 기준이 있다. “오늘 주님이 오셔도 됩니다!”라고 확신 있게 말할 수 있느냐다. 만약 “지금 오시면 안 됩니다”라고 말한다면 현재 하나님께 100% 순종하고 있지 않다는 말이다. 고집 피우고 여러 핑계를 대는 죄성이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다. 우리는 깨달았으면 순종해야 한다는 면에서 이삭을 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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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야곱과 마찬가지로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크고 작은 힘든 문제, 나름의 어려움에 부딪힌다. 그때는 빨리 자신의 한계를 깨달아야 한다. 자기 힘으로 이루려고 끙끙대 보아야 해결되지 않는다. 속상하고 답답한 일이 있는가? 자신의 한계를 빨리 깨달아라. 스스로 머리 써서 풀어 보려고 하지 말고 무릎으로 풀어라. 하나님께 나아가라! 그렇지 않으면 괜히 고생만 사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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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힘든 일, 답답한 일이 많고 하는 일마다 잘 안 풀리는가? 당장은 속상하고 자신감을 잃을 수 있지만, 승부를 좀 더 길게 걸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어라. 왜 중간 과정에서 망한 것처럼 한탄하는가? 때마다 주어지는 상황에 대해 일희일비하지 말라. 그런 태도는 장기적 계획을 진행하고 계신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 서운한 일이다.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면, 능력껏 최선을 다했다면 기다려라. 하나님이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실지 궁금해하라. ‘대체 하나님이 어떻게 하실까?’를 생각하면 더 흥미롭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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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숙한 자는 입을 열어 불평을 하고, 성숙한 자는 입을 열어 기도한다. 이것이 성숙한 자와 미성숙한 자의 차이다. 우리는 힘들고 어려울 때 이스라엘 백성의 방법이 아니라 모세의 방법을 택해야 한다. 우리도 인생길을 가면서 마라와 엘림을 만난다. 이는 인생의 공식이다. 마라를 만날 때는 모세처럼 기도하고, 엘림을 만날 때는 찬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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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실제로 역사하는 힘이다. 기도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나의 현장에 끌어들이는 수단이다. 그래서 기도를 사용하는 사람은 세상을 이길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기도를 사용하는 데 서툰 사람이 있다. 어느 날은 기도를 20분 남짓 하고, 어떤 날은 그마저도 하지 않는다. 며칠 열심히 기도하다가, 아예 하지 않는다. 기도가 들쑥날쑥하다. 아직 기도를 사용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기도는 생을 마칠 때까지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손을 든다는 것, 즉 기도한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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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사랑은 결국 주님의 모습을 보여 준다. 주님이 온 인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신 것처럼 모세도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버리려고 했다. 바울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우리의 기도는 어떠한가? 자신의 문제에 너무 빠져 있지 말고 빨리 벗어나서 주님을 따라야 한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한다. 이 말은 우리는 이미 죽었으니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살지 말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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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하라고 하시면 목숨도 드릴 수 있다’라는 신앙 고백이다. 하나님 백성의 신앙은 이 정도까지 가야 한다. 이 일을 이끌어 간 사람이 바로 여호수아다. 여호수아는 자기 목숨까지 다 맡길 정도로 순종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우리도 그를 본받아야 한다. 대입, 결혼, 취직, 승진 등 앞날의 어떤 중요한 문제도 기꺼이 하나님의 뜻에 맡기고 순종해야 한다. 목숨까지 내놓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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