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에도의 모습이네.”
회색빛 땅.
달리 표현할 말이 없었다.
마을이라고는 하지만 100가구나 될까. 기껏해야 칠팔십 가구 정도 있어 보인다. 오륙백 년 정도 발달이 멈춘 고대의 마을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이곳을 오사카처럼 만들고 싶네.”
가신들은 우는 것 같기도 하고 웃는 것 같기도 한 묘한 표정을 지었다. 무한한 자원이 모여 있고 수십만 명이 살고 있기에 그 당연한 결과로 온갖 최신 기술과 문물이 모인 히데요시 정권의 사실상 수도. 세계에서 으뜸가는 국제 도시. 그런 오사카를 목표로 삼다니,
‘무모하기 짝이 없는 도전이 아닌가.’
모두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제1화 강줄기를 바꾸다」중에서
이나 다다쓰구는 이에야스보다 여덟 살 아래다.
마흔하나. 세상 물정에 밝을 나이인데도 마치 전쟁터에 처음 나온 젊은 병사처럼 목소리를 떨며 말했다.
“에도에는 여러 개의 강이 북쪽에서 흐르고 있는데 이것이 에도를 갯벌로 만드는 원인입니다. 걸어 다니면 질척거리는 소리가 날 정도죠. 이 상황을 어떻게든 개선하지 않으면 문명의 세계는 영원히 오지 않을…….”
“그 이야기는 이미 내가 했네.”
도이 도시카쓰가 비웃자 다다쓰구는 더욱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더듬거렸다.
“저기, 그러니까 제방은 쌓아봐야…….”
“소용이 없다는 말인가?”
“소용이 없는 건 아니지만 작은 제방을 여러 개 쌓아본들 임시 변통에 지나지 않습니다.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배후의 땅으로 눈을 돌려야 합니다.”
“배후의 땅?”
“북쪽으로 펼쳐진 광대한 벌판 말입니다.”
간토평야를 말하는 것이다. 도이가 초조해하며 재촉했다.
“그래서 어떻게 한다는 건가?”
이나 다다쓰구는 이때만큼은 명료한 목소리로,
“강줄기 자체를 바꾸는 겁니다. 에도로 흘러들기 전에.”
누구보다도 거창한 계획을 말했다.
---「제1화 강줄기를 바꾸다」중에서
다과상이 치워지고 그 자리에 나무쟁반이 놓였다. 쇼자부로는 그것을 이에야스 쪽으로 밀었다.
“완성품입니다.”
“으음.”
이에야스는 맨 위에 있는 것을 집어 들더니,
북북,
소리를 내며 종이를 찢었다. 거침없는 손놀림이었다.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듯 오반 열 개가 반짝반짝 빛을 내며 모습을 드러냈다. 열 개가 하나의 띠지에 묶여 있었다.
이에야스의 눈이 더욱 반짝거렸다.
쇼자부로에게는 그렇게 보였는데 그저 오반의 황금빛이 이에야스의 눈에 반사된 것일 뿐일까.
‘그건 아니야.’
쇼자부로는 자부했다. 그 이상의 감흥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지금 이에야스가 뒤집어보기도 하고 이로 깨물어보기도 하는 오반은 시작품이긴 하지만, 현재 교토에서 유통되고 있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각인의 개수와 위치까지 충실하게 재현해냈다. 앞면은 상하좌우 가장자리 네 군데에 오동나무 문장을 새겨 넣었고, 뒷면은 위에서 아래로 일렬로 세 군데에 새겨 넣었다. 게다가 뒷면의 디자인은 각각 다르다. 위에서부터 테두리가 없는 오동나무 문장, 귀갑 테두리의 오동나무 문장, 고토 가문의 수결이 각인되어 있다.
“흐음.”
이에야스는 경쾌한 소리를 내며 오반을 쟁반에 도로 놓고,
“역시.”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쇼자부로가 물었다.
“무슨 뜻인지요”
“내 발탁이 틀리지 않았어. 그 희멀건 고토 초조도 이 년 동안 만들지 못한 것을 네가 수개월 만에 완성시켰구나.”
이에야스는 갑자기 쇼자부로를 똑바로 응시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칭찬할 때는 결코 표정을 흩트리지 않는 것이 그의 방식이다. 쇼자부로가,
“아, 아닙니다.”
엉거주춤하게 일어나 손사래를 쳤다.
“전 그저 초조 님의 일을 이어받았을 뿐입니다. 초조 님이 가미가타에서 직공들을 불러들이고 금광으로 사람을 보내는 등 여러가지 준비를 해주신 덕분에…….”
“겸손은 딱 질색이다.”
이에야스는 구역질이라도 나는 것처럼 말했다. 쇼자부로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야스는 마치 죄인을 심문하는 듯 물었다.
“솔직히 말해봐라, 쇼자부로.”
“네에?”
“이전부터 자부심을 갖고 있지 않았더냐? 나라면 할 수 있으니 시켜만 달라고, 그렇게 생각하며 지내지 않았더냐?”
‘들킨 건가.’
그렇게 생각하자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맞습니다.”
쇼자부로가 고개를 크게 끄덕이자 이에야스는 비로소 눈가에 깊게 주름까지 잡혀가며 활짝 웃었다.
“됐다, 쇼자부로. 자신을 낮추는 사람은 일도 그렇게 하는 법이다. 자부심을 가져라.”
---「제2화 화폐를 주조하다」중에서
그해 봄에도 이에야스는 그곳에 갔다.
신하들에게 언덕 정상에 커다란 양산과 의자를 준비시킨 뒤 주변 경치를 바라보며 명했다.
“이 지역 사람을 데려오너라.”
반각 약 한 시간 후, 우치다 로쿠지로 ?田六次?라는 농민이 끌려왔다. 마흔네다섯쯤 될까. 계절에 맞지 않게 마로 된 홑옷을 입고 있었고 머리도 틀어 올리지 않아 부스스하게 퍼져 있었다. 차림이 꾀죄죄했다.
“무슨 일로 부르셨소?”
로쿠지로가 머리를 조아리며 사투리로 물었다.
“부탁이 있다. 에도 사람들에게 물을 마시게 하고 싶다.”
“무슨 말이오”
“매사냥을 즐기면서 틈틈이 지형을 관찰했었다. 이 지역은 바다에서 꽤 떨어져 있고 숲이 많고 개발된 곳도 별로 없더구나.”
“으음.”
“그런데 발밑을 보면 바닥은 축축하고 모래나 돌도 섞여 있지 않다. 흙도……그것 좀 가져오너라.”
이에야스의 지시에 신하 한 명이 한쪽 무릎을 꿇고 양손을 내밀었다.
양손으로 감싼 나무그릇에는 축축한 흙이 담겨 있다. 흙은 칼에 슨 녹처럼 적갈색이다.
이에야스는 그 흙을 한손으로 꽉 쥐었다.
그러더니 로쿠지로의 눈앞에서 손을 쫙 폈다. 적갈색 흙은 손으로 쥔 형태를 유지한 채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땅바닥에 떨어졌지만 사방으로 흩어지지는 않았다. 상당한 점토질일 것이다. 훗날 ‘화산회토’라 불리는 화산 분출물로 이루어진 토양이다.
“이 흙은 입자가 곱다. 입자가 고와 물을 잘 흡수하니 찰기가 생기는 것이다. 이런 흙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풍부한 지하수가 흐르는 법이다. 네가 그 물이 나오는 곳으로 안내하여라. 나는 그 물을 저 멀리 에도로 끌어갈 생각이다.”
---「제3화 식수를 끌어오다」중에서
그러나 이에야스 밑에서 다이쿠가시라를 맡고 있는 나카이 마사키요는 도면을 받아들더니,
“이거 이상한데요.”
학처럼 마른 얼굴에 당혹해하는 빛이 떠올랐다.
“이런 천수각을 지으라는 명령은 난생 처음입니다.”
“어디가 이상하단 말인가?”
(중략)
“지붕을 다섯 겹으로 하는 건 괜찮습니다. 기와로 지붕을 잇고 꼭대기에 황금 샤치호코 ?, 머리는 호랑이, 몸통은 물고기 모양을 한 상상의 동물 두 마리를 얹는 것도 가능합니다. 천하인에 걸맞은 호화로운 공사가 될 겁니다. 하지만 외벽이 흰색이라니.”
“흰색 벽이 뭐가 문제인가? 그런 성이 있을 것 아닌가?”
“있기는 하지만 다 지방에 있습니다. 아즈치성이나 오사카성처럼 일본의 상징으로 지어진 성곽에서 천수각의 벽 색깔은 오히려…….”
“검정색이 통례지.”
“맞습니다. 오사카성이 그 전형입니다. 광택이 나는 흑칠을 한 판벽 여기저기에 국화 무늬, 오동나무 무늬, 박공 문양을 새겨 넣고서 금박을 입혔죠. 그 검정색과 금색의 엄숙한 조합은 마치 천수각이 거대한 갑옷과 투구로 무장한 것 같아서 적군과 아군 모두에게 두려움을 느끼게 합니다. 천하인의 천수각은 그래야 합니다.”
“솔직히 나도 같은 생각이네. 하지만 그 건에 대해서는 유독 강한 집착을 보이셨네. 히데타다 님의 의견을 들으시고 난 뒤로.”
“우에사마의 의견이요? 왜 그렇게까지 집착하시는지…….”
“나한테 말하지 말게나.”
(중략)
“그리고 현실적인 문제로 말입니다. 이렇게 넓은 벽면을 빈틈없이 칠할 수 있을 만한 회반죽은 간토지방 어디에도 없습니다. 회반죽을 만들려면 반드시 석회가 있어야 하는데 석회는 석회석 광산에서만 나옵니다. 인공적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찾아보게. 흰색은 안 된다고 더는 말씀드릴 수가 없네. 오고쇼님의 뜻이 아닌가. 찾아보게, 반드시 찾아내야 하네.”
광산을 찾는 것은 개나 고양이를 찾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래도 마사키요는,
“해보겠습니다.”
시원스럽게 대답한 뒤 당당하게 인사를 하고 물러났다.
---「제5화 천수각을 올리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