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전반부의 임무는 자기 인생을 위하여 적절한 ‘컨테이너’를 만드는 것이고 “무엇이 나를 값진 존재로 만드는가?” “어떻게 나 자신을 지원할 것인가?” “누가 나와 함께 갈 것인가?”라는 기본적인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인생 후반부의 임무는 간단하다. 그 컨테이너에 담아서 운반하기로 되어 있는 내용물을 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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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우리는 언제고 생의 후반부로 접어들어야 한다. 그러나 기꺼이 들어갈 수 있으려면 첫 번째 임무를, 최소한 부분적으로라도, 잘 마쳤어야 한다. 이전 단계를 잘 살고 잘 마쳤을 때 우리는 곧장 앞으로 나아갈 수 있고, 기꺼이 나아가게 될 것이다. 때가 되면 우리 모두 은총의 고요한 움직임에 의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마련이다. 그러면 지난날의 낡은 인생 목록들이 별것 아니었음을 스스로 보여주거나 저절로 떨어져나갈 것이다. 우리 모두가 할 수 있는 일은 주어진 현재를 사는 것이요, 실은 그게 전부다. 우리는 인생의 강물을 더 빨리 흐르도록 밀거나 당길 수 없다. 오직 삶의 모든 단계들에서 최선을 다하여 살아갈 따름이다. 그것 말고 다른 무엇을 할 필요가 더 이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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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나중에 인생의 내용들을 담기 위하여 튼튼한 컨테이너가 필요하다. 역설적이게도 당신은 당신의 에고를 버리기 위하여 강한 에고를 갖추어야 한다. 규범을 벗어던지기 위하여 엄격한 규범을 지켜야 한다. 당신은 얼마쯤 외부의 가치들에 저항함으로써 비로소 그 가치들을 내면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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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은 인생이 비극임을 용납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여 우리로 하여금 살아남을 수 있게 해주었고, 이 비극에서조차 성숙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것이 위대한 전환이다! 모든 것이 우리가 과연 내려감(down)을 올라감(up)으로 볼 것인지 또는 칼 융이 말하는 “걸려 넘어진 곳에서 순금을 발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것인지 여부에 달려 있다. 레이디 줄리안은 그것을 더욱 시적인 언어로 이렇게 표현한다. “먼저 추락이 있다. 그 뒤에 추락으로부터의 회복이 있다. 둘 다 하나님의 자비로운 은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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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말을 해서 미안하지만, 넘어지고 추락해야 한다. 지금 당신이 여기에서 하고 있듯이 추락에 대한 글을 읽는 것 가지고는 안 된다. 얼마동안은 실제로 운전석에서 쫓겨나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진짜 안내인’(Real Guide)한테 자기를 내어맡기는 법을 끝내 배우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필수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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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더 크고 진짜인 집을 찾기 위하여 집을 떠나야만 한다. “그것 없어도 좋으니 집을 떠나지 말라”(don’t leave home without it)는 우리의 보통 정서 대신, “그것을 찾기 위하여 집을 떠나라”(leave home to find it!)가 영성의 위대한 모토인 것이다. 그리고 물론 여기서 떠나라는 것은 육신의 가족뿐만이 아니다. 집안과 가족들이 제공하는 모든 안전장치, 가치관, 착각, 편견, 왜소함 그리고 상처들 또한 우리가 등지고 떠나야 하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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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본디 하나인 두 개의 큰 신비 사이에서 잠시 빛나는 멈춤(luminous pause)이다. 만일 우리가 어느 것의 깊이 속으로 들어가고자 한다면 먼저 본질이고 진실인 무엇을 노크하는 것부터 시작할 일이다. ‘믿음’이라는 출발 장치를 떠나 실질적인 ‘앎’으로 옮겨가야 한다.
--- p. 139
인생은 천국을 향해 가는 수련이다. 우리는 일찍이 합일을 선택하였고, 그래서 지금 이 수련의 길을 가고 있다. 여기(here)와 나중(later)이 합일된 상태, 거기가 천국이다. 지금이 이렇듯이, 그때도 이렇다. 누구도 자기가 원치 않으면 천국에 있을 수 없고, 누구나 합일 속에서 살면 곧 천국에 있는 것이다. 이웃과 사귀는 친교의 방이 충분히 넓어서 더 크게 증축할 필요가 없는 사람, 그 사람이 지금 천국에 있는 사람이다. 이웃을 받아들이는 방이 큰 그만큼, 당신의 천국도 클 것이다. --- p. 153
왜 사람들이 전반부 인생을 사는 동안 그와 같은 관제탑 안에 머물러 있는 건지 그 이유를 알겠다. 모든 부분들을 포함하는 전체를 아직 충분히 경험 못했기 때문이다. 전반부 인생의 ‘순진함’에는 더 깊고 검정(檢定)된 행복이 당신 앞에 있음을 알 때까지 놓아버릴 수 없는 행복과 흥분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아직 전반부 인생인 당신은 그걸 모른다! 그래서 후 반부 인생이 당신한테 그걸 말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 p. 165
후반부 인생에게는 우주가 추는 총체적 춤의 한 부분이 되는 것만으로 충분히 좋다. 춤마당에서 누구보다 돋보이거나 더 잘 추는 모습을 보이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이제 그의 인생의 의미는 자기를 돋보이는 데 있지 않고 함께 참여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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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빛’으로 가까이 갈수록 그만큼 당신의 그늘은 짙어질 것이다.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참으로 거룩한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나 겸손한 사람들이다. ‘그늘’을 ‘죄’와 혼동하지만 않으면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훨씬 더 잘 섬길 수 있을 것이다. 죄와 그늘은 같은 것이 아니다. 우리가 죄를 피하려고 노력하는 건 좋은데, 그래서 자신의 그늘을 직면하려 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그 결과 자기도 모르게 더 많은 죄를 짓는 것이다.
--- p. 191
옹근 사람(whole people)은 가는 곳마다에서 옹근 전체(wholeness)를 보고 옹근 전체를 만들어낸다. 분열된 사람은 모든 사람과 모든 사물에서 분열을 보고 분열을 만들어낸다. 후반부 인생을 산다는 것은 나누어진 조각들이 아니라 옹근 전체 안에서 모든 것을 본다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저분한 조각들 안으로 ‘떨어져 내림’으로써 옹근 전체에 가서 닿게 되어 있다.
--- p. 205
이것만은 기억하자. 당신 말고는 아무도 당신을 당신의 후반부 인생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할 수 없다. 당신 자신의 용기, 인내심 그리고 상상력의 결핍 말고는 그 무엇도 당신의 후반부 인생을 막지 못한다. 당신의 후반부 인생은, 그리로 들어가든지 피하든지, 온전히 당신에게 달린 것이다. 이 일이 있기 위해서는 전반부 인생에서 뭔가를 잃고 몰락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확신이다.
--- p. 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