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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의 문화

성장의 문화

: 현대 경제의 지적 기원

[ 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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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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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8년 02월 26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648쪽 | 988g | 148*217*35mm
ISBN13 9788962631715
ISBN10 896263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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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3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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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중반 중국은 결코 후진적인 나라가 아니었다. 상업이 활발했고 화폐 경제는 발달했으며 교육 수준도 높았다. 중국의 관료 집단은 훌륭한 교육을 받은 전문가였고 1680년 이후 맬서스의 덫을 용케 피하면서 상당한 수준으로 인구 성장을 이끌었다. 좋은 제도가 스미스적 경제 성장을 이끈다는 점을 고려하면, 훌륭한 제도와 정체된 경제가 동시에 존재한 중국의 사례는 분명 수수께끼다. 중국의 제도는 유럽의 제도와 분명 달랐지만 그 어떤 기준으로 봐도 결코 열위에 있지는 않았다. 중국의 중앙 정부는 능력 중심의 과거 시험으로 뽑은 관료에 의해 운영되었으며, 토지 재산권을 엄격하게 집행하고 법과 질서를 체계적으로 유지했다.
하지만 여행가와 선교사들이 남긴 글 말고는 중국을 많이 접하지 못한 몇몇 유럽 사상가들은 산업혁명이 일어나기까지 어떤 차이점이 있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한 가지 예로 데이비드 흄은 자신의 『과학과 기술의 등장(The Rise of Arts and Sciences)』에서 유럽의 다양성과 다원주의를 중국의 동질성 및 통일성과 대조하면서 두 지역의 차이점을 언급했다. 그에 따르면 정치적 분열은 유럽에서 유용한 지식이 확산할 수 있는 주된 이유였다. 물론 그는 과거에 뛰어난 성과를 남긴 중국의 과학과 기술 그리고 세련된 문화를 인정했다. 하지만 중국의 과학 발전 속도는 유럽에 비해 현저하게 느려졌다고 꼬집었다. 그 이유는 명백했다. 중국에서 위대한 스승의 권위는 제국의 방방곡곡에 쉽게 퍼졌고 “그 누구도 대세에 감히 저항할 용기를 갖지 못했으며 후세들은 조상이 보편적으로 물려준 것을 반박할 만큼 용감하지도 않았기”〔Hume, (1742) 1985, p. 122〕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많은 학자들 사이에서 공감을 얻었다. 첸원위안〔錢文源(Wen-yuan Qian), 1985, pp. 25, 114〕은 통일된 중국은 정치적으로 그리고 지적으로 “편협한” 반면 유럽의 다원주의는 결과적으로 “현대 과학의 등장”에 더 유리한 정치 구조와 이념의 기틀을 마련한 것으로 여겼다. 정치적 분열로 말미암아 유럽에서는 “상호 억제적인” 정치 집단이 나타나 통념에 순응하지 않는 사상가들에게 상당한 자유를 주었다는 것이다. 데이비드 흄이 파악한 차이점은 매우 중요했다. 요컨대 중국의 지적 활동은 유럽보다 중앙 정부에 의해 더 많이 통제 및 확산되었고, 결과적으로 중국의 아이디어 시장은 유럽에 비해 다른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중국은 도대체 얼마나 뒤떨어져 있었던 것일까? 셰이와 켈러(Carol Shiue and Wolfgang Keller, 2007)의 혁신적인 연구에 따르면 배분의 효율 측면에서 중국은 1750년까지도 유럽에 크게 뒤지지 않았다. 그들은 (가격 동조화로 측정한) 시장 통합을 기준으로 하면 비록 영국에 뒤처졌지만 영국을 제외한 다른 유럽 국가와는 동등했다고 주장하며, 따라서 배분의 효율성(스미스식 성장)을 개선하는 것만으로 기술 진보가 가속화한다는 주장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 대신 두 사람의 연구 결과는 (수송망의 개선을 포함한) 산업화와 (내부 무역 장벽의 철폐나 완화 또는 더 자유로운 국제 무역을 위한 움직임을 포함한) 제도적 변화가 19세기 전반 유럽 시장을 한 차원 높은 수준으로 통합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많은 자료에 따르면 무역은 기술 발전을 촉진하지 못했지만 기술 발전과 제도적 변화는 한층 효율적인 시장을 이끌었다.
더욱이 청나라에는 특히 선진화한 자금 조달과 관리 기법을 도입한 광산업을 중심으로 ‘자본주의의 새싹’이 발아했다. 임금 노동자를 고용한 18세기 중국의 대형 섬유 작업장과 제지 공장은 가내수공업을 위협하기 시작했으며, 이는 유럽에서 일어나고 있던 현상과 비슷했다(Rowe, 2009, pp. 125-126). 많은 학자들이 비록 유럽과 계약 집행 및 분쟁 처리에 대한 제도가 달랐지만 그럼에도 중국은 잘 기능하는 시장 경제를 만들기에 충분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더욱이 중국 행정부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재산권을 집행하는 데 많은 역할을 했다. 중국의 지방 관료는 공식적인 민법이 없는 상황에서도 토지 소유권이나 계약 같은 재산권 분쟁을 해결했다(Rowe, 2009, p. 58). 송나라 시대의 중국에서도 수공업자 길드〔行會〕가 존재했으나, 19세기까지 유럽에서 길드가 그랬던 것처럼 조합에 가입하지 않은 다른 사람이 진입하지 못하도록 배제함으로써 기존 상인들이 지대를 추구하는 카르텔을 형성했다는 근거는 없다(Pomeranz, 2013, pp. 106-108). ‘좋은’ 제도를 잘 기능하는 토대로서 시장이 원활하게 운영되도록 지원한다는 전통적 의미로 받아들일 때, 중국과 가장 발전한 유럽의 제도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아마도 가장 눈에 띄는 차이는 중국에서는 저작권을 포함해 그 어떤 유형의 지적 재산권도 없었다는 점일 것이다(Alford, 1995). 그러나 지적 재산권의 부재는 더 깊은 문화적 차이의 결과이자 하나의 징후이며, 그 자체로 유럽과 중국 간 유용한 지식의 발전이 갈수록 벌어지는 격차를 설명하는 부수적인 요소다.--- p.398~401

청나라 시대의 중국은 인적 자본을 과잉 생산했다는 주장도 있다. 전통적으로 중국의 교육은 공직으로 진출하는 것을 목표로 설계되었지만 1800년에는 140만 명의 교육받은 사람이 2만 개의 공직을 위해 경쟁할 만큼 인재의 등용문은 좁았다. 심지어 한림원(翰林院)에 소속된 최고 학자들도 실업을 면치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윌리엄 로(William Rowe)는 중국 황실에서 공직자에 대한 수요가 감소한 것과 공직을 부패한 방식으로 나눠준 것이 과오였다고 말했으나(Rowe, 2009, p. 152), 그보다 교육을 전적으로 공직자 배출 목적으로만 설계한 것이 더 근본적인 문제였다. 유럽과 달리 중국에서는 유용한 지식을 가르치고 젊은이를 상업이나 산업에 뛰어들 수 있도록 준비시켜주는 교육 기관이 없었다. 느리기는 했지만 18세기 유럽의 교육은 이런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반면 중국을 포함한 다른 문화권은 크게 뒤처졌다.
유럽이 왜 성공적인 계몽주의를 경험했으며, 아시아와의 격차를 2세기 정도로 벌려놓은 산업혁명을 전후로 경제 근대화를 이룩한 배경은 어떤 문화적 차이점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리프와 타벨리니(Greif and Tabellini, 2014)는 중국인의 협력을 조직한 가장 기본적인 사회적 단위는 대가족이나 씨족이었던 반면 유럽은 ‘동업 조합(corporation)’이라는 혈연관계가 아닌 자발적 집단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저자들은 이런 집단을 더 큰 구속력을 강요한 일반적 도덕과 대부분 더 작은 친족 사이에서만 유효한 협력 규범 및 관습적인 ‘편협한 도덕’과 결부시켰다. 2장에서 주장한 것처럼 일반적 도덕은 지적 혁신을 창출하기 위한 개인적 그리고 분산적 노력을 유도하는 데 더 유리하다. 실제로 일반적 도덕이라는 개념은 유럽의 편지 공화국이 어떻게 운영되었는지 이해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다. 편지 공화국의 회원들은 느슨한 연결 고리로 구성된 이방인의 네트워크에서 일해야만 했다. 하지만 결과를 조작하지 않고, 출처를 분명히 밝히고, 각종 편지에 답장하는 일반적 도덕의 규칙을 적용했음을 관찰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과 서양의 차이를 과장해서는 안 된다. 중국에서도 서로 모르는 사람끼리 편지를 주고받고 생각과 정보를 교환한 아이디어 시장은 존재했다. 역사적 근거를 보면 당?송 시절 중국의 유용한 지식은 대부분 공직자에 의해 확산되었음을 알 수 있다(Mokyr, 1990, pp. 209-238). 공직자들이 만든 유용한 지식이 결코 가치 없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이렇게 만들어지고 확산된 유용한 지식은 정치적 부침 때문에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실제로 중국에서 보수적인 정부의 등장은 민간 부문이 이끄는 사회보다 과학 기술의 발전이 급격하게 느려졌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리프-타벨리니 이론은 유럽과 중국의 분기가 깊은 문화적 및 제도적 차이에서 기인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유교나 유대교-기독교의 형이상학적 차이에서 기인한 게 아니라 기본적인 사회 구조에 의한 것이었다. 그들의 이론에 따르면 “내생적 사회 제도와 문화적 특성은 상호 보강 관계에 있었다”(Greif and Tabellini, 2014, p. 21). 중국 경제를 담당한 조직으로서 씨족의 중요한 역할이 송나라 시대에 만개한 이후 기술 발전의 추진력이 둔화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적 엘리트의 선택에 의한 문화적 진화였다. 이런 선택에 의한 문화적 진화는 제도적 구조에 의해 만들어지며, 그럼으로써 다시 이런 제도를 만들어내는 데 기여한다. 여기서 우리가 다뤄야 할 질문은 “왜 중국은 실패했는가?”(중국은 실패하지 않았다)나 “왜 중국은 더 많은 기술 발전을 이뤄내지 못했는가?”(중국은 많은 기술 발전을 이뤄냈다)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근대 초기(1500∼1700)로 알려진 시기에 유럽과 중국은 현대까지 지속된 기술과 경제의 커다란 격차가 생길 만큼 왜 달랐는가이다. 다시 말하지만, 중국이 잘못했다기보다 유럽에서만 계몽주의로 이어진 지적 변화라는 일련의 특이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유럽 계몽주의의 독특한 힘은 유럽뿐 아니라 지구상 모든 구석구석에 영향을 끼쳤다. 제임스 블로트(James Blaut, 1993)나 잭 구디(Jack Goody, 2010) 같은 수정주의 학자들이 아무리 강하게 주장하더라도, 유럽과 중국의 이런 격차를 강조하는 것은 단순히 유럽중심주의라는 주장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
이런 역사적 사실과 관련해 두 가지 극단적 입장이 있다. 하나는 고대로부터 뿌리 깊은 유럽예외주의와 우월주의로, 비유럽권 사회를 ‘원시적’이고 ‘낙후된’ 사회로 바라본다. 수정주의적인 캘리포니아학파의 역사학자들은 이런 해석을 비판하면서 극단적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들에 따르면 동양과 서양 사이엔 진정한 차이가 없고, 대분기는 한쪽이 임시적으로 다른 쪽보다 우위에 서는 (교차하는 역사의) 균형추일 뿐이다. 이 두 극단 사이엔 세 번째 해석이 들어설 여지가 있다. 세 번째 해석에 따르면 근대 초기 유럽의 어느 순간 문화적 환경이 크게 바뀌기 시작해 다양한 문화적 사업가와 그들의 추종자가 엘리트 집단의 마음가짐과 신념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이런 변화를 충분하게 수용하는 제도가 들어서는 환경이 조성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변화는 혁신과 기술 발전에 특히 우호적이었으며, 사회에서 유용한 지식의 운용 방식이 운명적으로 변화하는 토대를 마련했다. 결과적으로 이와 같은 변화는 1800년 이전 유럽의 생활수준이 성장하는 것을 가로막은 장애물을 무너뜨렸다. 그리고 2세기 동안 유럽의 글로벌 지배로 이어졌다.
비유럽권 사회는 서양 문화에 노출되기 시작하면서 그 전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지각 변동을 겪어야만 했다. 물론 서양의 영향력은 저항을 받았고 지역의 특색에 맞게 수정 및 혼합되며 변화했다. 그러면서 지역별로 서로 다른 결과물을 낳았다. 서양과 동양의 교류는 양방향으로 흘렀다. 일찍이 서양은 화약과 도자기부터 우산과 천연두 접종법까지 동양의 많은 기술과 발명품을 도입했다. 현대에 들어서도 서양은 침술과 요리 같은 동양의 문화와 기술에 여전히 거리감을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서양은 중국의 유용한 지적 토대인 철학과 제도에는 관심이 없었다. 자연을 탐구하고 연구해 활용 가능한 자연 규칙을 찾아내고 물리적 세계를 변화시켜 물질적 부를 개선한다는 서양의 적극적 베이컨주의라는 철학 브랜드가 아직까지도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
--- p.406~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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