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의 저자는 인생의 의미를 찾는 것이 바람을 좇는 것과 같음을 발견했다. 이 절망적인 이미지가 전도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전도서는 마치 추리소설처럼 결말에 도달하고 해답을 얻을 때가지 계속해서 읽어가는 부류의 책이 아니다. 오히려 그 안에서 인생의 문제들과 씨름해가는 책이다. 그렇게 몸부림치다 보면 모든 답을 갖지 않을 때조차 그 질문을 가진 채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운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전(全) 생애가 작동되는 방식이다. 그것은 우리가 최후에 얻는 것에 관한 것일 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사람됨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즉 제자도란 여행의 종착지가 아니라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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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섹스, 권력, 성취, 그 어떤 것도 우리를 만족시키지 못한다. 오직 하나님만이 하신다. 이 말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 해 아래에서 인생의 덧없음을 느끼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반드시 느낀다. 하지만 전도서는 우리에게 인생의 기쁨과 의미를 가져다주는 ‘해 위’의 관점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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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악되고 이기적인 욕망에 탐닉할 기회는 우리에게도 솔로몬만큼이나 많다. 어쩌면 그가 우리를 부러워할지도 모른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그보다 더 좋은 집에서 더 좋은 가구와 에어컨을 갖추고 산다. 더 큰 뷔페에서 식사하고 훨씬 더 다양한 음악을 듣는다. 섹스에 관해서도 끝없는 가상 파트너들을 다운로드할 수 있다. 이른바 상상 속의 규방이다. 모든 것이 우리에게 제공된다. 어떤 것도 이용 불가능한 게 없다. 그래서 묻겠다. 우리는 만족하는가? 아니면 여전히 더 많이 원하는가? 당연히 만족하지 않는다. 데이비드 허버드(David Hubbard)가 지혜롭게 관찰하듯이, 쾌락의 홍보기관은 제조부서보다 훨씬 더 유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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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임재가 모든 차이를 만든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도, 어떤 것에서도 참된 기쁨을 발견할 수 없다. 그러므로 만약 인생에서 즐거움을 발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면 하나님이 당신의 상황 그 중심에 계시지 않는 게 틀림없다. 만약 실망의 깊이가 깊다면 다음이 그 이유일 수 있다. 우리는 즐거운 것들을 취해 왔고 그것을 궁극적인 것으로 삼아 왔던 것이다. 사실 그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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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예수님은 교회의 사역을 통해 일하고 계신다(요 9:4; 행 1:1; 엡 4:12 참조).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을 찬송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위해 기도함으로써 이 선한 일에 동참한다. 또한 일상의 임무를 수행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방식으로도 이 선한 일에 동참한다. 이 모두가 하나님 나라의 사역이다. 마르틴 루터가 말했듯이 “교회뿐 아니라 가정과 부엌과 지하실과 작업장과 논밭이, 즉 온 세상이 하나님을 향한 섬김으로 가득하다(해야 한다).”
--- p.86
하나님은 우리의 매일 매 순간을 다스리시고, 그분이 하시는 일에는 뚜렷한 질서정연함이 있다. 그분의 통치는 연대기를 갖는다. 하나님의 경륜에는 “만사가 다 때가 있다.” 만사가 일어나기에 알맞은 경우와 적절한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즉 입학할 때가 있고 졸업할 때가 있다. 취직할 때가 있고 은퇴할 때가 있다. 머물 때가 있고 집에 갈 때가 있다. 이와 같은 관점은 숙명론과 거리가 멀다. 전도자는 발생하는 일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요점은 오히려 발생하는 일에 ‘적합함’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꼭 맞는 때에 만사를 행하신다.
--- p.94
“의인과 악인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니 이는 모든 소망하는 일과 모든 행사에 때가 있음이라”(전 3:17). 여기서 우리는 전도자가 자신의 설교를 자기 마음속에 적용하는 것을 본다. 그는 자기가 예전에 가르쳤던 영적 원리를 불의라는 이슈에 적용한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다”(전 3:1)면 틀림없이 정의를 위한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학대에 대해 그저 분노하고 비통해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바로잡으실 것을 신뢰할 수 있다. 이 말은 결코 우리가 정의를 추구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사회에서의 위치(특권적 지위, 영향력 있는 자리, 하나님께 받은 권위)에 따라 교회 안과 더 넓은 세상에서 학대에 대항하여 싸우는 것이 우리의 의무다. 물론 우리가 최선의 노력을 한다 해도 모든 학대에 종말을 가져오지는 못할 것이다. 여전히 여성과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폭력이 존재할 것이고, 비즈니스, 정부, 심지어 법 집행의 부패 구조도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해결할 권력도, 권위도, 지혜도 없는 이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 반드시 정의를 이루실 것이다.
--- p.111
우리를 불만족하게 만드는 것은 단지 돈에 대한 사랑만이 아니다. 학문적 성공, 운동 경기의 승리, 음악적 성취, 성적 쾌락 등 인생의 많은 좋은 것들이 우리로 하여금 코헬렛이 “바람을 잡는 것”(전 6:9)이라고 부른 것을 소유하라고 유혹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늘 더 많은 것을 갈망하기보다 더 적은 것으로도 행복해야 한다. 우리는 이미 예수님으로 만족하기 때문이다.
--- p.129
인생의 무언가가 구부러진 것 같을 때, 우리는 보통 재빨리 하나님께 가서 하나님이 그것을 어떻게 곧게 하셔야 하는지 말한다. 하지만 오히려 하나님께서 우리를 곧게 하시도록 해야 한다! 우리의 고난을 다스리시는 그분의 주권 안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영적 유익을 위해 일하신다. 따라서 우리는 그분을 신뢰하도록 부름받는다. 심지어 구부러져 보이는 것들에 대해서도 그렇다.
--- p.155
우리 구주께서는 우리가 누구인지 기억하신다. 영원 전부터 우리에 관해 생각해 오셨고 지금도 생각하신다. 십자가로 가셨을 때, 무덤에서 일어나셨을 때, 영광에 오르셨을 때, 그분은 우리를 마음에 두셨다. 우리 인생에서 날마다 우리를 돌아보셨다. 뿐만 아니라 그분 나라에 임하실 때 우리를 기억하겠다고 약속하셨다. 우리의 발자취를 결코 놓치지 않으실 것이며 우리를 일으켜 영생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 p.174
지금 당장 하나님 앞에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든 그분을 피하고 싶어 하든, 결국에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이 진리다. 그날에 하나님은 모든 은밀한 죄를 드러내시고, 모든 숨겨진 선행을 밝히실 것이다. 그것이 선하든 악하든 모든 행위를 심판대 앞에 가져오실 것이다. 무슨 평범한 생각이나 무익한 말이든(마 12:36 참조) 그러하다.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고전 4:5).
--- p.192
전도서는 심판에 대한 경고로 끝난다. 은혜에 대한 약속이 아니다. 그러나 이 경고는 여전히 복음을 가리킨다. 만약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심판하신다면 그 위대한 날에 우리가 의롭다는 선고를 받으리라고 확신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을 확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 인생을 예수 그리스도께 의탁하는 것이다. 오직 그분만이 하나님의 공의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는 자비를 가지신다.
--- p.1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