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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재의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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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3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66쪽 | 90g | 105*182*15mm
ISBN13 9788972758754
ISBN10 8972758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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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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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감자를 보고 있는 것. 작고 둥글고 움푹팬 자리마다 검은 싹이 나는 것. 뭉툭하게 잘린 발처럼 썩어가는 것. 당신은 물끄러미 감자를 보는 것. 고아처럼 희고 딱딱한 감자. 꿈속처럼 몽롱한 감자. 한없이 감자를 보는 것. 당신은 멈추지 않는 것. 그러다 문득 목이 메는 것. 햇빛이 손끝에서 식어가는 것. 식당의 내부가 완전히 어두워지는 것. 당신은 더 이상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닌 것.
---「감자를 보는 것」중에서


잿빛, 생각하면 재의 마을이 떠올라요. 그 마을엔 잿빛 여자들이 살았어요. 여자들은 커다란 드럼통에 시멘트를 반죽해서 벽돌을 만들었어요. 깨진 창문에 탁자에 낡은 접시에 잿빛이 내려앉고 하얀 팔꿈치에도 눈꺼풀에도 수북이 쌓였어요. 밤이나 낮이나 아기들은 재를 뱉어내며 울었어요. 잿빛에 대해서 생각하면, 그건 참 멀군요. 잿빛은 구름보다는 바닥에 가깝기 때문일까요? 그러니 누가 알겠어요? 사라진 재의 아이를. 친구들아, 나는 자라서 재
의 아이가 되었단다, 벽돌 속에서 소리쳤지만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했어요. 나는 거대한 반죽통 속에서 천천히 잿빛이 되었어요.
---「잿빛」중에서


나는 소년을 보았어. 그 애가 유리문을 통과하려고 애쓰는 것을. 그건 마치 막 날개를 펴려고 애쓰는 나비와 같았지. 하지만 나비라니? 지하도의 매캐한 먼지 속에서 사람들이 매일 그 애를 밟고 지나갔어. 사람들이 지나가면 납작해진 아이는 다시 툭툭 털고 일어났지. 노란 작업복은 그 애의 교복이야. 그 애는 작은 가방에 은빛 숟가락을 넣어가지고 다녔지. 그건 나비의 자존심 같은 것이라고. 그럴 때 그 애의 얼굴에 휙 지나가는 서늘한 웃음 같은 것. 사실 그건 소년의 할머니가 물려준 것이었지. 나비야, 어린 나비야, 할머니는 소년을 그렇게 불렀을지도. 지하도의 벤치는 꿈을 꾸기 좋은 곳. 그 애가 벤치에 앉아서 신문지 쪼가리를 더듬더듬 읽을 때, 그 애의 목덜미에 하얀 먼지가 내려앉는 게 보였어. 만약 내게 손이 있다면 그 애의 옷깃을 잡아당겼을 거야. 마지막에 그 애는 비명을 질렀지만, 그건 어떤 음악 소리보다 작았거나 너무 컸지. 너무 작거나 너무 큰 소리가 사람들의 귀를 촛농처럼 꽉 틀어막았어. 아아아, 유리문을 통과한 그 애는 정말 나비가 된 걸까. 검은 파도처럼 통로를 떠밀려 가던 사람들 멍하게 소년이 날아가는 것을 보고 있어.
---「소년」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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