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본문도 현실을 떠나 역사와 무관한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본문은 분명 어디선가 왔으며, 특정한 사람이 특정한 시간에 특정한 언어로 특정한 독자에게 쓴 것이다. 시간, 장소, 언어, 이 모두가 하나의 본문이 어떻게 기능하는지를 알려 주는 실마리를 준다. 따라서 고대 근동을 처음 공부하는 학생에게는 이 모든 것이 갖는 의의를 알려줄 안내가 필요하다. 언어는 그것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결정하고 시간과 장소는 문화와 본문을 생산한 사람을 밝히 비춰준다.
어떤 본문의 해석을 위한 역사와 문화적 배경, 문학적 맥락, 본문 형태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많은 고대 근동 문학 선집에서 이런 기본적인 사실을 파악하는 것마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놀랍기만 하다. 본서는 대체로 이런 자료를 문헌의 초판본에서 모아야 했다.
어떤 문헌이 생산되었다고 여겨지는 역사적 상황이나 실제로 사본이 존재했던 시기 사이에 시간상으로 큰 간격이 있는 경우도 간혹 있다. 여러 성경 외적 본문뿐만 아니라 본서에 나오는 거의 모든 성경 구절이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와 같은 사실이 해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개별적으로 다룰 것이다.
성경 외적 문헌의 실제 형태는 구체적으로 서술할 것이고, 가능하다면 크기도 제시할 것이다. 본문의 형태는 그것이 어떤 기능을 하도록 의도되었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준다. 기념비(10장), 벽(19장), 조각상(11, 27장)에 새겨진 본문은 최소한 서고에 저장된 평판이나 두루마리에 기록된 본문과는 전혀 다른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어떤 본문이 대규모 공공 기념비에 새겨졌다면, 그것을 읽을 수 없는 사람(고대 근동 역사에서 대부분의 사람이 문맹이었다)은 공중 낭독이나 구전에 기초해서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게 되었을 것이다.
본문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독자에게 보여 주기 위해 사진 몇 가지를 제시했다. 사실 많은 고대 근동 본문이 그림과 함께 나온다. 하지만 본서에서 그 그림에 대한 연구는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 pp. 53-54
이 본문이 어떤 이슈와 이미지를 중심으로 일종의 대화를 이룬다는 점을 고려할 때, 독자는 이 본문 사이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팔레스타인은 간혹 “거룩한 다리”로 불렸다. 이 좁고 비옥한 땅은 서쪽으로는 바다를 접하고 동쪽으로는 사막을 접하며, 다시 주요 정치적 세력들 사이에 있었으므로, 무역, 여행, 문화를 위한 교차점이 됐다. 이것은 고고학적으로 발굴된 유물이나 문헌을 보아도 명백하다.
창세기 1장은 위에서 제시한 신화 같은 “이교의” 창조 관념에 대한 직접적인 반응인가?
창세기기 최소한 바빌론 신학에 반응한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결론이다. P의 창조 기사는 바빌론 포로의 맥락에서 신학적인 자기 정의를 위한 유다의 노력이었을 것이라고 여기는 것은 일리가 있다. 하지만, 바빌론의 여호와 예배자가 에누마 엘리쉬의 사본을 가지고 앉아 있을 호사를 누렸을 것 같지는 않다(그가 읽을 수 있다면).
오히려 신학적인 개념이 그리 형식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유통되고 있어서,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P창조 기사가 구체적인 문헌에 일일이 답변한 것이 아니라, 저자가 속한 제국이라는 상황이라는 문화적 압력에 논쟁적으로 반응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구체적인 저작에 대한 해설이 아니다.
다시 말하자면, 성경 저자만 동시에 이전 문헌의 요소를 통합하고 반응한 것은 아니었다. 본장에 나오는 고대 근동 문헌들도 그들의 문화 선구자들의 요소를 공유한 방식의 사례는 크게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에누마 엘리쉬는 특히 안주(Anzu) 신화에서 “차용”하는데, 그 신화에서 젊은 신 닌누르타는 다른 신들에게 소환되어 초자연적인 새 안주와 전투를 벌이게 되었으며, 그가 승리한 후 많은 이름으로 찬사를 받았다.
에누마 엘리쉬가 차용했다는 사실은 『운명의 평판』(Tablet of Destinies)이 다소 무작위로 나오는 것과 관련해서도 주목을 받는다(I:157; IV:121). 에누마 엘리쉬에서는 갑작스럽게 나오는 반면에, 안주 신화에서는 안주가 평판을 훔치는 일이 주요 플롯의 한 요소다. 고대 저자들은 자신들이 이전 전통에 의존한 것을 전혀 불명예로 보지 않았으며, 자신들의 독창성의 상당 부분은 이전 문헌들과의 교류에서 나왔다.
이상적으로 이 본문들을 서로 나란히 읽으면 우리는 각 본문의 독특성을 인식할 수 있다. 성경 기사의 경우, 명확한 것이 눈에 띈다.
--- pp. 160-161
6. 고찰을 위한 질문
① 히타이트 조약은 봉신이 종주에게 은혜를 입었음을 강조하는 반면, 앗수르 조약은 파멸을 피하려는 이기적인 욕심을 강조했다고 한다. 동의하는가?
만약 동의한다면 무엇이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가?
어떤 접근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가?
② 여호와가 종주의 역할을 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이것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가?
이것은 어떤 문제를 야기하는가?
③ 신명기가 정확하게 두 조약 양식 가운데 어떤 것에도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차이점에 대해서는 어떤 이유를 제시하겠는가?
이 차이점은 신학적, 이데올로기적, 문학적 요인들을 포함할 수 있다.
④ 언약 양식의 고대 배경을 안다는 것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는다는 개념에 대한 당신의 견해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
--- p. 368
독자들은 문화적 영향이 다른 세력 관계 아래에서는 다르게 기능할 것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하는데, 물론 종종 비교 연구에서는 이 요인을 명백하게 언급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제국의 지배 하에 있으면서 자신의 전통을 방어하고 보존하려고 노력할 때보다 채택하고 있는 문화가 안전하게 장악되고 있을 때에는, 외국의 사상을 채택하는 게 훨씬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두 본문 사이의 의외의 유사점은 우드자호레스네와 느헤미야가 각각 성전과 예배를 정화하려고 애쓴다는 것이며, 모두 민족적 정결의 요소가 들어있다는 점이다(Udj. 18-2, 44-5; 느 13장).
우드자호레스네가 한 세기 이상 느헤미야를 앞선다고 해도, 비교해 보면 두 본문 사이에는 어떤 식으로든 문학적 영향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지 않는다. 이집트의 자서전 양식은 예후드에서는 잘 알려졌겠지만, 유사점은 주로 두 본문의 작성을 둘러싼 비슷한 사회적 영향력에 주로 근거한다.
--- p. 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