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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조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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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1년 11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322쪽 | 388g | 133*203*30mm
ISBN13 9788901131177
ISBN10 890113117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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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내가 미쳤다고 해도 상관없다, 모지스 허조그는 생각했다.
사람들이 제정신이 아니라고 했기에 그 역시 잠시 자신이 제정신이 아닌지 의심해 보기도 했었다. 좀 이상하게 행동하긴 했지만, 지금 그는 자신만만하고 활기차며 명철한 데다 원기 왕성했다. 그는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듯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편지를 썼다. 편지 쓰는 일 때문에 그는 너무 흥분해서 6월 말부터는 아예 가방에 종이 뭉치를 가득 넣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그는 가방을 들고 뉴욕에서 마서스비니어드까지 갔다가 돌아왔고 이틀 후에는 비행기를 타고 시카고로 갔다가 매사추세츠 주 서쪽의 어느 벽촌으로 갔다. 그러고는 그 시골구석에 파묻혀 신문사와 저명인사, 친구와 친척과 이미 죽은 사람 들에게, 자신의 초라한 시신에게, 그리고 마침내는 고인이 된 위인들에게까지 이상야릇한 편지를 끊임없이 써댔다. ---p.9


그는 이렇게도 썼다.
나는 월터 윈첼 옆에서, 바흐가 미사곡을 작곡하려고 검은 장갑을 끼는 모습을 본다.
허조그는 이런 낙서들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낙서를 하고 싶다는 순간적인 충동에 굴복했을 따름이지만, 이따금 혹시 이것이 정신이 붕괴되어 간다는 징후가 아닐까 의심했다. 그래도 놀랄 건 없다. 허조그는 17번가, 작은 부엌이 딸린 월세 아파트에 놓인 소파에 누워 어쩌면 자신은 신상과 경력을 제조하는 공장일지도 모른다는 상상에 빠진 채 출생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전 생애를 머릿속에서 훑어보기도 했다. 드디어 그는 메모지에 이렇게 적었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니, 그는 만사를 잘못 처리해 왔음을 깨달았다. 그의 인생은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단계별로 몰락해 갔던 것이다. 애초부터 대단한 인생도 아니었으니 별로 슬퍼할 것도 없다. 냄새나는 소파에 누워 19세기, 16세기, 18세기에 대해 생각하다가, 18세기에서 격언 하나를 골라냈다.
비탄은 나태의 일종이다. ---p.12


“(……) 현대의 철학자들은 죽음에 대한 옛날 식 두려움을 되찾기를 원하고 있어. 삶이란 것을 하찮은 것으로 고민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새로운 태도가 문명의 중심부를 위협하고 있으니까. 그러나 그것은 두려움이나 혹은 이에 유사한 다른 어떤 언어의 문제도 아니야……. 그러나 아직, 생각이 깊은 사람들과 휴머니스트들은 적절한 언어를 향해 분투하는 것 이외 다른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나를 보란 말이야. 난 요즘 사방으로 편지를 썼어. 더 많은 말로 사물의 실체를 찾으려 했지. 어쩌면 나는 언어로 현실을 추구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매들린과 거스배치가 양심을 갖도록 강요하고 싶었는지도 몰라. 양심, 참 좋은 말이지. 나는 분명히 그 양심의 상태를 팽팽히 긴장시키려 애쓰고 있어. 양심 없다면 인간을 인간이라 부를 수 없으니까. 그들이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면, 내 힘으로는 어찌할 도리가 없어. 난 그들이 도망치는 길을 막으려고 이 세상을 편지로 가득 메울 작정이었어. 난 그들이 인간의 형태로 있기를 원하니까 모든 상황을 동원해서 그들을 꼼짝없이 잡으려 했지. 그러려고 난 내가 가진 온 힘을 쏟아서 문장들을 세웠어. 하지만, 그건 문장 구조일 뿐이었지.”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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