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리 시대의 고통에 관한 문제를 이야기하고자 이 책을 썼다. 고통의 원인은 명백하다. 나쁜 수단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목적을 이루려고 하기에 우리는 고통을 느낀다. 따라서 수단과 목적 사이에 조화를 이루지 않는 한, 고통을 끝낼 수 없다. 그러나 많은 문명은 여전히 공공연하게 혹은 은밀하게 폭력적인 수단을 사용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현실이다. 현재 문명이 주도하는 산업화, 중앙집권화, 도시화, 세계화, 물질주의, 자본주의 그리고 소비주의는 개인과 단체와 자연에 모두 거대한 해를 끼친다. 이 폭력은 결국 자연재해로 나타나서 우리는 현재 최악의 기후변화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사람과 동물, 지구와 기후에 대한 폭력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아마도 가장 나쁜 타마스적인 현상은 바로 폭력일 것이다. --- p.181
어느 생물학자는 지구에 3억 종류의 생명체가 있다고 말한다. 인간을 제외한 모든 생명체, 예를 들어 사자, 코끼리, 원숭이, 뱀, 꿀벌, 지렁이와 나비는 음식과 물을 조건 없이 먹으며 살아간다. 음식과 물과 생활필수품을 무료로 얻을 수 없는 생명체는 인간뿐이다. 이것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라자스적인 소유 체제 때문이다. 창고에는 엄청난 양의 곡식이 썩어 가도 돈이 없으면 한 톨의 쌀이나 밀도 얻을 수 없다.
인간은 음식과 물을 사고파는 상품으로 만들어 버린 라자스적인 체계를 세웠지만, 정작 돈은 은행이나 사채업자들의 손아귀에 있다. 돈은 교환의 수단이지만, 실제로는 우리 삶을 지배한다. 그리고 돈은 항상 부족하다. 모든 인간이 충분한 돈을 갖는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음식이나 물이 모든 인간에게 돌아가는 것도 보장할 수 없다. 그래서 가난은 자연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라자스적인 상황이 타마스적인 국면으로 변한 결과이다.
이제 가난과의 전쟁은 하나의 거대한 사업이 되었고, 이것 또한 기득권층의 돈벌이 수단이 되었다. 지난 60년 동안 모든 나라의 정부가 빈곤 퇴치를 외쳐 왔다. 유엔 기구, 구호 단체, 세계 무역 단체,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 자선 단체는 빈곤 퇴치에 매달려 왔다. 세계 지도자들은 새천년 개발목표(Millennium Development Goals)를 세우는 데 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넘쳐나는 수사와 광고 문구가 무색하게도 빈민층의 가난은 부유층의 부가 늘어나는 만큼 증가했다. 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부유한 사람들에게로 끊임없이 이동하고 있다.
지금 세계가 직면한 도전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서 ‘덜 빼앗는 것’이다. 이제 부자들은 그동안 올라타고 있던 가난한 사람들의 등에서 내려와 그들이 스스로 자신을 돌볼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 pp.115~116
사실, 기후 위기는 소비주의의 위기다. 우리에게 실제로 더 많은 옷과 컴퓨터, 또는 성형수술이 필요할까? 문제는 그것을 소유해야 한다는 우리의 믿음이다. 경제 순환이 이루어지려면 계속 소비해야 한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지 지속적인 고용이 이루어지려면 계속 구매해야 한다. 지구 삼림의 4분의 3이 사라졌고, 지금도 사라지고 있다. 매년 오스트리아 크기의 삼림 면적이 아마존에서, 인도네시아에서 사라지고 있다. 국가들은 석유를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다가 이제는 소비주의의 파국적인 결과를 피하려고 기술혁명에 기대를 걸고 있다. 그러나 결과로부터 자유로운 소비는 없다. 우리는 소비주의 문화의 영향을 피할 수 없다. --- p.110
정치인은 ‘민주주의’와 ‘자유’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오로지 헤게모니와 자기 이익뿐이다. 게다가 어떻게 민주주의와 자유에 대한 단 하나의 견해가 온 세상에 적용될 수 있겠는가? 관용, 존경, 다양성, 다원주의에 대한 존중이 없다면, 민주주의와 자유 역시 존재할 수 없다. 관용, 존경 그리고 존중은 사트바적 성질이다. 그러나 물질주의를 신봉하는 정치적 시각에 따르면 사트바적인 가치는 선명하지 않고, 허약하며, 유토피아적이고, 비현실적이며, 비이성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권력, 지배와 자기 이익에 매달리는 타마스적인 정치가 우리를 어디로 이끄는지 냉정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냉전, 베트남 전쟁, 카슈미르 분쟁, 이라크 전쟁, 9·11 사태,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 등 타마스적인 정치는 재앙에 가까운 실패로 끝났다. 이제는 영혼이 있는 정치, 사트바적인 정치를 실현할 때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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