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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가장 큰 선물
헨리 나웬 저 / 홍석현 역 | 홍성사 | 1998년 02월 28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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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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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1998년 02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161쪽 | 128*188*20mm
ISBN13 9788936501594
ISBN10 8936501593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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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이 3층 방은 도심의 은신처로서는 이상적인 공간입니다. 이곳에는 고독한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것, 그러니까 공부방과 침실과 내가 부엌으로 용도를 바꾼 작은 응접실과 욕실이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나는 지금껏 꿈꾸어오던 것, 곧 완벽한 침묵과 완벽한 고독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유리창의 블라인드를 내리면 침실은 칠흙같이 어두워지고, 지나가는 차소리조차 들리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고요합니다.

이 고요함은 사람을 정화시킵니다.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밖이 고요해지면 곧바로 내면의 부산함이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할 일이 하나도 없을 때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관심을 가져달라고 요구하는 사람이나 무언가를 부탁하는 사람도 없고 내 존재의 가치를 느끼게 해주는 사람도 없을 때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전화 한 통, 편지 한 통, 모임 한 번 없이 몇 분이 흐르고 몇 시간이 흐르고 몇 날이 흐를 때, 시간은 지평선조차 보이지 않는 고독의 사막의 되어 내 앞에 끝없이 펼쳐집니다.

이곳이야말로 죽음과 친해질 수 있는 가장 복받은 장소가 아닐까요? 이곳이야말로 외부의 침묵이 나를 서서히 내면의 침묵으로 이끌어주며, 나 자신의 필멸성을 스스로 끌어안게 해줄 그 장소가 아닐까요? 그렇습니다. 침묵과 고독은 나를 이끌어서 사람들 틈에서 안도감을 느끼게 하는 외부의 소리들에 점차 귀를 기울이지 않게 해주며, 내 진정한 이름을 드러내주는 내면의 소리를 신뢰하게 합니다. 침묵과 고독은 일상이라는 발판에서 발을 떼게 하며, 그 오래된 지지 체계가 사라졌을 때에도 제 힘으로 서 있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하게 합니다.

이 작은 은신처에 홀로 앉아 있으면서, 내가 얼마나 죽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지를 깨닫습니다. 이 안락한 방의 침묵과 고독은 삶을 붙잡고 놓지 않으려는 내 모습을 개닫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죽어야 합니다. 내게 남아 있은 10년, 20년, 30년의 세월은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갈 것입니다. 몸은 기력을 잃고 정신은 유연성을 잃을 것입니다. 가족과 친구들도 잃겠지요. 사회와도 점점 멀어질 것이고, 대다수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도 잊혀질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이들의 도움에 더욱더 의지해야 할 것입니다. 결국 나는 모든 것을 손에서 놓은 채 아무 것도 알려진 바 없는 미지의 세계로 옮겨질 것입니다.

내가 기꺼이 그 여행을 떠날 수 있을까요? 내게 남아있는 힘을 다 버리고 꽉 쥐었던 주먹을 펴고서, 철저한 무력함 속에 감추어진 은혜를 신뢰하게 될까요? 모르겠습니다. 정말 모르겠습니다. 내 안에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무를 향해 떠나는 이 여행에 저항하고 있기 때문에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을 것만 같습니다. ('시작하는 말'에서)
--- p.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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