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대의 나에게는 입안이 아주 좁게 보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입안에서 우주가 보인다. 구강은 우리 몸 상태가 단적으로 표현되는 예민한 곳이고, 치아라는 우리 몸에서 가장 단단한 조직이 기둥처럼 버티고 있는 곳이다. 침 한 방울로 온몸을 볼 수도 있고, 침 속의 아밀라아제라는 효소는 현생 인류에게 가장 위대한 돌연변이로 꼽히기도 한다. 최근 들어서는 치석을 이용해 인류의 진화를 추적하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1장. 입속, 100cc의 우주」중에서
입안이 예민하다는 것은 주관적 감각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과학적 근거가 뒷받침된다. 뇌에서 운동과 지각을 다루는 부분이 대뇌피질(CORTEX- 바깥쪽 부분)인데, 이곳에서 혀와 입술을 포함한 입의 자극을 느끼고 반응하게 하는 영역이 다른 부위에 비해 훨씬 넓다(그림 1). 우리 몸의 다른 부위에 비해 입으로 더 많은 뇌 신경들이 몰려온다는 뜻이다. 혀와 입술로 오는 신경을 합하면 다리 전체로 가는 신경의 양을 넘어선다. 그만큼 예민할 수밖에 없다.
---「1장. 입속, 100cc의 우주」중에서
단단한 치아 표면은 미생물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미생물이 우리 몸에서 좋든 나쁘든 어떤 역할을 하려면 어딘가 붙어야 한다. 피부나 구강과 장의 점막 등 어디라도 좋다. 그런데 그런 조직들은 모두 한두 달이 지나면 표면이 떨어져 나가고, 이때 거기에 붙은 미생물도 함께 떨어져 나가 배설된다. 하지만 치아는 그렇지 않다. 늘 그 자리에 서 있다. 미생물이 붙고 또 붙어 공동체인 바이오필름을 만들기 제격인 곳이다. 우리 몸 어디에도 이런 곳은 없다.
---「1장. 입속, 100cc의 우주」중에서
입안에서 벌어지는 질병의 조기진단에는 피보다 침이 훨씬 더 신빙성이 있는 정보를 담고 있다. …… 조직검사를 하기 전에 미생물 검사를 통해 구강암의 가능성을 조기에 확인할 수 있다. 치과에서 가장 많이 다루는 잇몸질환 역시 심해진 이후 발견되고 치료하기 시작하는 사후 약방문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타액 미생물의 변화를 이용한다면, 잇몸질환 발생을 조기에 알 수 있고, 치료가 잘 되었는지 아닌지 경과를 살피는 것도 어느 정도 가능하다. 다른 질병의 경우에도 침은 유용한 정보를 준다. 대표적인 예가 에이즈이다. 최근 들어 에이즈 검사는 타액으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1장. 입속, 100cc의 우주」중에서
아밀라아제는 늑대 가운데 일부가 개가 되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다. 개의 기원은 육식성 야생 늑대인데, 인간에게 길들여지고 함께 살아온 개는 야생 늑대보다 아밀라아제 유전자가 5배 이상 많다. 게다가 늑대의 가축화가 시작된 것도 대략 1만 년 전으로 추정된다. 야생 늑대 가운데 아밀라아제를 많이 만들 수 있는 돌연변이들이 인간과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반려견으로 진화한 것이다.
---「1장. 입속, 100cc의 우주」중에서
산화질소는 혈관벽 내피세포에서 만들어져 그 주위를 둘러싸는 근육조직으로 확산되어 이완시킴으로써 혈압을 내리는 역할을 한다. 혈관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핵심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 외에도 항암효과를 포함해 수많은 기능이 밝혀진 중요한 물질이다.……침샘은 혈액에서 질산염을 다른 물질에 비해 더 많이 뽑아낸다. 그래서 타액의 질산염 농도는 혈액에 비해 10~20배 높다. 이질산염은 타액 속 세균에 의해 산화질소로 만들어지고, 이렇게 만들어진 산화질소는 다시 우리 몸에 공급된다. 타액으로 나오지 않은 질산염이 신장에서 오줌으로 걸러져 배설되는 것을 생각하면, 타액 속 세균들 이 재활용을 하도록 돕는 것이다.
---「4장. 입속 미생물과 내 몸 건강」중에서
최근의 변화와 연구들을 포괄해 새롭게 질병을 바라보려는 시각이 생태적 병인론이다. 이것은 결핵균이나 콜레라균, 에이즈 바이러스 등 특정 미생물이 특정 질환을 만드는 경우도 없지 않지만, 이런 경우는
실제로 많지 않다는 인식에서 나온다. 대신 미생물 역시 우리 몸 생태계의 일원이며, 미생물을 포함한 생태계의 훼손이 문제라는 것을 인정한다. 생태적 병인론은 마치 지구와 인간, 환경과 인간의 관계를 일방적 정복과 개발로 단순화했던 논리와 행태에서 벗어나, 인간과 환경 사이의 복합적이고 다양한 상호연관을 깨닫고, 보다 조화로운 생태적 자연관으로 나아가려는 경향과 맥을 같이한다.
---「5장. 입속 미생물 관리」중에서
항미생물 제제를 사용해야 할 때에도 가능한 먹는 것은 마지막 선택이어야 한다. 장 미생물 때문이다. 우리가 먹는 항균제는 장에서 흡수되어 혈관을 통해 전신으로 돌다가 문제의 장소에 도달해서 세균을 공격한다. 그런데 예컨대 입에 염증이 있어 항균제를 먹는다면, 항균 물질 배달과정에서 장 미생물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 음식의 소화는 물론, 우리 몸 전체의 면역을 증진시키고, 심지어 기분과 정신 상태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장미생물 군집에 일대 교란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것을 피하기 위해 항균제 복용을 최소화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나는 항균제를 처방할 때도 먹는 약보다는 근육주사를 선호하는 편이다. 치과 시술의 특성상 항균제를 장기적으로 투여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이런 방법을 쓰기 유리한 면도 있다. …… 가장 좋은 방법은 국소적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연고와 구강 가글액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5장. 입속 미생물 관리」중에서
조금만 길게 보면 과학은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다. 어찌 보면 과학은 늘 오류투성이였다. 그래서 늘 수정되고 늘 새로운 관찰과 이론이 등장했다. 스스로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 새로운 관찰과 이론으로 스스로를 수정해가는 것, 이것이 과학의 미덕이고 힘이다. 현재의 미생물학 연구가 제시하는 지식의 힘은 지난 200년간의 과학이 상당한 오류를 포함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 지난 20년간 내가 벌인 미생물과의 전쟁에 상당한 수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얘기해준다. 그런 과학적 지식을 접할 수 있음이, 새로운 지식으로 지금의 나를 지속적으로 수정해갈 수 있음이 기쁘고 감사할 따름이다.
---「결론을 대신하여」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