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너선은 눈을 깜박거리며 고개를 오른쪽으로 슬쩍 돌렸다. “당신은…… 당신은 서비스를 제공하죠.” 나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눈을 크게 떴다. 조너선은 목을 가다듬더니 이제는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아, 그러니까, 저기…….”
“한 번만 더 ‘저기’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면 당신한테 정말 실망할 것 같군요.” 나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지만, 그가 어떻게 할지 궁금해서 내 몸에서 손을 떼라고 하지는 않았다. --- p.18
“벗어.” 그의 외마디 말에 내 영혼은 불타올랐다.
바싹 마른 입술을 훔치며 어떻게든 숨을 쉬어 보려고 허파를 쥐어짰다. 손이 파르르 떨렸다. 이게 내 의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거부나 이의조차 제기할 수 없었다. 사실……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미 그를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그래도 내가…… 내가 원하는 걸 직접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놓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아직 남아 있었다. --- p.32
침대가 살짝 흔들렸다. 내 어깨 밑으로 흘러내린 풍성한 검은 머리카락을 그는 길고 굵은 손가락으로 쓸어 넘겼다. 그의 손톱은 깔끔히 손질되어 있었다. 내가 머리카락을 이렇게 늘어뜨리고 있는 경우는 오직 잠 잘 때뿐이었다. 그 외에는 시뇽 스타일로 둥글게 말아 올리거나 단정하게 땋은 다음 돌돌 말아서 핀으로 고정했다. 어깨 아래로 머리를 늘어뜨리는 경우는 절대 없었다. 여자의 목선은 적당히 노출될 때 가슴만큼이나 매혹적이고 에로틱하게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한 손으로 내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이런 거친 손길은 예상치 않은 일이었다. 놀라움에 숨이 거칠어졌다. 두렵지는 않았다. 두려움은 내게 가능하지 않으며, 허락되지도 않는 감정이었다. 감히 두려울 수조차 없었다. 하물며 두려움을 드러내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 p.49
심호흡하고 집중해. 내겐 갑옷이 있어. 빈틈이나 균열은 안 돼. 냉정하고, 차갑고, 매끄럽고, 절대로 뚫지 못하는 갑옷을 입어. 손가락 끝에 손톱 대신 갈고리 발톱이 달려 있다고 상상해. 독사의 눈빛을 하고, 가슴에 얼음을 품어. --- p.66
조지와 나는 키가 비슷했다. 조지가 신발을 벗으면 나보다 3센티미터 정도 작을 것 같았는데, 굽이 높은 부츠를 신고 있는 상태에서는 나와 비슷했다. 그런데도 조지는 어떻게든 안간힘을 쓰며 나를 내려다보려고 했다. 어쩐 일인지 이런 조지의 태도에서 남성적인 에너지가 넘쳐흘렀다. 열렬하면서도 압도적이고, 동시에 무자비한 힘이었다. 조지는 가까이, 무척 가까이, 얼굴이 맞닿을 정도로 다가와 뜨겁게 타오르는 초록색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두 손이 내 허리를 움켜잡았다. 그리고 내 몸을 바짝 끌어당겼다. 두 사람의 가슴이 맞부딪쳤다. 하반신도 완전히 밀착되었다. --- p.110
무의식의 커튼 사이로 희미하게 어떤 소리가 들렸다. 그의 목소리였다. “미안해, 엑스. 당신은 내 거야. 오로지 내 거라고. 당신은 아무것도 몰라. 당신이 알아줬으면 싶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당신은 모르겠지. 당신은 모른다고. 아니면…… 됐어. 당신은 내 거야. 나 말고는 아무도 당신을 차지할 수 없어.”
무의미한 말들이었다. 나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나도 알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게 내 유일한 실수였고, 다시는 저지르고 싶지 않은 실수였다.
미안하다고?
신은 절대 사과를 하지 않는다. --- p.131
로건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나를 바라보면서. 그의 금빛 머리카락이 물결처럼 흘러내렸다. 그는 바지 주머니에 한 손을 찔러 넣고, 다른 한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들어 입에 물었다. 붉은 라이터 불빛이 그의 눈과 이마, 날카롭게 도드라진 광대뼈를 환히 비추었다. 하얀 연기가 동그라미를 그리며 멀리 날아가더니 이내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 p.278
로건은 어머어마한 존재였다. 지나치게 가까웠고, 강렬했다. 나의 정신과 신체의 욕망의 깊은 곳에 그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제는 그가 없는 순간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숨을 쉴 수 없었다. 그는 내게 주어진 시간 그 자체였고, 아주 더디게 흘러가는 시간의 모든 파편이었다. 그는 또한 내가 들이마시는 숨이기도 했다. 그를 더욱 깊이 들이마실수록 그에게 더 깊이 취해 버렸다. 그에게 깊이 빠져 들수록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 버렸다. 그의 몸에서 풍기는 향기, 그의 시선이 나를 바라볼 때의 느낌, 두 손을 포개어 잡은 우리 두 사람의 모습, 그리고 막연한 키스의 기억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 p.320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도 이 마법 같은 순간을 깨뜨리고 싶지 않았다. 굳이 내가 깨뜨리지 않더라도 금방 깨져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눈꺼풀이 아래로 무겁게 처졌다.
그의 손길은 내 몸 위에서 다정하게 미끄러지고 있었다. 조금은 머뭇거리면서 느릿느릿 부드럽게.
몸이 공중에 떠서 이리저리 흘러갔다. 졸음이 쏟아졌다.
--- p.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