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의 동등권을 옹호했던 진보적 인사들조차 인종 간 결혼을 우려하고 있었다. 해리 S. 트루먼 대통령은 민권에 관한 한 꽤 진보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1948년 군대 내 인종차별 정책을 폐지하고 연방 고용정책을 보다 평등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미국 흑인 지위향상협회NAACP에 참석해 이렇게 연설했다.
“연방 정부는 국민의 편에 서서, 모든 국민의 권리와 평등을 수호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해야 합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모든’ 국민을 위한 수호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랬던 그도 인종차별 정책을 폐지하면 인종 간 결혼이 더 빈번해질 것이라고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전혀 다른 태도를 보였다.
“그래서도 안 되고, 그럴 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당신 같으면 딸을 흑인과 결혼시키겠습니까.”
물론 이것은 반세기 전의 일이다. 이후로 우리는 하나의 국가를 이루며 오랜 세월 함께해 왔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인종 간 결혼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 pp.35-36
동물들은 좌우균형이 잡힌 짝을 찾으며, 인간도 예외는 아니다. 사람들에게 같은 사람의 사진을 두 장 보여 주고 실험을 해 봤다. 한 장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찍은 일반 사진이고, 다른 한 장은 얼굴이 완벽한 대칭을 이루도록 컴퓨터로 살짝 조작한 사진이었다. 차이가 미묘해서 실험 참가자들로서는 서로 뭐가 다른지 금방 구분하기 힘들었다.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쪽을 선택하라고 하자 좌우균형이 완벽하도록 조작한 사진을 집어 드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 실험에 따르면, 남녀 모두 좌우균형이 잘 잡힌 얼굴을 더 매력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정말로 흥미로운 일은 실험실 밖에서 일어나고 있다. 좌우균형이 잘 잡힌 남자들은 그렇지 않은 남자들보다 3년 내지 4년 정도 더 빨리 동정을 잃고, 섹스 파트너도 2~3배 더 많다고 한다. 또 연애를 할 때 더 빨리 성관계를 갖는다고 한다. --- p.58
실험에 참가한 42명의 남자들에게 입고 있던 티셔츠를 벗어 달라고 했다. 그리고 각자 좌우균형을 측정한 다음 새로운 티셔츠로 갈아입혔다. (중략) 그렇게 이틀 밤을 보낸 후 참가자들이 입었던 티셔츠를 비닐 백에 담아 수거했다. (중략) 52명의 실험 참가 여성들에게 비닐 백을 열어서 각 티셔츠의 냄새를 맡아 보게 했다. 그런 다음 쾌적함, 섹시함, 강렬함 등의 항목으로 나눠 냄새에 대해 점수를 매기게 하고, 피임약 복용 여부, 마지막 생리 시작일 같은 기본적인 사항을 묻는 질문지도 작성하도록 했다.
실험결과는 예상대로였다. 다른 실험에서와 마찬가지로 좌우균형이 잘 잡힌 남자들이 싱겁게 이겨 버렸다. 하지만 이번 실험에서는 한 가지 흥미로운 현상이 있었다. (중략) 좌우균형이 잘 잡힌 남자들의 티셔츠를 특히 선호한 여성들은 대부분 배란기에 접어든 사람들이었다. 생리 주기 상 임신 가능성이 낮은 여성들과 피임약을 먹고 있는 여성들은 모든 티셔츠에 비슷한 선호도를 보였다. 배란 확률이 높은 여성들일수록 좌우균형이 잘 잡힌 남자의 체취에 유독 반응했다. --- pp.64-65
바쁘게 움직이는 우리 유전자들은 쌍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성립되는 시나리오는 딱 두 가지다. 짝을 이룬 두 유전자가 동일하거나(동형접합체), 아니면 다르거나(이형접합체). 이형접합인 경우, 두 유전자가 맡게 되는 역할은 동일하지만 만들어내는 단백질은 서로 다르다. 비슷한 경우도 종종 있기는 하지만, 결코 동일하지는 않다. (중략)
몸과 얼굴은 가능한 좌우균형이 좋다. 하지만 유전자는 서로 다른 불균형이 오히려 좋다. 유전자 군단이 만들어 내는 우리 몸은 타는 듯이 뜨거운 사하라 사막이나 살이 에는 추운 북극에서도 제대로 기능할 수 있을 정도로 정교해야 한다. 다양한 환경 조건에서 살아남으려면 서로 다른 단백질이 작용하는 것이 아무래도 유리하다. --- pp.82-83
이형접합은 동형접합보다 효율성 측면에서 유리하다. 좋은 냄새를 풍기게 하고, 성적으로 매력 있어 보이게 하고, 성장을 빠르게 하고, 감염에 대한 저항력을 높여 준다. 이러한 유전적 변이는 가장 중요한 특질인 좌우균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중략) 좌우균형과 이형접합은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유전자가 다양하다는 것은 환경변화에 큰 영향을 받지 않고 완충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뜻이다. 그 결과는 좌우균형이 잡힌, 더 건강하고 매력적인 몸으로 나타난다. --- p.113
빈대들은 ‘외상성 교미traumatic copulation’라는 방식으로 짝짓기를 한다. 즉, 자신의 교미기를 마치 칼처럼 암컷의 배에 찔러 넣고 몸속에 직접 사정하는 것이다. 경고한 대로 이상하고 기괴한 짝짓기가 아닐 수 없다. (중략)
놀라운 반전은 지금부터다. 과학자들은 수컷 빈대들이 다른 수컷의 배도 찌른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왜 그런 행동을 할까? 처음에 과학자들은 수컷 빈대들에게 아무것이나 찌르고 싶어 하는 습성이 있거나 수컷을 암컷으로 오인해서 일어난 사고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계산된 전략으로 드러났다. 수컷의 배를 찔러 그곳에 사정을 하면 정자는 찔린 수컷의 몸속을 돌다가 생식관을 발견하고 거기에 정착한다. 말하자면 다른 수컷의 정자관 속에서 야영을 하면서 그 수컷이 암컷에게 사정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다가 사정이 이뤄지면 자신의 정자를 ‘무임승차’시킨다. --- pp.118-119
오늘날 사마리아인들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매우 작고 고립된 공동체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전체 인구가 650명에 불과하고, 모두가 4개 가문의 후손들이다. 그 결과 사마리아인들은 세상에서 가장 근친결혼이 많은 집단 중 하나가 되었다.
사촌 또는 육촌 간의 결혼이 전체 결혼의 80퍼센트를 넘을 정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마리아 사람들은 결혼에 앞서 이스라엘의텔 하쇼메르 병원에 들러 유전학자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중략)
물리적, 문화적 제약은 인종 간 결합을 어렵게 하고, 결과적으로 유전적 다양성을 해친다. 인종 간 결혼은 잃어버린 다양성을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인종적 배경과 유전자가 서로 다른 남녀가 결합하면 자식들에게 다양하게 혼합된 DNA를 물려줄 수 있다. 따라서 자손들은 건강과 아름다움, 활력을 보장하는 이형접합의 이점을 누릴 수 있다. --- pp.141-142
나는 이렇게 뛰어난 이형접합을 잡종강세의 첫 단계로 본다. 그리고 이것이 플린 효과에 어느 정도 기여했으리라고 생각한다. 현대사회의 개선된 환경도 일정 부분 역할을 했겠지만 말이다. 유전적 변이가 많을수록 잡종강세는 더욱 두드러진다. 나는 인종 간 결혼이 보편화되면 우리 자손들이 신체적, 정신적으로 훨씬 빠르게 성장하고 발달할 것이라고 믿는다. 상상만으로도 흥분되고 신나지 않는가? 하나의 종(種)으로서 인간은 많은 것을 성취해 왔고, 아직도 성취할 것이 많이 남았다는 사실이 뿌듯하기만 하다.
우리 인간에게는 아직도 발전할 기회가 남아 있다. 우리 DNA는 아직 발현되지 않은 거대한 잠재력이 분출될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인종 차별적인 농담과 문화적 비방, 파괴적인 인종 폭동, 끔찍한 인종 청소를 겪으면서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만이 문제 해결의 열쇠라는 것을 깨달았다. 인종 갈등으로 전쟁을 벌이는 나라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면서도 슬픈 일이다. 건강하고, 아름답고, 머리가 좋은 자손을 낳으려면 이렇게 적으로 생각하는 다른 인종 사람들의 유전자가 필요한 것도 모르고 말이다. --- p.187
흰기러기들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어렸을 때 이미 미래의 짝에 대한 청사진을 구축한다. 커서 짝을 찾을 때가 되면 청색 부모 밑에서 자란 녀석들은 청색을, 흰색 부모 밑에서 자란 녀석들은 흰색을 선호했다. 하지만 흰색과 청색이 섞인 무리에서 자란 녀석들은 선호하는 색이 없었다. (중략)
이것은 너무도 중요한 사실이다. 우리 인간도 피부색이 서로 섞이고 다양한 인종이 어울려 살게 되면 짝에 대한 청사진이 ‘보편적’으로 변할 것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어릴 때 다양한 인종에 노출된 아이들은 자라서 다양한 인종의 사람에게 끌리게 될 것이다. 그러다 보면 같은 인종만 고집하는 배타적 결혼은 사라질 것이다. --- pp.238-239
인간의 차이는 분명 존재한다. 이것을 무시하거나 숨기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이것은 부끄러워할 일도, 갈등이 두려워 피할 일도 아니다. 분명히 우리 인간들 사이에는 차이가 존재하지만, 이런 ‘다름’은 우리를 반목하게 만드는 대신 서로 공존할 수 있도록 해 준다. 다양성은 하나의 선물이다. 계속해서 서로를 가르고 구분하는 것은 이런 선물을 헛되이 낭비하는 짓이다.
--- p.2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