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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과 지성

뉴욕과 지성

: 뉴욕에서 그린 나와 타인과 세상 사이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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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4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400쪽 | 512g | 145*210*30mm
ISBN13 9791186851784
ISBN10 11868517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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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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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착은 점점 불가능해지고 있다. 사람들은 이동이라는 자유와 폭력에 익숙해지고 있다. 어쩌면 머지않아 우리는 하늘을 지붕 삼고 땅을 바닥 삼는 법을 배워야 할지도 모른다. 어디에 살게 되든지, 편견을 버리고 차별의 경계를 넘어서 이웃과 친구를 만드는 방법 말이다. 이것이 땅을 황폐화하는 전쟁에서 이기는 길이다. 잦은 이사와 낯선 환경에 심신이 지칠 때면 잠자리에 들기 전에 스스로에게 말하자. 이 이상한 세상에서 내 한 몸 누일 곳을 찾는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누구도 기억해 주지 않는 나의 역사는 그렇게 매일 갱신되고 있다.
---「2. 휴머니티의 집: 하워드 진과 990 아파트」중에서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보낸 2년 반의 시간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마지막 수업이 끝남과 동시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졸업식조차 참석하지 않고 학교를 떠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결국 여러 사람의 등에 떠밀려 졸업식에 갔다. 그리고 천 명의 학생들이 환호성을 지르면서 가운과 모자를 집어 던졌던 순간, 예상치 못하게 울컥하는 감정을 느꼈다. 여기에는 힘든 시간을 함께 거쳐 왔다는 동료의식과, 앞으로 닥쳐올 시간에 대한 불안한 예감이 함께 뒤섞여 있었다. 졸업장이 손에 쥐어진 약간의 특권은 우리의 ‘생존’을 보장해 주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기원했다. 우리 모두 시대의 그림자로 살아가지는 않기를. 인생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그래서 훗날 아이가 생겼을 때, 다음세대에게 “이 세상에는 언제나 살 길이 있다”고 말해 줄 수 있는 어른이 되기를.
---「4. 가장 낮은 곳부터 마비시키는 은총: 이반 일리치와 워싱턴하이츠」중에서

다리 위에서 자전거를 세워 놓고, 퀸스와 맨해튼 사이로 흐르는 이스트리버를 바라보면서 잠깐 쉬었다. 흐르는 물살을 바라보니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일곱 살 때 몰래 부모님 돈을 훔치다가 어머니에게 딱 걸려서 회초리를 맞았었다. 내가 울면서 왜 이렇게 아프냐고 악을 쓰자 어머니가 그건 신경 때문이라고 대답하셨다. 나는 신경 따위 필요없다고 말대꾸를 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신경이 없다면 회초리를 맞아도 아프지 않겠지만, 초콜릿을 먹어도 맛있는 줄 모르는 바보가 될 거라고 답했다. 그때 어린 마음에 받은 충격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느낀다는 것은 세상의 모든 자극을 긍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어린아이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한 진실이다. 괴로운 느낌은 배제하고 행복한 느낌만 바라는 것은 어린아이의 투정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에게 선택지는 두 가지밖에 없다. 무기력이라는 고통이냐, 고통스러운 생기냐. 오, 신경의 역설이여!
---「7. 구멍난 몸, ‘웃픈’ 도시: 올리버 색스와 23번가 공원」중에서

그래서 나는 싱글이다. 애인이 있든 없든, 아이가 있든 없든, 언제나 싱글일 것이다. 사람이 끝없이 오고 가는 이 싱글의 도시에서 사랑을 하는 것은 용감한 행동이다. 아이를 낳기로 결심하는 것은 더욱 용감한 행동이다. 이곳에는 몸의 본능을 거부하지 않는 강한 사람들, 자신의 파트너와 아이까지 한 명의 ‘싱글’로 존중해 주는 지혜로운 사람들로 가득하다. 여기서 나는 나를 잠재적 미혼모로 여긴다. 불운한 미래를 원해서가 아니다.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내 몸을 사랑하지만, 아이 때문에 한 남자에게 매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아이가 생기게 된다면, 그로 인해 내 인생이 어떻게 바뀌든 간에 내가 엄마로서 하게 될 희생을 후회하고 싶지도 않기 때문이다. 어디에 있든, 누구와 있든, 사랑을 하는 주체로서 온전해지고 싶다. 아마도 이 소망이 도착하는 지점은 아나키즘일 것이다.
---「8. 연애, 만인의 무정부주의: 엠마 골드만과 로어이스트사이드」중에서

5애비뉴 40가(5th Ave 40th St)에 있는 도서관에 갈 때마다 나는 이 사실을 상기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도서관을 모른다. 길 맞은편에 세워진 뉴욕시립도서관이 워낙 으리으리해서 관광객이 끊이질 않는 반면, 이 작은 도서관은 유달리 노숙자들이 많이 찾아와서 노숙자의 호텔이라고 불렸다. (내가 뉴욕을 떠난 현재, 이 도서관은 문을 닫고 공사 중이다.) 냄새도 지독하고 청결상태도 안 좋다. 도서관이 홍보하는 프로그램도 대부분 사회 부적응자를 구제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어쩌면 이런 곳에 에릭 호퍼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꾀죄죄한 몰골을 한 사람들 가운데에도 누군가는 평생 세상 속에서 숨어 산 노동자 철학자처럼 스스로의 영혼을 탐색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모두가 자신이 ‘독하게’ 살고 있다고 믿으면서 뉴욕의 동일한 흐름에 휩쓸리는 가운데, 조용히 ‘마이 웨이’를 개척하는 진정한 부적응자들 말이다.
---「10. 마음-지옥의 방랑기: 뉴욕과 에릭 호퍼」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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