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휴거(the rapture) 영화가 있습니다. 대학교 때 기숙사 로비에서 기독교 영화라고 해서 보았다가 무서워서 제대로 보지도 못했던 영화입니다. 그 이후 종말에 대한 수많은 영화가 만들어졌는데 처음 보았던 그 영화의 충격으로 다시는 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습니다. 한결같이 마지막 때에 대해 공포심을 조장하는 영화였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 요한계시록은 공포심에 사로잡히게 했던 영화와 연관되어 좀처럼 친근해질 수 없었던 책이 됐습니다. 신학교 가기 전까지 요한계시록 설교를 제대로 들어본 적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대한 제 생각이 바뀐 것은 신대원 때 계시록 과목을 수강했을 때입니다. 저는 첫 수업 시간에 경험한 신선한 충격을 잊을 수 없습니다. 당시 웨스트민스터 신학교(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 신약학 교수로 계셨던 번 포이트레스(Vern S. Poythress) 교수님께서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이 역사의 주관자이시며, 궁극적으로 그리스도께서 이 모든 싸움에서 승리할 것임을 선포하는 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관점에서 계시록을 풀어가는 강의는 사도바울의 눈에서 비늘이 벗겨지듯, 저의 잘못된 선입관을 없애는 계기를 마련해주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계시록 첫 부분에서 밝혔듯이 계시록은 진리를 밝히려는 책이며 메시지를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 위한 책입니다. 수많은 암시와 상징 속에 감추어져 있는 것 같지만 근본적으로 계시(revelation)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머리 좋고 수수께끼를 잘 푸는 사람만 깨닫도록 고안된 책이 아니라, 수많은 상징 등을 통해 어린아이들도 아주 간단하게 그 메시지를 파악할 수 있도록 계시된 말씀이 요한계시록입니다.
포이트레스 교수는 그의 책 [The Returning King] (한국어 번역서는 ‘요한계시록 맥 잡기’)의 서문에 다음과 같이 밝힙니다.
“계시록은 주요점을 염두에 두고 읽으면 이해 가능한 책이다. 계시록의 모든 자세한 것들을 다 이해하지 못할수도 있다. 나도 전부 다 모른다. 계시록에서 영적인 유익을 얻기 위해서 모든 부분을 자세히 이해할 필요는 없다.”
이상한 듯해보이는 많은 상징을 다 이해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계시록의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이 책을 읽는 그 누구도 놓칠 수 없는 분명하고 명쾌한 메시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히려 머리를 굴리고 전문가가 되려고 하는 자들이 계시록의 메시지를 놓치기가 쉽다고 포이트레스 교수님은 피력합니다. 왜냐하면, 계시록은 퍼즐 책이 아니라 그림책이기 때문입니다.
계시록이 어렵다는 선입관을 가진 성도들이 많아서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종말에 대한 잘못된 가르침들이 주기적으로 유행처럼 교회를 휩쓸고 다니며 많은 성도가 미혹되는 것을 보는 것도 참으로 마음 아픈 일입니다. 그런 마음이 제 안에 들어왔을 때 저는 어떻게 하면 성도들에게 쉽게 다가가면서 계시록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기도하다가 베델교회에서 주일마다 계시록을 설교했습니다. 그 계시록 강해를 이번에 책으로까지 펴내게 되었는데 옛날 잘못된 계시록 영화에서 느끼는 공포심이 아니라, 따뜻하고 정겨운 하나님의 사랑 안으로 들어가 최후의 승리를 보장받은 성도로서 어려움과 환난을 이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제목을 [예수님의 러브레터]로 정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하나님의 사랑을 보시게 된다면 본 책이 세상에 나오는 의미를 다했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책이 나오기까지 수고한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관대하게 추천서를 써주신 저명한 교수님, 총장님, 목사님들께 감사를 드리며, 특별히 설교를 듣는 성도 입장에서 기쁘게 추천서를 써주신 차인표, 신애라 집사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계시록의 수많은 그림이 그 자체로 공포심을 주기 때문에 삽화 사용을 꺼렸지만 영감이 있으면서 친근한 애니메이션 풍의 그림으로 삽화를 그려준 김지윤 자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출판사 첫 작품으로 [예수님의 러브레터]를 출판하기로 한 거꾸로 미디어의 대표 박병기 목사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계속 꿈을 가지고 섬기는 사역이 [예수님의 러브레터]의 계시와 함께 뻗어 나가길 기도합니다. 마지막으로 늘 뒤에서 기도하며 부족한 종을 전적으로 후원하는 베델교회의 모든 가족에게 고개 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얼바인에서
김한요 목사
(저자의 프롤로그)
“지난 2천 년 동안 끊임없이 닥치는 바람과 바다와 강과 땅과 나무를 해칠 상황을 알려주는 상황 속에서 1세기에도 환란을 이기고 나온 144,000명 (셀 수 없는 큰 무리), 2세기에도 이기고 나온 하나님의 백성들 144,000명 (셀 수 없는 큰 무리), 3세기에도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2천 년 동 안 가장 핍박을 많이 받는 크리스천들을 포함한 셀 수 없는 무리가 바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144,000은 그 셀 수 없는 무리입니다. 정해진 숫자가 아닙니다. 그들이 막 흘러나옵니다. 2천 년 동안 믿음을 지킨 바로 그들이 하나님이 지키시고 인치심을 받은 자들이 넘쳐납니다. 바로 그들 이 셀 수 없는 무리이고 이마에 인치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 (제13장. 인침받은 144,000명)
“666은 완전수7.7.7 즉 완벽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유사품/모방품을 의미합니다. 숫자로 보면 1만 모자라서 비슷해 보이지만 결코 같은 존재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를 망치고 멸 망시키기위해 최선을 다하는 악한 세력의 상징수가 육.육.육입니다. 바다와 땅의 여기저기에 있는 악한 세력입니다. 여러분, 세상 사람이 아무리 좋아하고 찬양하고 이상향이라고 선언할지라도 십 자가가 빠지면 6입니다. 인격이 대단해도 십자가가 없으면 6입니다. 대형교회라고 할지라도 대단 한 설교라고 할지라도 예수 십자가가 없으면 복음이 없으면 6입니다. 7 마이너스1입니다. 예수 뺀 모든 것이 6입니다. 6.6.6은 특정한 인물이 아니라 여기저기 수도 없이 박혀 있는 사람을 대변하 는 수, 즉 인간의 수입니다.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는 상징수입니다. ” (제17장. 육.육.육.)
“모든 열방이 한 판의 전쟁을 벌이는 아마겟돈에서, 즉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서 대신 짊어지시고 출애굽 백성을 구해내셨던 것처럼 자녀를 구하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전쟁이 와도, 심판이 와도, 겁낼 필요 없습니다. ‘휴거’와 같은 영화를 보면서 겁낼 필요 없습니다. 계시록을 읽으면서 무서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계시록을 읽으면 읽을수록 힘이 납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시작하여 그 능력으로 최후의 구원을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최후의 승리는 주님께서 보장하셨습니다. 그렇기에 믿음을 지키시길 바랍니다. 어둠의 세력에 속지 마십시오. ” (제19장. 아마겟돈)
“저와 여러분이 바벨론의 실체와 어떻게 싸워 이길 수 있을까요? 첫째, 하나님께만 경배하고 하나 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우상숭배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속적인 것을 쫓지 말아야 합니 다. 영적인 일이라고 안심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자칫 천사에게 무릎을 꿇을 수 있습니다. 천 사가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그 천사에게도 무릎 꿇지 마라는 것입니다. 거룩하고 은혜로운 예 배의 자리에서 우리는 천사를 경배하는 것과 같은 우를 범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설교자, 찬 양대, 성가대, 솔로이스트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챌 수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범하는 어리석은 일을 우리도 범할 수 있습니다. 탁월함에 우리는 매료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피조물은 아무리 탁 월해도 경배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처음과 끝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만 영광이 되어져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예배입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올려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제20장 바벨론의 정체)
“놀라운 천국에 내가 간다고 생각하면 더 열심히 할 걸, 그렇게 생각하고 회개하게 될 것 같습니 다. 목회 더 열심히 할 걸, 그렇게 생각할 것 같습니다. 그때 좀 더 참을 걸, 인내할 걸, 친밀한 관 계를 누리다가 올 걸, 좀 더 효도 좀 하다가 올 걸, 그렇게 생각할 것 같습니다. 계속 ‘~걸~걸’입 니다. 천국을 마음에 품지 않으면 막 삽니다. 그런데 천국을 생각하는 사람은 참을 힘이 생기고 감사의 제목이 생깁니다. 계시록의 마지막 큰 비전은 우리가 바로 천국의 모습이고 우리가 새 하늘과 새 땅이고 우리가 새 예루살렘이요 우리가 완벽한 성전이라는 겁니다. 천국에서 예배 드릴 날을 생각하며 오늘 담대하 게 믿음 생활을 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천국에 갔더니 죽임 당한 어린 양이 계세요. 좀 더 잘 살다 올 걸, 베풀며 살다 올 걸, 좀 더 사 랑하며 살 걸, 좀 더 나눌 걸, 예배를 더 열심히 드릴 걸, 좀 더 이웃을 잘 섬길 걸… 이렇게 생각 할 것 같습니다..” (제22장 새 하늘과 새 땅)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