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바울이 갈라디아 2장 20절에 제시한 십자가 복음을 3부로 나누어서 ‘매니페스토’, 즉 성명과 선언 그리고 작동원칙과 행동강령으로 선포 한다.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한마디로 ‘내가 죽고, 예수께서 내 안에 대신 살아가시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 p.9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필수적으로 십자가의 죽음을 거쳐야만 한다. 다른 길은 없다. 필자는 실패라는 피눈물 나는 환경과 십자가를 통해 인생의 판이 뒤집히고 모든 것이 초토화되는 죽음의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백지화되고 초기화되어 ‘나’라는 존재 자체가 완전히 새로워지는 특별한 은혜의 체험을 했다. --- p.15
십자가는 단순히 묵상하거나 발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못 박혀 죽어야 하는 형틀이다. 십자가의 궁극적인 목적은 내가 거기 못 박혀 죽는데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나의 십자가가 되어야 하고, 예수님의 죽음이 곧 나의 죽음이 되어야 한다. --- p.53
갈라디아 2장 20절의 진수는 내가 예전에 얼마나 놀라운 영적인 체험을 했는지에 있지 않고, 오히려 지금 현재 이 시간에 그 말씀이 내게 현재진행형적인 실제를 이루고 있느냐에 있다. 즉 ‘죽었다’ 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전에 확실히 죽었던 것은 물론이고 지금도 ‘죽어 있습니다’라고 할 수 있다. --- p.75
자아의 핵심 주체는 ‘자기중심’이요, ‘자기애’이다. 즉 자아의 속성과 본질은 한마디로 ‘자기중심적’이요, ‘자기사랑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나는 오직 나밖에 모르고 또 나만 사랑할 수밖에 없다. 자아라는 괴물의 관심과 초점은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되어 있다. 모든 것이 다 나 자신 하나만을 위한 것이다. 오직 나만 사랑해 달라 하고, 나만 봐 달라 하고, 나를 들어 달라 하고, 나만 알아 달라 하고, 나를 최고로 만들어 달라 한다. 결국 사람은 죽을 때가지 ‘Me’ 타령만 하다가 간다! --- p.141
기억하자. 금욕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정욕과 욕심에 가득 차 있고, 겸손한 척하는 사람들이 더 교만하고, 의롭고 거룩한 척하는 사람들이 더 더러울 수 있다. 또한 스스로 자아가 죽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더 이기주의적이요, 관대하고 너그러운 척하는 사람들이 더 편파적이요, 착한 척하는 사람들이 더 무서울 수 있다. 더 나아가서 소위 십자가에 죽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자아가 더 강하고, 영적인 사람들이 더 육체적이요, 자칫 잘못하면 복음을 깨달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더 율법적일 수 있다. --- p.160
자아는 길들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자아는 기필코 죽어야 한다. 그러므로 자아를 어떻게 치장할까 궁리하지 말고 어떻게 죽여 버릴까 기도하라!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십자가로 죽지 않으면 인간의 자아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 자아가 죽는 일은 골고다 십자가에 예수와 함꼐 연합되고 동일시되어 죽는 길밖에 없다. 또한 십자가의 길에 진입하여 매순간 자신을 죽은 자로 간주해 실제로 죽은 사람처럼 사는 방법밖에 없다. --- p.183
십자가의 길은 오직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곧 내가 망하는 것이요 죽는 길이다. 그러므로 그 어느 누구도 완전 쫄딱 망하지 않고 자신의 자아가 죽었다고 말하는 것은 망상에 불과하다. --- p.193
죽은 척하지 말라! 기절하거나 죽은 것도 아니다. 잠시 ‘멘붕’ 상태에 빠졌다가 깨나서 제정신으로 돌아온 사람들도 있다. 기절했던 자아가 깨어나면 더 무섭게 날뛸 수 있다. 자아가 ‘동면상태’에 들어간 사람들도 있다. 설죽은 사람도 있다. 십자가에 대한 말씀을 지식으로만 받아들여 복음에 ‘그슬리기’만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십자가의 죽음이란 내가 원치 않는 부분이 죽는 것이다. 99% 죽은 것도 죽은 것이 아니다. 100% 죽어야 한다! 사망진단을 받은 후에도 기다려 봐야 한다. 희귀한 경우이지만 실제로 죽었다가 며칠 후에 회생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진짜 죽었는지 아닌지는 기다려 보면 알 수 있다. 찔러보면 된다. 찔러봤는데 반응이 나오면 아직도 살아 있다는 증거다. --- p.196
사실 나는 죽기 위해 죽은 것이 아니다. 단순히 예수께서 내 안에 살아가시기 위해 필수적으로 내가 죽어야만 했다. 주님은 십자가 죽음이라는 철저한 환경 정리를 통해 내게 백지장같이 순결한 새 인생을 허락하시고, 친히 삶의 주인이 되셔서 나 대신 살아가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생활 비결은 ’변화된 삶‘에 있지 않고, 오히려 ’바뀐 삶‘에 있다고 할 수 있다. --- p.216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당신은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땅에 떨어져 죽었는가?
당신 안에 십자가의 죽음을 통한 중심 이동과 주권 교체가 이뤄졌는가?
당신의 겉사람이 깨어지고 생명 전환이 이뤄졌는가?
예수님은 당신 안에 하우스 손님(Guest)으로 계신가?
아니면 당신의 존재와 삶의 주인(Master)으로 계신가?
당신 안에 분명 예수께서 현재형으로 살아가고 계신가? --- p.237
옛사람이 거듭나 속사람으로 태어나야 하고, 속사람이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과하여 새사람이 되어야 하고, 새사람이 영적 성숙을 이루어 영적인 사람, 온전한 사람, 완전한 사람에 도달해야 한다. 그런데 그 일은 오직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역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 p.253
성령 충만의 체험은 모든 영적인 지식과 가식을 한순간에 백지화시킨다. 또 영원토록 변화 받을 수 없다 생각했던 사람을 ‘한 방’에 뒤집어 놓는 위대한 역사를 일으킨다. 지금 바로 이 시간 이 때에 내 영혼과 내 삶 안에 그러한 영적인 지각변동과 대변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를 가능케 하는 것은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성령님밖에 없다. 십자가 복음 없는 성령 충만은 거짓이요, 반면 성령 충만 없는 십자가 복음은 죽은 것일 뿐이다. --- p.314
[십자가 매니페스토]는
내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이요,
내가 완전히 없어져, 이제는 내가 아닌 것이요,
예수께서 나의 삶의 주인이 되사
나 대신 내안에 살아가시는 것이다.
그리고 성령 충만한 삶을 사는 것이다! --- p.315
카를 마르크스는 1848년 [Communist Manifesto] 곧 [공산당 선언]을 통해 세계의 역사를 한번 뒤엎었다. 우리에게는 그보다 더 위대한 십자가 복음이 있다. 바울이 갈라디아서 2장 20절을 통해 제시한 [십자가 매니페스토]가 있다.
바울은 복음 하나로 로마제국을 뒤엎고 유럽과 전 세계의 역사를 바꿨다. 이제 우리도 십자가 복음으로 스캔들을 일으켜야 한다. 복음의 출사표를 세상에 던져야 한다. 십자가 복음으로 21세기 종교개혁과 혁명이 일어나야 한다. 다른 것 갖고는 안 된다. 우리는 오직 십자가 복음 하나로 세상과 한판 승부수를 걸어야 한다!
제씨 펜 루이스는 능력 있는 십자가의 선포 이전에는 어떠한 개혁도 부흥도 일어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이제 담대하게 복음을 선포하자! 십자가를 외치자!
--- p. 3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