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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테라

프린테라

소현수 | CABINET | 2018년 04월 26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9.4 리뷰 31건 | 판매지수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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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4월 26일
쪽수, 무게, 크기 540쪽 | 130*215*35mm
ISBN13 9791188660070
ISBN10 1188660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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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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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프린테라로 떠나게 된 날 아침, 밤새 숙소의 고정 태블릿에 한 통의 메시지가 수신돼 있었다. 발신자는 제인이었다. 이혼한 후 처음으로 내게 연락을 해온 것이다.
아마 내가 전장으로 떠난다는 사실을 어디선가 들은 것이리라. 어쩌면 곪은 염증에서 터져 나온 말이 아닌, 좀 더 나은 모양새의 그것으로 우리 관계를 정리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야 속 좋게 참전했다지만, 전쟁이란 죽음을 전제하고 정말로 다시는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르는 사건이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 태블릿을 터치했다.
메시지를 열지 않고 지워버렸다.
그대로 숙소를 나섰다.
나의 전쟁은 그렇게 시작됐다.
--- p.14

나는 계속 전진했다. 야후의 머리통이 사정거리 안에 들어왔다.
지금이다!
플라스마 커터를 휘둘렀다. 야후의 붉은 눈동자를 가로로 갈라버렸다. 놈의 머리통 절반이 날아가면서 사막에 검붉은 피가 흩뿌려졌다. 난 관성으로 인해 한참이나 앞으로 밀려가다가 멈춰 섰다. 게나디는 야후 곁에 서 있었다.
후방에서 대기하고 있던 팀을 돌아보았다. 멀티비전 기능이 시야를 정비했다.
“어?”
새까만 덩어리들이 보였다. 야후 무리.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내 눈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이건……. 수천, 수만 마리의 야후였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엄청난 숫자였다.
촤르르. 모래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나와 게나디 사이에도 야후 무리가 덩어리 지어 속속 솟아올라왔다. 야후들이 양팔을 하늘 향해 척척 치켜 올리기 시작했다. 손가락 끄트머리에서 날카로운 손톱이 낫처럼 펼쳐지는 것이 보였다.
“제기랄.”
나는 망설임 없이 스팀샷 인젝터를 후려쳤다.
--- p.39

야후는 신대륙의 도도가 아니었다. 다음 순간 뭐랄까. 한 편의 고어 영화가 상영되기 시작했다. 야후의 손가락 끝에서 낫처럼 휘어진 손톱이 불쑥 튀어나왔다.(야후의 손톱은 평소엔 안으로 접혀 들어가 있다.) 동시에 과학자의 손이 깨끗하게 잘려 나갔다. 그것을 신호로 뒤쪽에 있던 야후들이 공중으로 뛰어올라 탐사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손목을 붙잡고 비명을 지르는 과학자 곁에 서 있던 카메라맨은 놀라서 카메라를 떨어트렸고, 카메라는 마침 적절한 위치에 떨어져 그 상황을 고스란히 전달했다.
끔찍했다.
흐느적거리며 천천히 손을 뻗던 처음 그 모습과 달리, 야후들의 힘과 운동 능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 p.46

점점 속도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속도는 러닝머신에 달린 창에 표시됐다. 난 조금씩 당황하기 시작했다. 러닝머신은 시속 50km를 가리키고 있었다.
“어 자자…… 잠깐만요.”
레나는 답도 하지 않고 다시 속도를 올렸다. 속도는 어느덧 시속 70km를 가리키고 있었다. 젠장, 고장인가? 러닝머신은 전혀 소음이 없었다. 빠르게 움직이는 내 발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난 내가 땀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재차 놀랐다.
“이건 대체?”
레나가 미소를 지었다.
“여유만만이네요.”
말하는 중에도 내 다리는 빠르게 러닝머신을 타고 있었다. 이제 속도는 시속 100km에 달했다. 천천히 속도가 내려가기 시작했다. 마침내 러닝머신이 서고 난 크게 심호흡을 하며 러닝머신에서 내려와 유리 방 문을 열고 나갔다.
“이게 뭡니까, 대체?”
“역시 특전대대 출신이라 다르네요. 따로 적응훈련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예요.”
“저 러닝머신 속도, 정확한 겁니까?”
“당신 다리 움직이는 거 못 봤나요?”
봤다. 내 다리는 만화에서 보았던 엄청난 속도로 달리던 캐릭터의 그것처럼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어이가 없어 실소가 머금어질 정도였다. 그런데도 전혀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 p.100

더 이상 말이 필요할까? 엘리는 두 팔을 벌려 날 반겼다. 난 엘리를 안으며 입술을 포갰다. 한 차례 키스를 나누고 나는 조심스레 엘리에게 물었다.
“엘리, 혹시 퇴역 이후에 뭘 할지 생각해본 적 있어?”
“그건 갑자기 왜 물어?”
“그냥 궁금해서.”
“글쎄…… 아직 생각해본 적 없는데? 대장은 뭐 생각해둔 거 있어?”
물론이다. 작은 카페를 하나 차리고 조용히 살다가 늙어죽는 거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때는 혼자가 아니면 좋겠다. 그게 엘리 너였으면 좋겠다. 이렇게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난 엉뚱한 말을 내뱉었다.
“아니, 나도 아직.”
엘리가 피식 웃더니 말했다.
“난 일단 끝까지 살아남는 게 목표야.”
--- p.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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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지루할 틈이 없었다. 경쾌한 문체에 꼼꼼한 디테일, 살아있는 캐릭터들 등등. 게다가 중반부의 스토리텔링이 소강상태에 접어드나 싶더니 이내 국면 전환을 통해 새로운 독서 활력을 불러일으키는 구성도 꽤 정교한 편이다.

사실 밀리터리SF는 워낙 국내외의 괜찮은 작품들이 다수 소개되어 있기 때문에 신작을 쓰는 작가에게는 꽤 부담스런 도전이 될 수밖에 없다. 흔히 말하는 ‘잘해야 본전’이라는 평을 듣기 십상인 장르인 셈이다. 그런데 [프린테라]는 오히려 기존 작품들을 적극적으로 오마쥬하여 독자로 하여금 아는 만큼 더 즐기게 만드는 미덕이 충만하다.
흔히 클리셰를 진부함의 대명사처럼 얘기하고들 하지만 사실은 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하고 친근한 요소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소설이나 영화, 만화 등 매체를 불문하고 거장으로 추앙받는 스토리텔러들의 공통점은 가장 많은 독자들이 익숙해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내 보인다는 것이다. 소재, 설정, 스토리, 캐릭터, 문장 등등 작품을 이루는 모든 구성요소들이 일반 독자의 눈높이에서 너무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계속 앞으로 끌어간다. 이런 정공법은 작가라면 누구나 기본적으로 연마해야 할 길이고 이런 기초가 탄탄해야 다른 실험적 시도들도 비로소 빛을 발한다. 그런 점에서 [프린테라]는 성공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게다가 상상력을 자극하는 후반부의 반전 설정도 SF로서 품격을 지녔다. 밀리터리SF에 입문하려는 독자에게 추천작으로 꼽기에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전반부의 경쾌한 진행과 후반부의 주제를 향한 고조, 그리고 일독을 끝내면서 묵직하게 남는 여운까지. [프린테라]는 밀리터리SF로서 갖춰야 할 여러 요소들을 골고루 잘 버무려 연출해 내어 ‘읽는 재미’를 경험하게 하는 좋은 작품이다. 작가의 기본기가 탄탄해서 앞으로 또 어떤 후속작들로 SF의 파노라마를 엮어낼지 기대가 된다.
-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화씨 451], [라마와의 랑데뷰]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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