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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인드 라이터

블라인드 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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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5월 03일
쪽수, 무게, 크기 228쪽 | 290g | 132*198*20mm
ISBN13 9791161570327
ISBN10 1161570322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물론 이 여자는 맹인 남자와 결혼했다. 여자의 아름다움에 남자의 눈이 멀어버린 듯했다. 성공한 맹인 남자 곁에는 항상 남편이 자신의 내면의 아름다움만 보고 있다고 믿는 젊고 매력적인 아내가 있는 것만 같았다.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은 예의가 아니네.” 여자의 등 뒤에서 흘러나온 목소리였다.
“아닐, 집 안으로 들어서지도 않은 손님인데 쫓아내지는 말자고요.” 미라가 책망하듯 말했다.
남자의 말이 옳았다. 나는 여자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아름다운 여자를 똑바로 보기 두려운 남자만 쳐다보지 않을 터였다. --- p.18

그는 소설과 회고록, 사회와 가족사에 관한 저서를 모두 합해 열다섯 권의 책을 냈다. 작품들은 날카로운 관찰력이 돋보였다. 가끔 희극적인 요소와 미학적 화려함이 엿보였지만 어쨌거나 이제는 아무도 안 읽는 책들이었다. 지금은 맹인인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많은 책들을 냈다는 사실만이 유명세를 치르는 듯했다. 비평가들은 그의 위업에 감탄하면서도 궁극적으로 문학적 성과로 여기기보다는 정교하게 짜맞춘 숨은 재주 정도로 폄하했다. 시각장애가 없는 보통의 작가라면 열다섯이라는 저서의 개수는 지속적인 작업의 결과물로 받아들여질 터였다. 불행히도 트리베디가 가진 놀라운 창작의 열정은-해마다, 매일 일어나 책상 앞에 앉아 고통스러운 작업에 임하려는 의지-묻히고 언제나 맹인 작가라는 사실만이 또렷이 부각되었다. --- p.27~28

우리는 평소처럼 아침 시간을 함께 보냈고, 나는 강의 시간에 맞춰 학교로 갔다. 일주일에 몇 번씩은 저녁을 함께하기 위해 다시 들르기도 했다. 가끔은 아닐이 파자마로 갈아입는 것까지 본 후에 그의 집을 나왔다. 아아! 미라는 언제나 흐트러짐 없는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 아닐은 내가 자기 주변에 오래 머무는 걸 좋아했다. 나는 아닐이 나를 젊은 날의 자신 같은 사람으로 여겨주길 바랐다. 우리는 책에 대한 얘기도 나누었다. 아닐은 야구가 크리켓보다 더 복잡한 운동이라며 나를 설득했고, 나는 미라와 아닐에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들려주기도 했다. 여전히 글을 쓰진 않았고, 커피 테이블에 가득 쌓인 신문과 잡지들 옆에 역사와 정치에 관한 읽을거리가 더해졌다. 내가 쓴 소설도 거기에 놓여 있었다. 나는 아닐이 내 소설을 언급하길 기다렸고 원한다면 바로 읽어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 p.86~87

처음 몇 분간 우리는 순수한 마음으로 빨려 들어갈 듯 키스에 몰입했다. 그런데 내 손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했고 이건 일회성 사건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그런 생각 때문이었는지 미라의 어깨에 걸쳐 있던 내 손이 그녀의 가슴께로 스르륵 내려갔다. 지난 몇 주 동안 나는 미라의 옷 아래 가려진 몸을 힘겹게 바라보고 있었고 어디서든 그 모습을 떠올렸다.
내 손이 가슴에 닿자마자, 풍만함을 느끼기 직전에 미라가 재빨리 몸을 뒤로 뺐다.
“오, 아니야,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지?” 그녀가 말했다.
“나를 위로해준 거죠?” 내가 말했다. --- p.109~110

“미라 때문에 일을 계속할 수 없네. 그녀를 찾느라 평생이 걸렸지. 그녀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이 내 20대 초반 시절 글쓰기의 동력이었을 정도야. 그런데 막상 미라를 만나고 나니 더 이상 글을 쓰지 못하겠어. 어떨 땐 참 좋은데 대부분은 그렇지 않았어. 이 원고가 내 마지막 노력의 결실이 될 걸세. 이 책을 완성하면 더 이상 안 쓰겠네. 이제 미라와 나만 남을 테고, 그때부터 우린 그녀의 작품에 집중할 수 있을 거야.”
“왜 제게 이런 부탁을 하시는 거예요?” 내가 넌지시 물었다.
“자네가 좋아. 자네가 생각하는 방식이 맘에 든다고. 이제 자네의 글도 좋아. 좋은 결과를 얻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자네의 열정을 이 책 안에서 불살라보게.” --- p.159~160

내 생각에는 이게 내가 써야 할 마지막 책이야. 이 책의 출간은 내가 더 진실해지는 것을 의미하지. 동시에 내가 썼던 것을 다 부정한다는 뜻이기도 하고. 내 인생의 서막은 반반의 진실에 기반을 두고 있었어. 아버지는 내가 스물여덟 살일 때 돌아가셨어. 내가 책 한 권을 냈을 때지. 그후에 출간한 책에서도 나는 진실을 알면서도 내가 쓴 내용을 한 번도 수정하지 않았어. 거짓을 계속 고수한 거지.”
“왜 그걸 안 쓰세요?”
“결국 내 부모가 무책임한 부모란 사실을 까발리는 행위니까. 나는 몇 년 동안 진실을 숨겨온 것이고.” --- p.176

“끝났어. 더 이상은 못하겠어. 눈으로 봐서 알 거예요. 아닐의 상태가 점점 나빠져요. 어느 때보다 내 도움이 필요한 상태인데, 하나부터 열까지 말이에요.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장님이 되어 죄다 포기한 사람처럼 행동해요. 나는 기쁜 마음으로 도우려 하는데 아닐은 어떤 도움도 원치 않아요. 우리가 만날 때 이미 나이 차이가 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요즘은 마치 죽어가는 아버지를 돌보는 심정이에요. 그게 싫진 않아요. 그런데 내게 툭하면 악을 써요. 방금 전에도 내게 떠나라고, 당신에게 가서 불만을 쏟아놓으라고 악을 써댔어요.” 그녀가 말했다. --- p.182~183

다음 주 내내 나는 미라를 도와 화장에 필요한 절차를 밟고 장례식을 준비했다. 우리는 함께 시간을 보냈지만, 미라는 내가 단지 자신을 도울 수 있도록 곁을 허용한 사람처럼 보였다. 내게 눈길도 주지 않았고 어떤 대화의 문도 열어두지 않았다. 비록 우리가 나눈 섹스가 미라에게는 순간의 도피에 불과했을지 몰라도, 나는 달랐다. 몇 번의 키스를 나누면서 느꼈던 친밀한 감정으로 미루어 우리가 언제든 그토록 황홀한 시간 속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아닐의 죽음을 알게 된 순간, 모든 가능성이 닫혀버렸다.
--- p.187~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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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판디야의 소설은 정제되어 있고 정밀하며, 우리 내면에 수차례 정서적 균열을 일으키는 섬세하면서도 폭발적인 힘을 갖고 있다.”
- 그레텔 에를리히 (시인, 여행 작가)
판디야는 소설 속 인물의 불안과 꿈, 실수와 성공, 외로움과 후회를 안고 살아가는 모습을 기품 있게 장악해 우리에게 선사한다.
- 키스 스크라이브너 (소설가, 오리건주립대학교 교수)
『블라인드 라이터』는 내성적이면서도 열정을 품은 등장인물들이 빚어낸 흥미진진한 삼각관계와 그 속에 얽힌 감정의 롤러코스트를 여실히 보여준다.
- 사디아 파루키 (작가)
판디야 소설의 가장 큰 강점은 산문정신이며, 맛깔나게 잘 다듬어진 작은 얘기들은 긴 여운을 남긴다. 그의 소설은 많은 사람들이 이민자의 목소리에서 쉽게 떠올리는 일상화된 비유에 머물지 않는다. 그의 기량은 오히려 인물들이 드러내는 정체성이 단지 그들 이야기의 일부로 녹아들게 그려넣는 데 있다.
- 시암 케이 쉬람 (《팝 매터스》)
『블라인드 라이터』는 읽는 것이, 그리고 보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아낌없이 보여주는 소설이다.
- 아마존 독자
줌파 라히리나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작품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주저 없이 사미르 판디야를 선택할 것이다.
- 아마존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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