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는 인간의 슬픔을 달래준다
양친의 사이가 차츰 나빠져 이제껏 즐거웠던 가정이 저물녘 갑작스레 해가 기운 것처럼 어두웠다. 소년이던 그때는 이유를 전혀 알지 못했다. 다만 그저 당혹스러워 숨죽인 채 하루하루를 보냈다. 아버지가 상냥하게 대해주면 어머니를 배신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어머니에게 응석을 부리면 아버지를 거스르는 것 같아 신경이 쓰였다. 그렇다고 친구들이나 선생님에게 마음의 고통을 상담할 수는 없었다. 말한들 또래 아이들이 이해할 리 만무했다. 학교를 가고 오는 길, 항상 내 곁을 어슬렁어슬렁 따라다니던 검둥이. 어두컴컴한 집에 들어가기 싫어 내가 언제까지나 담에 낙서를 하거나 거미집을 엿보고 있으면 그도 멈춰 서서 하품을 하거나 다리로 귀를 긁으며 기다렸다. “집에 가고 싶지 않아!” 검둥이한테만은 나의 슬픔을 털어놨다. “어째서 이렇게 된 걸까?” 그는 눈물 어린 눈으로 지긋이 바라보며 대답했다. “어쩔 수 없어요. 인생이란 그런 거니까요.”
--- p.15~16
동물도 사랑을 하고 연애를 한다
종종 길에서 지나가는 여자를 겁탈한 강간마를 가리켜 ‘야수 같다’거나 ‘짐승 행위’라고 하는데, 만약 하타 씨의 말이 맞는다면 동물에게 몹시 무례한 표현이지 않은가. 왜냐하면 동물 쪽이 본능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확실히 자신의 취향에 따라 사랑하는 상대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정말인가요?”라고 나는 무심코 소리치고 말았다.
“요사이 인간 쪽이 상대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육체관계를 맺는 것 같습니다. 동물들 사이에는 그런 일이 없나요?”
“없습니다.”
여러분, 들으셨나요? 견공이건 묘공이건 간에, 너구리건 쥐건 간에 제대로 연애 감정이 생겨야 암컷에게 접근합니다. 지금으로서는 인간 쪽이 더 엉망진창인 게 아닐까요? 정말이지 한심한 이야기네요. 하타 씨의 말에 따르면 연애 감정뿐만 아니라 암수 한 쌍으로 서식하는 너구리 같은 동물은 아내가 죽으면 슬픈 나머지 남편은 아무것도 먹지 않아 쇠약해진 끝에 죽기도 한단다.
--- p.27~28
세상에! 이 속옷들이 다 뭐야?
먹보 녀석은 전부터 목줄을 풀고 도주했다가 남의 집에서 헌 운동화 한 짝이나 장난감 따위를 곧잘 물고 돌아와서는 개집 옆에 숨겨두는 습성이 있었다. 때로는 그걸 코끝에 흙을 잔뜩 묻혀가며 땅에 묻어두는 이상한 버릇도. ‘그렇다면 이 녀석은 두 장의 팬티 외에 몇 장 더 물고 돌아와 땅에 묻었는지도 모른다.’ 돌연 끔찍한 불안이 급행열차처럼 전속력으로 마음속을 통과했다. 요즘 근처에서 여자 속옷을 훔치는 치한이 출몰한다는 소문이 있는데, 어쩌면 먹보 녀석의 짓이지 않을까. 기다려, 이 개가 탈주한 건 어제 하루뿐으로 그전까지는 목줄에 묶여 있었기에 그럴 일 없다는 모순된 생각이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엇갈렸다.
--- p.53~54
그러니까, 화류병입니다
나는 ‘선생’을 데리고 구마다 견묘병원을 도망치듯 나와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에게 이 노철학자의 풍모를 지닌 노견이 그런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그저 숨길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그를 향한 나의 경애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지만.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선생은 구마다 수의사의 치료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다리를 절름거렸다. 나는 이듬해 새로운 집으로 이사했다. 요즘 생각한다. 조금 괴로웠던 내 마음을 그리고 납 같은 맛이 나던 매일의 생활을 개들이 위로해줬음을. 지금 집에서는 한 마리의 개, 한 마리의 고양이, 열두 마리의 작은 새, 스물네 마리의 금붕어를 기르고 있다.
--- p.92~93
원숭이에게 사랑받는 남자
그날부터였다. 자주 그 원숭이를 찾아간 것이. 별다른 목적이 있지는 않았다. 그저 오는 도중에 산 햄 끼운 빵을 반으로 나눠 하나는 내가 먹고 나머지 하나는 원숭이에게 줄 뿐이었다. 나는 쓸쓸했다. 쓸쓸한 내 눈에 친구도 없는 한 마리의 원숭이가 나처럼 고독하게 비쳤다. “너도 춥지?” 그가 빵을 베어 먹는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몇 번이나 보러 가는 사이 그 원숭이는 점점 내가 다가가면 입술을 세차게 떨었다. 위협하는 건 아니고 무언가 호소하듯이 입술을 떨어댔다. 하지만 그가 무얼 말하고 싶어 하는지 알 수 없었다.
--- p.130
어이, 진짜로 신은 있는 걸까?
한밤중 조용한 병실 안에 깨어 있는 것은 나와 그뿐. 구관조가 새장 속에서 떠듬떠듬하는 말과 소리가 들린다. “아아, 아아…….” 돌연 예의 그 소리가 나기도 한다. 나는 어둠 속에서 눈을 뜨고 생각했다. 다이쇼 시대의 고독한 작가라면 자신에게 일어난 자못 인생의 한 토막 같은 이 한 장면을 이삼십 매짜리 단편으로 쓸 텐데. 최후 결말은 노인이 죽은 뒤 구관조가 “아아, 아아”라고 인간의 말을 중얼거리는 한 줄로 마무리하겠지. 진짜 그럴 것만 같아 킬킬거렸다. 그 작품이 고독하고 번뇌하는 인생을 그린다면 정말이지 기가 막히리라. 자, 그렇다면 앞으로 어찌 될까. 나는 구관조에게 말했다. “예의 ‘아아, 아아’로 끝나지는 않겠지? 그 뒤로 ‘시작’이 기다릴 거야!”
--- p.152
바이러스는 인류의 자기조절자
이 지구에서 천연두가 사라진 그해, 바이러스 환자가 나왔다. 요컨대 인류에게 타격을 주는 하나의 바이러스 질병이 지구에서 소멸하기가 무섭게 이제껏 발견되지 않은 인류에게 해로운 질병이 새로 출현한 셈이다. “이유는 전혀 모릅니다. 하느님이 하신 일일까요?” 그 학자는 웃으며 말했다. “하느님은 하느님이라도 그리스도교 신자가 생각하는 하느님은 아니고, 정의와 사마 양쪽을 겸비하신 인도의 시바 신 같은 존재겠죠.” 나도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어쩌면 지구의 자기방어 작용일지도 몰라요.”
--- p.185~186
식물과의 신비한 대화
매일 아침, 작은 옥상 정원 식물들에게 물을 주는 것이 일과 가운데 하나다. “그대여, 아름다운 꽃을 피워주게나.” 이 말을 건네며 물을 주면 어쩐지 잘 자란다. 꽃 좋아하는 한 노부인에게 들은 말이다. 처음에는 그런 일이 있을쏘냐 하는 기분이 마음 어딘가에서 작동했다. 하지만 시험해보니 진짜인 듯하다. 식물은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는 걸까. 한 신문에 이 일을 썼더니 몇 명의 독자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저도 화분에 물을 줄 때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 아무런 말 없이 줄 때보다 아름다운 꽃을 피웁니다.” 나와 같은 체험을 한 사람들이 꽤 있었다.
--- p.198~199